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야고보서4:12-17)

새벽지기1 2017. 2. 4. 06:50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어느덧 1954년도 거의 다 저물고 마지막 주일을 당했습니다. 변함없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지러운 땅에서 지난 1년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히 지내오고 개인으로나 가정으로나 교회로나 국가적으로 받은 모든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연말을 당하게 될 때에는 특히 두 가지 생각이 마음 가운데 들어오게 됩니다. 하나는 어떻게 세월이 빨리 갔는지 옛 말에도 광음은 유수(流水)와 같고 살과 같이 빠르다고 하는 말이 있지마는, 아마 오늘말로 바꾸어 말하면 광음은 전파와 같이 빠르다고 말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연말을 당할 때에 우리 교회 안에, 가정에 이미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로 가신 이가 여러 분 계십니다. 혹은 우리 아버지, 혹은 어머니, 남편, 아내, 혹은 아들 딸… 우리가 정월 첫 주일 이 자리에서 같이 예배 드린 교우들 가운데 이미 딴 나라로 가신 교우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들을 가만히 생각할 때에 자연히 참 그야말로 인생은 무상하고 우리가 언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이런 생각이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옵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인생의 이런 방면에 대해서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야고보 장로는 12지파(支派)로 흩어진 자들에게 편지하기를『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여 우리의 생명을 안개에 비유해서 말했습니다. 이사야 40장 6-7절을 읽으면 이런 말이 기록되었습니다.『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화는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드는 것은 여호와의 기운이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과 같도다.』여기 인생의 육신 면을 가리켜서 풀에 비유해서 가르쳤습니다. 시편 102편 3절에 보면 이런 말로 기록되었습니다.『대개 나의 사는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도다.』연기에 비유해서 가르칩니다. 또한 시편 144편 절에는『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사람은 헛된 것 같으며 그 날은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 같은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그림자에 비유해서 가르쳤습니다. 여기에 가르친 모든 말씀을 생각해 보면, 육신만에 인생을 안개 혹은 연기, 모든 것을 간단하게 말하여 한 가지라고 가르칩니다. 인생은 잠깐이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안개가 잠깐 아침에 보이지마는 조금 있으면 사라집니다. 혹은 푸른 풀은 오늘 아침에 아름답게 자라지마는, 그 꽃들이 찬란하게 피지마는, 오래지 않아서 바람이 불 때 풀은 마르고 꽃은 집니다. 잠깐 있다가 사라집니다. 연기가 굴뚝에서 나올 때 그 존재를 잠깐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후에는 이어 사라지고 맙니다. 그림자가 잠깐 생기지마는 조금 있다가 보면 그림자의 형태도 볼 수 없습니다.
인생의 이 육신 면을 생각하면 안개와 같고 불과 같고 연기와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은 사실인데,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이 사실을 직면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이 인생을 잠깐이라고 하는 것, 우리의 육신 면은 곧 사라진다는 것, 이것을 분명히 깨닫고 이 사실을 직면하는 사람은 소극적으로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참된 축복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령 소극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가 이런 면을 분명히 깨달으면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시지요? 어떤 곳이 부자가 있었는데 곡식이 잘 되어서 곡식이 많은데 그 곡식을 다 간직할 창고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창고를 헐어버리고 굉장한 새 창고를 짓고 여기에 가득히 두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서는 기뻐서『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 네 곳간에 먹을 것이 넉넉하다』고 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했습니까?『어리석은 자여, 오늘 저녁에 네 영혼을 부르면 뉘 것이 되겠느냐?』우리가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잠깐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다면 이 부자와 같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줄 아는 그런 생각은 버리겠고 물질이나 금전에 대한 분에 넘치는 생각은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약을 읽으면 여러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란 사람은 젊은 사람이올시다. 