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꿀보다 더 단 주의 말씀 (시편119:96=104)

새벽지기1 2017. 4. 12. 07:01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함이라』(시119:103)

이미 읽은 말씀 그대로「꿀보다 더 단 주의 말씀」이라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그 동안 너무 쓴 설교만 해서 오늘은 좀 단 설교를 하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비유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가령「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말씀한 데가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가 자기 씨를 뿌릴 때 하나님의 말씀을 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생명이 있다는 뜻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을 읽으면『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은 우리는 지도한다는 뜻이 있는 줄 압니다. 또 히브리 4장 12절에 보면『주의 말씀은 성신의 검, 좌우에 날이 선 검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승리하고 죄를 멸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는 뜻인 줄 압니다.
예레미야 23장 21절을 읽으면「주의 말씀을 불」에 비유했습니다. 이것은 죄악을 살라버린다는 뜻인 줄 압니다. 또는 같은 절에「주의 말씀을 방망이」라고 했습니다. 아마 이것도 죄악을 두들겨 부수어서 파괴하는 능력이 주의 말씀 가운데 있다는 뜻인 줄 압니다.


그런데 성경에 제일 많이 말한 말씀은「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양식」이라고 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4장 4절에『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느니라』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곧 생명의 양식이란 뜻입니다. 예레미야 15장 16절에『내가 주의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되느니라』했습니다. 말씀을 얻어먹었다는 것입니다. 양식입니다. 베드로 전서 2장 2절에『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를 구원에 이르도록 장성하게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젖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미 읽은 대로『주의 말씀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꿀보다 더 하나이다.』가나안 복지에는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우리에게 젖과 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말씀을 읽을 때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아무리 단 음식이지만 누구에게나 다 단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병으로 앓아본 경험이 계시지마는 우리가 병 낫을 때는 어떤 음식을 먹든지 음식이 씁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달고 꿀보다 더 달다고 하지마는 어떤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매우 씁니다. 로마서 1장 하 반절에 있는 말씀을 읽을 때 죄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되겠는가 생각해 보세요.『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 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醜惡),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동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背約)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 할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을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읽을 때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계시록 21장을 읽으면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묘사가 있고 어떻게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들을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한다는 말이 있고 계속해서 8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行淫) 자들과 술 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 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마태복음 25장 30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했습니다. 그 아래 41절에『저주를 받은 자들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리라』했습니다.


여러분 일본 사람들이 성경을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 아십니까? 쓴 까닭입니다. 오늘날 어찌하여 공산당들이 성경을 보면 찢으려 하고, 불사르려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그들에게 이 성경말씀이 쓰기 때문입니다. 곰의 열보다 더 씁니다. 성경 말씀이 이렇게 쓴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면 대단히 섭섭합니다. 음식이 다 이렇게 쓰면 그 사람의 생명이 며칠 안 남았습니다.
또 병은 없어도 어떤 음식이나 처음에는 맛을 잘 모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밥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서양 사람은 밥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밥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늘 먹은 탓입니다. 특별히 김치 같은 것을 한국사람이 좋아합니다. 그러나 외국사람, 서양사람에게 주어 보면 아주 입이 덥다고까지 합니다. 그런 음식 서양에도 있습니다. 혹 버터 같은 것을 서양 사람들은 고소하다고 하면서 잘 먹지마는 동양 사람이 처음 먹으면 별 한 냄새가 나고 고약합니다. 또 치이즈 라고 하는 것 더합니다. 그러나 그 음식이 처음에는 맛이 없고 별 하지마는 계속해서 먹게 되면 점점 음식이 맛이 생깁니다.


