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결혼은 미친 짓이다?

새벽지기1 2017. 2. 20. 11:03


지난 2002년에 제작된 [결혼은 미친 짓이다]는 영화가 있다.

제목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가서 영화를 보지는 않았다.

사실 어제의 결혼과 오늘의 결혼은 많이 다르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결혼에 대한 이해도 많이 달라졌다.

하여, 나는 묻는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사랑해서 결혼하고 사랑이 식어 이혼하는 이 시대의 결혼 풍속도를 보면서,

때로 결혼 주례를 하는 목사로서 나는 묻는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결혼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곰곰이 따져보니 다섯 가지가 꼽혔다.

 

첫째,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상대를 자기 존재와 삶의 반쪽으로 받아들이는 가없는 수용이다.

현상적으로 보면 내가 나의 반쪽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고,

사랑이라는 묘약에 이끌려 내가 나의 반쪽에게 달려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상대를 하나님이 주신 나의 반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결혼의 본질에도 근접하고, 성경적인 관점에도 부합하는 결혼 이해라고 생각된다.

 

둘째, 결혼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인 신묘한 결합이다.

결혼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인 산술적 만남이 아니라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신묘한 결합이다.

특히 하나님이 도장을 찍어 봉인하는 신성한 결합이요,

세상의 그 누구도 이 둘의 하나 됨을 나눌 수 없는 견고한 결합이다.  

 

셋째, 결혼은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접고

한 사람의 남편으로, 한 사람의 아내로 살겠다는 공적 선언이며 약속이다.

결혼은 서로의 필요를 주고받는 실용적 거래도 아니고,

가문과 가문의 유익을 공모하는 가문의 동맹도 아니고,

사랑에 눈이 멀어 온 몸을 던지는 치기어린 모험도 아니다.

결혼은 한 사람의 남편으로, 한 사람의 아내로 헌신하겠다는 인격적 결단이며 약속이다.

 

넷째, 결혼은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하는 공적인 떠남이자 독립이다.

부모님의 뜨거운 사랑과 헌신적인 돌봄에 힘입어 떠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에 감사하면서

독립적인 인생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떠남과 독립은 결혼의 기본전제요 필요조건이다.

결혼은 결혼식으로 성사되지 않는다.

결혼은 떠남과 독립으로 성사된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고, 자식이 부모를 떠나 독립할 때 비로소 결혼은 성사된다.

물론 이 떠남과 독립이 부모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부모의 지도와 편달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살다 보면 부모에게 묻고 상의해야 할 일들이 있는 법이다.

그럴 때면 부모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것도 훌륭한 지혜다.

하지만 결국은 두 사람이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경제적인 것이 됐든 정신적인 것이 됐든 생활의 모든 것에서 주체적인 독립을 해야 한다.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좌우지간 두 사람이 인생의 주체, 책임의 주체로 오롯이 서야 한다.

바로 이것이 결혼에 담긴 중요한 의미이다.

 

사실 이 떠남과 독립은 부모와 새롭게 만나기 위한 아름다운 매듭이다.

지금까지는 부모님 품안의 자식으로서 수직적 관계에 있었으나,

이제부터는 부모님 품밖의 자식으로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기 위한 아름다운 매듭이다.

진실로 그렇다. 떠나고 떠나보내는 이 매듭이 있어야만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부모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떠나고 떠나보내는 이 매듭이 있어야만 성숙한 방식으로 부모를 공경할 수 있다.

결혼은 진실로 떠남이자 독립이다.

 

다섯째, 결혼은 어른으로서의 삶을 출발하는 것이다.

예부터 남자는 장가를 들면 상투를 틀었고 여자는 시집을 가면 쪽을 올렸는데,

이것은 어른이 됐다는 것을 알리는 내외적 증표였다.

일차적으로는 본인들이 어른이 됐다는 걸 인식하고 어른으로서 처신하도록 독려하는 내적 증표였고,

이차적으로는 이들을 어른으로 대하라는 외적 증표였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결혼을 어른으로서의 삶을 출발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지금까지 결혼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살펴봤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젊은이들이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솔직히 요즘은 결혼이 선택이지 받아들임이 아니지 않은가.

사랑하는 남녀의 만남일 뿐이지 한 몸으로서의 결합이 아니지 않은가.

헌신하겠다는 약속이기보다는 셈법이 복잡한 거래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가.

떠남과 독립도 거의 사라져가고 있고,

어른으로서의 삶을 출발하는 것 또한 희미해져가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요즘 사람들은 ‘어른’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어른이 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노골적으로 싫어한다.

어른은 부패한 속물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퇴물이고, 속이 좁고,

고집스럽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거의 보편화되어 있다.

때문에 결혼을 해도 어른으로서의 삶을 출발하려 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의 삶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영원한 젊은 오빠, 영원한 젊은 누이로 살고 싶어 한다.

 

충분히 이해한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생각을 낳는 법이기에 옛날을 고집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 결혼의 의미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구태에 찌들은 고리타분함의 극치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현시대를 뛰어넘는 인생의 깊은 지혜가 담겨 있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지금도 여전히 상대를 내 존재와 삶의 반쪽으로 받아들임이어야 하고,

둘이 한 몸 되는 신묘한 결합이어야 하고,

남편과 아내로 헌신하겠다는 전인적 약속이어야 하고,

부모로부터의 떠남이자 독립이어야 하고,

어른으로서의 삶의 출발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녕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겠지만.....

그런 결혼은 제도에 갇힌 과거의 유산일 뿐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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