아브라함이 아무래도 가산이 많아서 나누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겸손한 아브라함은 산에 올라가서 그들 앞의 넓은 들을 바라보면서 목자가 서로 싸우니 서로 갈라져 있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롯이 우편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롯이 그 산에서 저 소돔과 고모라 벌을 바라보니 토지가 비옥하고 푸른 풀이 무성하고 양치기에 좋아 보였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물질을 택했습니다. 의리를 버리고 물질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소돔과 고모라의 땅은 비옥하지마는 그 사람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창피한 꼴을 많이 보고, 마지막 소돔과 고모라가 망할 때에 겨우 아브라함의 기도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지마는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아간이란 사람의 이름을 알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 거기 있는 모든 보물은 바치고 한 사람이라도 개인으로 취하지 말라고 이렇게 명령했지만, 아간이 그 명령을 어기고 항상 살 것 같아서 보물을 몰래 실어다가 자기 천막 밑을 파고 묻어 두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아이 성 싸움에 승리하지 못하고 실패하여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에 제비를 뽑아서 이것은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렇게 된 것을 깨닫고 아간의 일족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니라』 이 말을 기억했던들 이렇게 과대한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에 내려와 보더라도 유다는 재주 있는 사람, 예수를 3년간이나 따라다니던 사람,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뽑힌 사람입니다. 마지막에 무엇 때문에 자기의 주를 팔고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습니까?『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우리가 이것을 기억하면 물질에 대한 과분한 욕심, 그것 때문에 어리석은 생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지위나 권세에 대해서도 어리석게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위나 권세도 하나님께서 근본적으로 주시는 것인데 지위나 권세를 받았으면 충성스럽게 그 직분을 감당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거두시면 또한 감사히 그것을 면할 것뿐입니다.
다윗 왕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인물이 잘나서 또한 머리털이 많고 아름다워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난 사람입니다. 다윗 왕의 셋째 아들이면 지위도 높고 권세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부러울 것 없을 만한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거기에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 아버지의 지위를 탐냅니다. 그리해서 불량배를 모아 가지고 군대를 조직하여 마지막 기회를 엿보다가 예루살렘 성을 습격했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도망했습니다. 자기 아버지의 궁(宮)에 들어가서는 말할 수 없는 추악한 행동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잘 압니다. 마지막에는 관군에게 패해서 노새를 타고 도망하다가 그 많은 머리털이 상수리나무에 걸려서 노새는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상수리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습니다. 군사가 쫓아가다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매달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모압 대장에게 와서 보고하기를 그 반역자 압살놈이 그 상수리나무에 매달렸다고 했습니다. 요압은 가서 창으로 압살롬의 신장을 찔렀습니다.


인생의 일생이 지위나 권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 면으로 생각하여 볼 때에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모든 풀은 마르고 꽃은 진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이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이조의 역사를 더듬어 볼 때에도 우리가 수양대군에 대해서 잘 알 것입니다, 자기 형님 문종 대왕의 충신인 사육신을 무죄한데도 참혹히 학살하고 마지막에는 죄 없는 단종까지 학살하고 그리고 자기가 찬탈을 해서 왕위에 올라앉기는 했습니다. 정작 왕위에 올라앉고 보니 꿈자리가 사납고 언제나 마음의 불안한 상태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번민(煩悶)은 심한데 이것을 이길 방법이 없으니까, 그 때 불교로 돌아간다고 파고다 공원자리에 절을 지었습니다. 절을 지었다고 해서 평화가 올 리가 없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꿈에 문종의 황후가 입에 피를 물고 나타나서『네가 내 아들을 죽였으니 내가 네 아들을 죽일 것이다』하였답니다. 그 후 며칠 후에 자기 맏아들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었습니다. 