이 성경의 맛도 그러합니다. 전에 어떤 한물 학자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내가 예수를 잘 믿으려면 성경을 읽어야 된다고 하는데 나도 성경을 읽겠다고 결심하고 먼저 신약성서를 사서 마태복음 1장을 찾아서 내려 읽는데『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 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 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육 절까지 읽고 나니까 이 한학자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몰랐습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낫다고 했는데 무슨 뜻입니까? 이 한학자는 성경이 아무리 해도 우리 한학 논어와 맹자만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논어 첫 장을 들치면『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名自遠方來 不交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쁜 일이 아니냐 친구가 있어 먼 곳에서 오니 얼마나 즐거움인가 사람이 몰라주어도 속에 온로한 생각이 없으면 그 어찌 군자가 아닌가』이렇게 논어를 펼치면 글이 환하고 좋은 말이 나오는데 이 성경은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맹자를 읽어 보셨지요.『孟子見梁惠王 王曰  不遠千里以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子曰 王何必曰利 亦將有仁義而矣』『맹자가 양혜 왕을 보신대, 왕이 맹자보고 하는 말이「영감 이천리 길을 멀다 않고 우리 나라에 오시니 우리 나라의 무슨 의로운 일이 있습니까?」 맹자 곧 대답하는 말이 어찌해서 왕은 이익만 생각하십니까 나라에는 인의(仁義)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그것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과연 정치가요 도덕가의 말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은 무슨 말입니까? 한 학자는 처음에 아주 낙담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약을 읽을 때 마태복음 1장을 읽는 것은 꼭 수박 겉 핥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성경은 밤송이와 비슷해서 처음에는 깔깔한 가시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가시를 헤치면 딱딱한 껍질이 있고 그 다음에 한 꺼풀 헤치면 쭈굴 쭈굴한 속껍데기가 있습니다. 이것마저 베껴야 단 알맹이가 있습니다. 이 성경 말씀이 달다는 사실을 수박 겉만 핥은 사람이 단 것을 모르는 것처럼 알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읽어서 6, 7, 7장쯤 내려가서 산상보훈을 읽을 때에 다른 경서를 읽은 사람으로서는『아! 이런 위대한 교훈이 있다』고 감탄합니다. 그러다가 로마서와 고린도 전서를 읽고 모든 서신을 통해서 기독교의 모든 위대한 철학과 신학을 맛보게 되고 마지막에 묵시록을 읽어서 이 온 세계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것을 읽게 될 때에야 성경이 과연 어떠한 것을 가슴속에 알게 됩니다.


또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음식의 맛을 잘 알려면 씹어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혹간 맛있는 좋은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먹습니다. 음식은 잘 씹어 먹어야 맛도 나고 몸에도 유익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하나님의 말씀도 과연 맛을 알려면 계속해서 읽을뿐더러 묵상하여야 됩니다. 그러기에 시편 1편을 여러분 다 아시지요.『복 있는 자는 악한 자의 의논대로 행치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했습니다. 시편 119편『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했습니다. 묵상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더 알게 됩니다.


어거스틴의 전기를 읽으면 그가 젊었을 적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헬라의 모든 철학자의 서적을 읽었고 또 로마의 위대한 문학자의 문학서를 많이 정독할 사람입니다. 그러다가 신앙에 들어와서 성경을 읽으려고 할 때 처음에는 그 참된 맛이 어떤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계속해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그야말로 그 말씀이 꿀보다 더 달게 되어서 마지막에는 그 성경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면서 많은 기독교 서적을 남긴 것을 우리가 읽을 수 있습니다.
불란서의 파스칼 같은 사람도 본래 자연 과학자였습니다. 자연에 대한 취미가 많고 과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 사람이올시다. 그렇지마는 그도 처음에 성경을 읽을 때는 아무 재미도 없었지마는 읽기를 계속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그 말이 맛이 있어서 과학 연구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중에는 성경만 연구했습니다. 묵상할수록 이 말씀이 답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일생을 전도 사업에 바친 리빙스톤 같은 사람은 언제든지 마태복음 28장 20절『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을 언제든지 묵상했습니다. 어떤 위험한 곳에 가든지 어떤 외로운 곳이 가든지 이 말씀을 묵상하고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는 은혜 가운데서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겼습니다.
처음으로 중국 내지(內地)에 혼자 가서 어떤 선교 부의 도움도 없이 자비로써 전도를 개척한 허드슨 테일러라는 유명한 선교사는 언제든지 두 가지 말씀이 그 마음가운데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는「여호와 이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여호와 이레」라는 말을 생각할 때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하나는「에벤 에셀」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는 하나님께서 이때까지 여기까지 도와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와주셨는데 이제 앞으로 도와주시지 않겠는가?「여호와 이레」신데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해 주시지 않겠는가? 이 두 가지 말을 묵상하고 생각하고 이 말씀을 언제든지 새기면서 일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을 마음가운데 기억하고 묵상하세요. 가령 로마서 8장 27절을 묵상하세요. 빌립보 3장 14절을 묵상해 보세요. 마가복음 9장 23절에『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했습니다. 시편 23편을 묵상해 보세요. 묵상할 때에 과연 이 말씀이 맛이 있고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성경 내용 전체가 음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성경 전체가 이 몇 가지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스스로 의식이 일어나게 되고 우러러 하늘을 바라보고, 옆으로 자연계를 돌아보게 될 때 자연히 우주 문제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고 인생 문제에 대한 번민이 일어납니다. 이 때에 성경은 우리에게『이 우주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그 하나님은 너희 아버지 시니라, 그 하나님은 사랑이 시니라』고 가르쳐줍니다.


