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돌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호 2:14-15)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에 빠져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이끌어서 축복을 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이올시다. 여기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개유(開諭)하여 말하자면 꾀어서 거친 들로 데리고 가겠다고 말씀했고, 거친 들에서 그들을 위로하겠다고 하셨고, 그 후에 그들에게 다시 포도 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때에는 과연 아골 골짜기로써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특별히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겠다는 이 말씀을 중심해서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장래에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시겠다는 예언인데, 우리가 이 뜻을 분명히 알려고 하면 먼저 과거의 아골 골짜기와 또 어떻게 과거의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었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의 아골 골짜기를 생각하려면 여호수아 7장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첫 성 여리고를 믿음과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나타남으로 무너지게 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써 이 성을 점령한 것을 우리가 잘 기억합니다. 그 다음에 아이 성을 점령한다면 온 가나안 복지를 전부 점령하게 될 것인데, 여리고를 점령하고 곧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하여 정탐을 먼저 보낸 것입니다. 정탐이 아이 성에 들어가서 모든 일을 다 알아본 후에 돌아와서 보고하기를『그 아이 성은 여리고 성처럼 굳은 것이 아니고 성도 변변치 않고 사람도 적고 하니 뭐 많은 군대를 보낼 필요 없고 우리 생각엔 한 2, 3천 명 올려 보내면 쉽사리 아이 성은 점령할 줄 압니다.』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이 보고를 듣고 3천 명이 정예 군사를 뽑아서『그러면 너희들이 올라가서 아이 성을 먼저 점령하라. 그러면 우리 후방 부대가 너희를 따를 것이다』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3천 명 되는 정예 부대가 올라갔건만 뜻밖에 아이 성 사람들이 담대히 성문을 열고 이스라엘 사람을 쫓아 나오며 치는 통에 이스라엘 정예 부대가 쫓겨 도망쳐 산비탈을 내러옵니다. 아이 성 사람의 수는 적지만 담대히 싸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하고 쫓겨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쫓겨올뿐더러, 이렇게 정예 부대가 쫓겨오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이 얼마나 겁이 났든지 마음이 녹아서 물과 같이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많은 장로들이 크게 공포심이 일어났습니다. 이리해서 아이 성 사람에게 이스라엘 사람이 패전했다는 소문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가나안에 있는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수가 적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단숨에 삼켜버릴 것 같은 위험이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떨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언약 궤 앞에 꿇어 엎드려서 머리에다 티끌을 얹고 종일토록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고 합니다.『하나님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아이 성 사람에게 이처럼 쫓기게 하십니까? 만일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요단강을 건너오지 않았을 터인데, 요단강을 건너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패전했으니 이 말이 가나안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서 일제히 일어나 우리를 삼켜버릴 것 같으면 이를 어떻게 합니까? 또 이렇게 되면 여호와 아버지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하나님 앞에 대성통곡하면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응답하신 말씀은『일어나라! 어찌하여 너희들이 엎드려서 나에게 부르짖기만 하느냐? 너희 이스라엘 군대가 이번에 아이 성 사람들에게 패전한 것은 까닭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명령한 대로 여호와께 바치라고 한 것을 너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도둑질한 자가 있어서 그 까닭으로 내가 너희를 떠났다. 이제라도 너희가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려고 하면 그와 같이 악한 사람을 너희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와 같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 말을 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여리고 성을 점령하려 할 때 특별히 분부한 것이 있습니다. 성에 들어가서 금이든지 은이든지 이와 같은 모든 보물은 한 사람이라도 사사로이 소유할 것이 아니고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라고 엄히 명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필연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그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어떤 사람이 도적 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제비를 뽑아서 범인을 잡게 되었는데, 제비를 뽑아 보니까 12 지파 가운데 유다 지파가 뽑히었습니다. 유다 지파에 또한 여러 족속이 있는데, 그 족속 가운데 세라 족속에게 뽑혔습니다. 세라의 자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삽디의 가족이 뽑혔습니다. 삽디의 자손 가운데서 다시 제비를 뽑아 보니까. 갈미의 아들 아간이 나중에 뽑혔습니다.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갈미의 아들 아간을 불러다가『네가 한 일을 이 시간에 온전히 자복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말할 때 아간이 피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대답하였습니다.『예, 제가 과연 하나님께 성별(聖別)한 물건 가운데서 좋은 오바가 한 벌 탐이 나서 그것을 도적 했고 은 2백 세겔과 50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도적해서 그가 있는 장막 땅 속에 묻어 두었는데, 지금 가도 그것이 있을 터이니 그것을 찾아오기 바랍니다.』
과연 사람을 보내서 그 장막 속을 파보니 외투가 나왔고 또한 금과 은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아간에게 속한 모든 가장 물, 그 은 금까지 전부 다 어떤 골짜기로 가지고 가서 모든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네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렇게 괴롭게 하였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하고 여러 사람이 돌을 들어 쳐서 아간을 죽이고 또한 아간에게 속하는 모든 물건을 온전히 불살라 버리고 그 죽은 송장 위에 돌무더기가 되도록 돌을 던져서 쌓았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 골짜기를 아골 골짜기라 불렀습니다. 아골이라는 말의 뜻은「탈락」혹은「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그 때부터 그 골짜기를「탈락의 골짜기」또는「괴로움의 골짜기」라고 불렀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죄를 제하여 없이 한 후에 다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하셨습니다. 그 후에 오래지 아니해서 이스라엘 사람이 아이 성을 무난히 정복했습니다. 아이 성을 정복한 후에 그 밖의 헤브론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래서 한 성, 두 성, 온 가나안 복지를 완전히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아골의 골짜기는 모든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는 소망의 문이란 것입니다. 만일 아골 골짜기가 없었던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죄를 제거하지 않았던들 가나안 복지를 점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아골 골짜기가 있는 까닭으로 가나안 복지를 소유하는 소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의 아골 골짜기와 소망의 문이올시다.