겨우 10여 년 왕위에 있다가 50대에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네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우리가 지위나 권세나 이런 데 대하여 과분한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됩니다.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음모와 모략으로써 이런 지위를 유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을 얻으려고 애써서는 안 됩니다.『너희 생명이 무엇이냐?』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는 때가 있는 것을 기억하여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 됩시다. 뿐만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정욕과 향락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이렇게 무상한 면을 바로 깨닫고 이 세상의 정욕이나 향락이라는 것은 일시 있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을 때에는 그런 자리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니엘서 5장에 나타난 벨사살 왕의 연회를 기억하시지요? 벨사살 왕은 젊은 사람이올시다. 호화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일 천 귀인과 후궁을 다 모아놓고 대연을 배설했다고 그랬습니다.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고 주흥(酒興)이 그야말로 고조하게 된 때에는 심지어는 서언에서 쓰던 기명을 가져오라고 해서 성전에서 쓰던 그 기명에 술을 부어 마시면서 질탕하게 놀았습니다. 한창 놀 때에 갑자기 담에 이상한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 날 저녁에 메대 파사군대가 들어와서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이 다 학살당하고 바벨론은 멸망하고 온 세계는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어떤 향락이든지 어떤 연회든지 하나님을 떠난 연회나 향락은 다 벨사살의 연회와 같이 이미 담에 손가락이 나타나 글을 써서 판단했습니다.『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달고 달아보니 가벼워 그런 까닭으로 갈라내겠다.』
하나님이 없는 향락, 하나님이 없는 세상의 모든 취미라는 것은 하나님의 저울에 벌써 달아서 가벼워졌어요. 그것을 취하는 사람에게 멸망의 심판이 불시에 올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런고로 성경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너희들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사람이 만일 세상의 것을 사랑한다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대개 세상에 있는 것은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에게로 온 것이 아니요 이 세상에서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가고 그 정욕도 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세세 에 있을 지어다.』바로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크리스마스 날 저녁에 여러 예배당에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신성한 노래가 들려 나오지만, 서울 어느 모퉁이 어떤 댄스 홀에서는 남녀가 모여서 밤새도록 떠들어서 고요한 밤이 아니고 소란한 밤이 되었습니다.


『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하나님을 떠난 모든 향락은 잠깐 있다가 없어집니다.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이 면을 분명히 깨달으면 적극적 면으로 생각할 때 축복을 받는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고 시대에 온 교회가 문자 그대로 의식주의에 흘러가게 될 때 홀로 순 복음의 진리를 굳게 잡고 그 등불을 굳게 잡고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내려온 교파가 있는데 이 교파를 월데시안 교파라 말합니다.
그 교파의 원조는 피이터 와일더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의 전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젊었을 때 여러 다른 청년들과 같이 술도 마시고 질탕하게 한창 놉니다. 그렇게 놀던 가운데 어떤 한 청년이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가슴에 손을 얹고 넘어졌어요. 넘어지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아마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심장마비 같은 병인가 봅니다. 갑자기 죽었어요. 아마 뇌일혈인지도 몰라요. 와일더가 그 청년이 갑자기 급살하는 것을 보고 머리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왔습니다. 과연 인생이 무엇이냐, 이렇게 인생이 무상하냐고 생각했습니다. 깊이 인생을 생각하게 되고 성경을 읽게 되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참된 신앙에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옛날 이야기려니와 루터의 전기를 보아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터가 어떤 흐린 날, 아마 비가 오고 번개가 치는 날 친구와 같이 길을 갈 때에 갑자기 벼락이 쳤단 말입니다. 옆에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아 죽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루터가 수도사가 되기를 결심하였습니다.
