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세대통합 예배와 설교(2)

새벽지기1 2017. 2. 23. 06:47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주일예배 설교를 어려워하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지 나이가 어리고 선이해가 부족해서일까?

내 설교를 이해할 만큼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일까?

아님, 내 설교 언어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여서일까?

설교 구성이 지나치게 논리적이어서일까?

설교 내용이 비현실적 가치를 지향하기 때문일까?

아이들의 세계나 관심사와 겹치는 것이 없어서일까?

그도 아니면, 예배와 설교 자체에 아예 흥미가 없어서일까?

아마 개인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는 이런 이유가 다 포함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말씀샘교회의 현재 상황은 영적인 초등학생이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서 대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세대통합이라는 기치를 내리고 세대분리의 길을 가야 할까?

10대에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고, 20대에 들어야 할 메시지가 있는 법이니 만큼

그들 세대에 맞는 메시지를 들으며 자라도록 예배를 분리해야 할까?

이것은 앞에서 말한 신앙교육의 본질에도 부합하지 않거니와 현재의 인적 구성상 용이하지도 않다.

 

그러면 아이들에게 설교의 초점을 맞춰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해야 할까?

초등학생도 흥미를 갖고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간단하게,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성경을 풀어줘야 할까?

초등학생이 대학 강의실에 합류한 것과 같은 현재의 상황을 완전히 뒤집어

대학생이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합류하여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을 듣는 것과 같은 상황으로 바꿔야 할까?

이것도 적절한 해법이 못되기는 마찬가지다.

만일 이런 식으로 3개월만 설교해도 성인들이 지루해죽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앎의 욕구와 새로움의 욕구가 있어서

아무리 내용이 좋고 재미있다 해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해서 듣는 건 싫어하는 법이니까.

재미있는 영화나 개그콘서트라 해도 두 번 이상 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사실 전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것과 설교의 어려움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난해하다.


아니, 어쩌면 전 세대가 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한다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전 세대는커녕 같은 세대, 즉 20대끼리만 모아놓아도 청중 모두를 아우르는 설교를 하기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니까.

같은 세대라 해도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영적인 수준과 지적인 수준이 천차만별이니까.

옳다. 설교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용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전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것에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것이 세대별로 예배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배는 설교를 듣고 이해하는 것 이상이며, 예배당은 결코 강의실이 아니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의 자태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의 고백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 향유하는 것이며,

하나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남녀노소가 함께 할 때, 어른과 아이가 함께 어깨춤을 추고 노래하며 환호할 때

비로소 가장 하나님나라다운 잔치가 될 수 있으니까.

 

물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예배는 강의가 아니니까 설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기독교 예배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잔치이다.

예배에서 설교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예배의 질과 내용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할 수 없는 진실은 이것이다.

예배는 설교보다 크고 깊으며 본질적인 것이라는 것.

그리고 예배가 설교보다 크고 깊으며 본질적이기 때문에

전 세대가 함께 예배하는 것이 세대별로 예배하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고 옳다는 것.

그러고 보니 논점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설교의 어려움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도 하지 못한 채

세대통합 예배라는 대의만을 강변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실 이 글을 시작할 때부터 이리 될 줄 알았다.

애당초 해법이 없는 문제를 꺼내들었으니 무슨 재주로 용두사미 신세를 피하겠는가.

 

단지 설교의 어려움과 관련해서 두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첫째, 세대통합 예배를 드리는 말씀샘교회 성도 모두가

인간의 인지 능력보다 성령의 눈 밝음과 도우심을 깊이 신뢰하면 좋겠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때가 되면 지금 듣는 말씀이 발아를 할 것이고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걸 신뢰하면 좋겠다.

지금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던 말씀의 씨앗들이 때가 되면

의식의 땅을 뚫고 올라올 것이라는 걸 신뢰하면 좋겠다.

둘째, 아이들의 영혼은 결코 유치하지 않다는 걸 신뢰하면 좋겠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에게 복음을 유치하게 전하는 것, 복음의 껍데기만 가르치는 것,

삶의 껍데기만 보여주는 것은 아이들의 영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어쩌면 어른보다 훨씬 진지하게 죽음을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묻는다고 믿는다.

복음의 깊이와 구원의 깊이에 관심이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에게 쉽게 설교하지 못하는 나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다.

나의 설교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게 아니다.

세대통합 예배라는 깃발을 든 목사로서,

나는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설교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설교를 하도록,

설교 속에 아이들에 대한 배려를 담아내도록 노력할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결국 관건은 이것이다.

설교 내용의 질적 차원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아이들이 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하느냐,

전 세대를 아우르는 설교를 한다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얼마나 전 세대를 아우르는 설교를 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것은 실로 무거운 짐이다.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짐이다.

그러나 짊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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