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1.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만드신 것은 빛이었습니다(3절).
이 빛은 자연의 빛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월성신을 만드신 것은 넷째 날이었습니다(16절). 이 빛은 하나님의 빛, 진리와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이 빛이 있으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종식되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빛이신 주님을 향해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시간이 제6시, 즉 낮 12시였습니다(요18:38, 19:14). 다마스쿠스로 가던 바울이 해보다 더 밝은 이 빛에 사로잡힌 시간도 낮 12시였습니다(행26:13). 똑 같은 시간이었지만 한 사람은 이 빛을 보았고, 또 한 사람은 이 빛을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빛을 좇는 사람은 맹인도 맹인이 아니지만, 이 빛을 보지 못하는 자는 눈 뜬 자도 눈 뜬 자가 아닙니다.
2.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27절).
그러므로 사람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면 좋은 대통령,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되면 좋은 부모, 좋은 자식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되면 좋은 목사, 좋은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라고 반드시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고, 부모라고 혹은 목사라고 다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절박한 일은 없습니다.
3. 하나님께서 단지 사랑하신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제일 먼저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러셨더라면, 사람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과 헐벗음으로 한동안 떨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예비하신 뒤에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을 믿는 자는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주어진 24시간이 곧,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4.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이 총 7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인간 보기에 좋은 것’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관점의 이동’입니다. ‘자기 보기에 좋은 관점’을 버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관점’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만물의 허(虛)와 실(實), 진(眞)과 위(僞), 미(美)와 추(醜)를 제대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참된 삶을 영위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기도>
오늘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진리의 빛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나를 위해 예비해주신 오늘 하루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관점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오늘 밤 잠자리에 들 때, 이미 끝나버린 하루에 대해 후회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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