<묵상>
1. 아들을 낳은 라멕은, 땅 위에서 수고하는 자들을 위로하는 자가 되라는 의미로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 지었습니다(창5:28-29). ‘노아’는 ‘안위함’이란 뜻입니다. 라멕은 땅에서 수고하는 인간들을 위로 받아 마땅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로부터 ‘용사’ 혹은 ‘유명인사’로 추앙받던 자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네피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4절). 히브리어 ‘네피림’은 ‘거인’이란 뜻과 동시에 ‘폭군’ ‘불한당’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와 인간의 평가는 이처럼 상이합니다. 오늘도 내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유명인사로 대접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최우선시 하지 않을 경우,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불한당’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렘2:19).
2.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마지막 날 사람을 창조하시기까지 엿새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온 세상에 인간의 죄악이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온갖 짐승과 새까지 쓸어버리셨습니다(7절). 인간이 없다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심프슨 부인을 이혼녀라 하여 싫어했고 더욱이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왕위를 포기해야 했지만, 심프슨 부인 없는 왕위란 전혀 무의미했기에 에드워드 왕이 미련 없이 왕관을 내버린 것과 같았습니다.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아니라면, 이 세상 만물을 버리실 정도로 오늘도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오늘 어떤 상황 속에 처하든, 자신에 대한 긍지로 의연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습3:17).
3.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언제나 하나님의 의인은 있게 마련입니다(9절). 죄악의 세상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길이가 삼백 규빗(136.8m), 넓이가 오십 규빗(22.8m), 높이가 삼십 규빗(13.7m)되는 방주를 지었습니다(15절). 사람들은 흔히 방주와 관련, 두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노아가족의 방주채류 기간이 40일이라는 것이 첫 번째 오해요, 방주 속의 삶은 마치 천국과 같았으리라는 것이 두 번째 오해입니다. 노아가족은 600년 2월 10일에 방주에 들어갔고(7:9-11), 601년 2월 17일에 나왔습니다(8:13-16). 노아가족은 무려 1년 17일 동안 방주에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온갖 짐승과 새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매일 짐승과 새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는 것은 노아가족의 몫이었습니다(20-21절). 그것은 견디기 힘든 중노동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새와 짐승의 울음소리에 오물의 역겨움까지, 한 마디로 방주는 천국이 아니라 정신병에 걸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식구는 그 속에서 1년 17일 동안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비결은 방주의 구조였습니다. 그 방주의 유일한 창문은 천정에 뚫려 있었습니다(16절). 만약 노아식구들이 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은 방주의 삶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천정에 난 창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중시조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을 이기는 힘은 밑이나 옆에서 오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우러러 볼 때, 위로부터만 임합니다(골3:1).
<기도>
하나님! 내 영혼의 천정에 하나님을 향한 창을 뚫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러러 바라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오늘도 의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 해주시고, 나의 일터와 가정이 이 시대의 방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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