불란서의 유명한 과학자 파스칼은 많은 아름다운 책을 저술한 저술가요 종교가였습니다. 파스칼의 생활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넉넉한 가정에 태어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인데 한 번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그만 높은 다리 위를 지나가다가 말이 높은 다리에서 그만 실수해서 강에 떨어져서 말도 빠지고 자기도 빠졌습니다. 다리가 부러지면서 죽을 뻔했습니다. 파스칼이 오래 다리를 고치면서 그 때 경건파에 속하는 좋은 신자를 만나서 참된 신앙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잠깐이라는 것, 인생이 무상하다는 것을 바로 깨닫는다고 하면, 우리가 참된 신앙에 자연히 돌아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쓴 요한 번연에 대해서도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젊어서 군대에 들어갔을 때 보초병을 섰었는데 무슨 일이 있어 잠깐 자기 친구를 세우고 갔다 왔는데 그 사이에 적병이 와서 보초 선 사람을 총으로 쏘아서 그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꼭 자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이 일을 깊이 생각하던 중 번연은 깊은 신앙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잠깐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면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하든지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내 마음이 심히 안타깝고 내 마음이 비장합니까? 그 슬픔도 잠깐입니다. 어느덧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 나라에 가서 만날 때가 옵니다. 부부는 한 몸이라고 했는데 한 몸이 갈라져서 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내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서 나 홀로 외로이 세상에 남아 외로운 방에서 눈물을 흘립니까? 그 눈물도 잠깐입니다. 어느덧 이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다 지나고 우리도 하늘 나라에 가서 만날 날이 오래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무슨 고통을 당합니까? 우리가 무슨 환난을 당합니까? 이 고통과 환난도 잠깐 뿐입니다. 성경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하늘 나라에서 장차 받을 영화의 중한 것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 면을 분명히 깨달으면 자연히 이 세상은 잠깐이니 내가 일할 날이 많지 아니하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동안에 주의, 일을 부지런히 하고 국가에 봉사하고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할 것입니다.


전에 제가 신의주에서 일할 때에 저는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그 때 이번에 장로가 되신 강학주 장로님의 할머니이신 최반석 권사님이 계셨는데 그 때 아마 60대가 지났어요. 환갑 때가 지났어요, 그렇지마는 건강하셔서 명예 권사인데 교회 일을 어떻게 열심히 보는지 이 권사 님의 심방 하는 법은 한 집에 가서 심방하고는 그저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는 다시 돌아보지 않고 다른 집으로 갑니다. 왜 그런고 하니 돌아보면 편안히 가세요, 편안히 가세요 하여 이야기가 길어져서 심방이 길어지니까 빨리 하려고 한 번 인사하고 다른 집으로 가고 맙니다. 신의주에서 제2 예배당을 지을 때 어떤 가난한 노인이 예배당을 처음 지을 때부터 끝마칠 때까지 늘 나오셔서 펌프의 물을 길어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그저 펌프 물긷는 것을 매일 나와서 끝까지 자기가 담당했습니다.『할아버지가 힘드시는데 어떻게 매일 하십니까?』 이렇게 말하며『나야 나이 많아서 다른 일 할 수 없고 돈도 없어 연보도 많이 못하고 내가 정성을 다하기는 하여야겠는데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으니 죽는 날까지 이 예배당 다 지을 때까지 물을 그냥 푸겠습니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잠깐이란 것을 알면 한 초 한 분을 아껴서 주의 일을 할 것입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옵니다. 낮이 될 때에 너희는 일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옵니다.
내 발로 걸어다닐 수 있을 때에 한 집이라도 심방하고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파하세요. 내 다리로 걸어다닐 수 없는 때가 속히 옵니다. 여러 청년들, 성가대나 유년부나 책임 맡기면 할 수 있을 때에 열심히 잘하셔요.
왜냐하면 50대가 지나면 유년부 맡고 싶어도 누가 안 맡깁니다.『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우리 육신 생명은 이렇단 말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 믿는 사람은 인생의 육신 면은 이런 것을 깨닫고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이런 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을 얻어서 이 세상에서는 바로 살고 육신 면을 초월해서 영원히 사는 영생을 우리가 얻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찬송가에 있는 말씀과 같이, 세월이 여류 하는데 이 나그네 된 나는 괴로운 세월 가는 것 금할 것 아무 없습니다. 우리 신앙으로 사는 사람은 세월이 가는 것을 섭섭히 생각할 것 없습니다. 옛 해도 감사로써 보내고 새해도 또한 감사로써 맞이합시다. (1954년 1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