우리 인생은 성경 가운데서 우리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독생자는 우리를 죄악가운데서 구원해 내시기 위해서 피를 흘려서 너희 죄를 씻으셨느니라 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마지막에 다 당하는 문제는 죽음의 문제입니다.『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고 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이 성경은 우주의 근본 문제, 인생의 근본 문제 죄에 대한 문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문제를 풀어 주는 책이올시다. 과연 성경은 인간의 모든 영적 욕구의 참 만족을 주는 책입니다. 철학자의 욕구가 무엇입니까? 지혜입니까? 이 성경 가운데서 하늘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정치가의 욕구가 무엇입니까?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세계 평화입니까? 그 비결이 이 책 가운데 있습니다. 교육가의 욕구가 무엇입니까? 위대한 인격을 조성하는 것입니까? 그 인격의 기초를 우리는 이 책 가운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경 가운데서 고독한 자는 친구를 찾을 수 있고, 어둠에 헤매는 자는 참 빛을 볼 수 있고 길을 잃은 자는 길을 찾을 수 있고, 영에 목마른 자는 생명수를 얻을 수 있으며, 영에 배고픈 자는 생명의 양식을 이 곳에서 얻습니다. 슬픈 자는 이 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병든 자는 이 책 가운데서 건강의 비결을 배울 수 있고 낙심된 자는 이 책 가운데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비겁한 자는 새로운 담력을 얻으며, 신음하는 자는 이 책을 읽을 때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에 산 사람 가운데 인거솔이라고 하는 유명한 무신론자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책도 쓴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친구 가운데 윌레스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육군의 대장입니다. 이 사람 역시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무신론자가 그 사람보고 하는 말이 기독교란 다 거짓말이고 쓸데없는 것이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책을 하나 쓰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윌레스 대장이 그런 책을 저술할 마음이 있어서 아무래도 이런 책을 저술하려면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사실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점점 읽어가면서 오히려 반대할 마음은 없어지고 성경 말씀이 감화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이 믿게 되고 믿을뿐더러 그 유명한 벤허(Ben Hur)라는 종교 소설, 그리스도의 일생을 보여 주는 유명한 책을 윌레스 대장이 저술했습니다. 성경을 읽지 아니하는 까닭에 그 뜻을 모릅니다. 그 맛을 모릅니다. 보통 성경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물어보면 성경을 별로 보지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읽지 못한 사람들이 성경을 반대합니다. 읽은 사람이면 성경 말씀의 맛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 성서 주일을 당해서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하는 것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경을 읽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공부도 해야 됩니다. 공부하지 아니하면 뜻을 모릅니다. 좀더 공부합시다. 이렇게 주일날 예배만 보고 가지 말고 공부 시간에 들어가서 좀더 공부하세요. 저녁 예배와 삼일 기도회 때도 특별히 성경을 공부하는데 어떻든지 성경을 좀 공부하세요. 성경에 대한 서적을 사다가 공부하고 연구하세요.
셋째는 성경 말씀을 좀더 암송하시고 그 말씀을 묵상하세요. 기도할 때도 성경 말씀으로 하세요. 성경 말씀으로 생각하고 성경 말씀으로 말하세요.
넷째는 이 성경을 나만 읽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보급시켜 다른 사람도 읽을 기회를 주고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지 아니하는 친구들에게 경사 때, 선물할 때, 성경을 선사하세요. 흔히 믿는 사람에게 선물로 성경을 보내지만 믿는 사람은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 없는 사람에게 성경을 보내는 것이 제일 유익할 것입니다. 오늘은 특히 성서 주일로서 우리 한국에도 이 성서를 보급하는 성서공회가 있는데 여러분 성서공회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영국에 성서공회가 있고, 미국에도 있는데 이 두 성서공회의 후원을 받아서 한국의 성서공회는 성경을 실비로 출판하고 보급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도 이 성경 보습에 물질적으로 좀더 힘써야 되겠습니다. (1956년 1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