그런데 여기 호세아는 미래에 또한 아골 골짜기가 있겠고 아골 골짜기가 있음으로써 소망의 문이 열리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예언과 같이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많은 죄를 짓고 죄를 지음으로써 나중에 예루살렘이 다 멸망을 당하고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그 까닭으로 다음에는 저 멀리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에 잡혀가서 다른 나라 사람의 압박 하에 살면서 많은 괴로움을 받은 그 70년의 생활이야말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다른 새로운 아골 골짜기였습니다. 그 아골 골짜기에서 많은 눈물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죄를 회개하고 그 곳에서 더러워지고 다 부패했던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새롭게 되었고 다시 깨끗하게 되었고 아름답게 되어서 마지막 70년 기한이 간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이스라엘 나라와 교회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제해 버리는 골짜기가 없이 우리 앞에 소망은 없습니다. 이것은 민족의 장래만 그런 것 아니고 우리 개인의 생활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의 유명한 탕자의 비유를 잘 압니다. 이 둘째 아들이 부모에게서 많은 재물을 얻어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자기 마음대로 허랑 방탕하게 진탕하게 놀고 있을 때에 그 탕자에게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이 다 없어지고 설상가상으로 흉년이 들어서 먹을 양식이 없어지고 친구도 없어지고 집도 없어지고 돌볼 사람이 없어질 때 부득이 구복(口腹)이 원수가 되어서 다른 사람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고 머슴 중에서도 돼지를 치는 처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 보기에 돼지 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유대 사람은 돼지고기를 먹지도 않습니다. 유대 사람으로서 돼지 친다는 것처럼 부끄러운 것이 없습니다. 참 죽지 못해 돼지를 칩니다. 하물며 돼지를 치는 것도 그런데 먹을 것이 없어 돼지 먹는 팥 껍질을 먹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기막히는 사실입니까!
돼지를 치고 팥 껍질을 먹다가 그 때서야 이 사람이 죄를 깨달았습니다. 자, 우리 아버지 집에는 먹을 양식이 넉넉하고 품꾼이 많은데, 나는 지금 여기서 돼지 먹을 것도 넉넉히 목 먹고 주려서 죽겠다. 내가 왜 이와 같은 운명을 당했나? 내가 왜 이 처지를 당했나? 내가 이제라도 아버지 앞에 돌아가야 하지 않겠느냐?
그야말로 탕자가 아골의 골짜기를 당했습니다. 그 아골 골짜기는 탕자에게 소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지나 아버지께로 돌아갔습니다. 아골 골짜기를 지나서야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사도 베드로의 생활을 잘 아십니다. 베드로가 다른 사람이 다 예수 님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자기는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을 할 때 베드로 앞에 소망이 없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붙잡혀 멀리 예수님을 따라 제사장의 집 문 밖에서 불을 쪼이고 있을 때 세 번씩 예수를 모른다고 비겁하게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주의 시선에 마주칠 때 자기의 한 말과 주님의 말씀을 깨닫고 곧 그 자리에서 일어나 캄캄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심히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그 통곡의 밤이 베드로에게 있어서는 아골 골짜기였던 것입니다. 그 밤을 통해서 베드로에게는 소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 나와서 많이 설교하고 있는 선교사 가운데서 J.D.세이서라는 청년 선교사가 있는데, 이 선교사는 본래 미일(美日) 전쟁시에 첫 번으로 동경과 일광(日光) 등 몇 곳을 폭격한 A.L.듄니들 부대의 폭격 기수로서 처음으로 폭탄을 던졌던 사람입니다. 던지고는 항공모함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 비행기가 모두 중경(重慶)으로 가던 도중에 불행히도 이 사람이 탔던 비행기는 가솔린이 부족하여 그만 중간에서 일본인이 주둔한 지역에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어 상해로, 북경으로, 혹은 일본으로 3년 간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 포로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 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장해서 오래 교회를 떠났던 사람입니다. 자기 말대로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심지어 도적질까지 했습니다.
오랫동안 감옥에서 고생하는 가운데 전에 듣던 복음이 다시 생각나고 하나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나고 자기의 죄를 깨달아서 그 감옥에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회개를 한 후에는 자기가 다시 일본에 와서, 비록 자기가 처음에는 폭탄을 가지고 일본에 왔었지만, 이번에는 복음을 가지고 전도하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가 기독교 대학 패시픽 대학(大學)에서 공부를 마치자 곧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사람이 많은 가운데도 특히 미·일 전쟁을 일으켜 진주만을 처음 폭격한 일본 비행대의 사령관이었던 후지다 라는 대위가 이 분의 말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3년 동안 많은 괴로움을 받고 그 가운데서 눈물을 흘리며 자기의 죄를 회개한 그 동안의 감옥 생활이 괴롭기는 괴로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아골 골짜기였고 아골 골짜기가 있는 까닭으로 그에게는 소망의 문이 있었습니다. 우리 애국 청년 가운데도 포로 생활하는 가운데 아골 골짜기를 통하여 새로운 은혜를 받고 지금 신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새해 둘째 주일 저녁인데, 금년 일을 가만히 내다볼 때에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를 우리가 걸어가려고 합니다. 이 1년여 동안에 무슨 일이 생길는지 모릅니다. 나 개인으로나 가정으로나 교회로나 국가로나 어떤 일이 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걸어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걸어보지 못한 길이요, 생각건대 음침한 골짜기가 될는지 모릅니다. 알지 못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 것은, 우리가 비록 장래의 일은 모르나 우리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내 손목을 붙잡고 이 길을 간다고 하면 우리는 어떤 일을 당하든지 축복을 받고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민족과 국가도 축복을 받을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금년 1년 동안 우리 개인과 우리 교회와 또 가정, 국가와 같이 하신다고 하면, 물론 우리는 두려워할 것 없고 의심할 것 없고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일어나라, 어찌해서 엎드려 부르짖기만 하느냐? 너의 군대에 하나님의 물건을 도적질할 자가 있는 고로 내가 너희를 떠난 것이다. 그것을 없이 하라. 죄를 없이 하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실 조건이 있습니다.『네 속의 죄악을 없이 하라』아간을 돌로 쳐죽이고 그 가장 물을 불사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기에 너무 과하다 생각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신령한 진리를 가르쳐 주기 위해 모두 비유로써 가르쳐 주신 말씀인 줄 압니다.『네 눈이 죄를 범하면 그 눈을 뽑아 버리라. 한 눈 가지고 하늘 나라에 가는 것이 두 눈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나으리라. 네 손이 죄를 범하면 찍어 버리라. 한 손 가지고 천당에 가는 것이 두 손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나으리라. 네 발리 죄를 범하면 찍어 버리라』이와 같이 가장 엄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계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우리 마음 앞에 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주께서 내 마음속에 들어오시려고 하면, 내 마음속에 아간이 없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욕의 아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탐심의 아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짓의 아간,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아간, 불평과 불만의 아간,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아간이 있습니다.
이 아간을 없이 하여야 됩니다. 온전히 없어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마음속에 이 아간이 있습니까? 그러면 우리 마음의 아간을 없이 하여야 됩니다. 우리 가정에 아간이 있습니까? 가정의 아간을 없이 해야 됩니다. 우리 국가에 아간이 있습니까? 이것을 없이 하여야 됩니다. 그래야 북진(北進)하고 통일합니다. 말로만 북진하고 통일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저 그렇게 소망만 하면 됩니까? 아골 골짜기를 지나야 소망의 문이 열립니다.
그리해서 우리가 이 새해 벽두에, 새 길을 걸어가는 이 자리에서 내 마음속의 모든 아간에 속하는 것을 철저히, 내 잠재 의식에 있는 것까지 온전히 소탕해 부리고 우리 주님과 동행해서 금년 1년 동안에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로나 우리 국가로나 참된 축복을 받는 새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아간을 택하겠습니까? 아골 골짜기를 지납시다. 그래야 소망의 문이 열립니다.
(1955년 1월 9일 저녁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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