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서로 용서하라 (에베소서4:17-32)

새벽지기1 2017. 1. 27. 12:54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32)


마태복음 18장 35절, 에베소서 4장 32절, 골로새서 3장 13절, 베드로 전서 3장 8-9절, 마태복음 5장 44에 있는 모든 교훈을 한 마디로 종합하면「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용서의 도를 생각해서 은혜를 기다리기로 하겠습니다. 이미 마태복음 18장에 있는, 예수 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말씀은 이미 다 들었습니다. 그 비유는 이 용서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서로 형제간에 용서해 주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이 마땅히 지킬 도덕적 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은 까닭입니다.
여기 임금이 어떤 종에게 1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해 주었는데 이렇게 많은 빚 탕감을 받은 종이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탕감해 주지 않는 까닭으로 주인이 노했다고 그랬습니다. 1만 탈란트와 1백 데나리온은 전연 비교되리 아니하리만큼 그 양에 있어서 천양지차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의 속담 가운데도 사람이 하루에 죽을 죄 한 번씩은 짓는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은 바 죄악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크고 많은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우리 형제에게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내가 사함을 받은 바 그 죄악에 비교하면 백 데나리온 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많은 죄를 용서함을 받았으니 형제간에 여간한 죄라도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히 우리 믿는 사람의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또한 둘째로 이 비유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우리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형제간에 죄를 사해 주는 것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필수 조건 즉 반드시 지켜야 할 만한 것이라고 여기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다 가르치신 후에 마지막으로 하신 권면이『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할 것이라』하셨습니다. 여기 마태복은 18장 마지막 절에도『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럽에서 된 일인데 중고 시대의 어떤 귀족의 이야기입니다. 그 때의 귀족은 봉건시대인 까닭으로 각각 성을 맡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성주가 어떤 다른 성주와 혐의가 있어서 늘 미워하고 언제든지 기회만 있으면 원수를 갚을 마음이 있었는데, 한 번 들으니까 자기와 원수 되는 그 성주가 어느 곳에 여행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곳을 가려고 하면 자기가 다스리는 영토를 지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그 성주는 이 쪽 편의 성주가 모르게 몰래 그 영토를 지나가려고 계획했지만, 불행이 이 편 귀족이 그 비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 참 천재일우의 기회이다.』하고 꼭 이번에 이 사람이 원수를 갚기 위해서 미리 사람을 다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길에 매복해 놓았다가 그 사람이 지나갈 때에 아주 없애버리겠다고, 이런 계획을 세웠습니다. 마침 그 성의 감독이 그 계획을 들었습니다. 그리하려 그 성주를 찾아가서 신자는 마땅히 서로 용서할 의무가 있는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귀족이 다른 사람의 죄는 용서해 줄 수 있지만 그의 죄는 용서해 줄 서 없다고 처음에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그래 할 수 없어서 그 감독이 전하는 것을 그만 두고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는데 집에 가기 전에 같이 우리 하나님께 예배 보자 하여 그 모든 가족들과 그 부하들을 다 모아놓고 그 감독의 인도로 예배를 보았습니다. 예배를 거의 마치고 주기도로 마치자고 하며 주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감독이 하는 말이『내가 이 주 기도를 할 텐데 한 마디씩 한마디씩 따라 하시오』하였습니다. 그래서 주 기도를 내러가다가『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거기까지 한 다음에, 그 감독이 얼굴을 들면서 그 귀족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다음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이런 말이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희롱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짓말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주기도를 나와 같이 따라 하려고 하면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고는 이 주기도를 따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이렇게 되면 자연히 과거에 당신이 지은 모든 죄를 지은 것까지 하나님께서 다 취소할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겠습니까? 이 주기도를 그만 두겠습니까?』이 귀족이 그 말을 들을 때에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생각해 보더니『과연 감독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가 가의 죄를 용서해 주고 제가 주 기도를 따라 하겠습니다.』그 앞에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그 계획도 다 취소해 버리고 이 감독과 같이 주 기도를 계속해서 외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신 것은, 내가 내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시는 까닭으로 내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내가 되 사함을 받는 필수 조건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혐의 있는 것, 나에게 잘못된 것을 용서해 주지 아니하면 자연히 우리 마음 가운데 그 사람을 미워하는 생각이 생깁니다. 증오심, 그 사람에 대한 불안한 마음, 원한, 독한 마음을 늘 마음 가운데 품기 쉽습니다. 자연히 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 사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현재 내 정신 생활과 육체 생활에 많은 해독을 가져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대해서 혐의를 가지고 증오심과 독한 마음, 원한을 풀지 아니하고 내 마음 가운데 암탉이 달걀을 품듯이 품고 있으면 그 독한 마음이 내 육신과 정신 생활에 많은 해독을 가져옵니다. 스탠리 존스 혹은 놀만 필의 책을 읽으면 이런 원한과 독한 마음이 우리 정신과 우리 육체에 얼마나 많은 해독을 가져오는지 많은 실례를 들어서 말해 주었습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있어서 음식도 잘 소화가 되고 건강한 분인데 갑자기 음식을 먹으면 곧 토해버리고 맙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10분도 못되어 토합니다. 의사에게 가서 아무리 의학적으로 진단해 보아야 무슨 원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요사이 흔히 미국에서 하는 법대로 이는 의학과 생리학적으로 우리가 원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므로 이제 필연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라 하여 그의 심리를 조사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면서 발견한 결과는 그 여자는 젊은 부인인데 어떤 남자와 결혼해서 그 남편과 잘 살았습니다. 그 여자가 꼭 싫어하는 것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시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이 시어머니가 그 동안은 따로 살다가 며칠 전에『내가 아무 날 너에게로 간다』하는 전보가 왔습니다. 이 전보가 온 후부터는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부인이 갑자기 오른팔을 들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조사해 보아야 원인을 알 수 없는데 심리적으로 잘 조사해 보니까 어떤 원인인고 하니 그는 자기 본가의 어머니와 같이 오래 살던 여자였는데 그 어머니와 늘 불화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손을 들어서 자기 어머니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러나 차마 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 심리 가운데서 그만 팔을 못 쓰게 되었습니다. 마음을 고쳐 회개한 후에야 이 여자가 오른팔을 썼다고 합니다.
대개 우유를 서양에서는 많이 먹는데 소가 성날 때에 짠 우유는 사람에게 해롭다 합니다. 우유뿐 아니고 어머니가 성났을 때에 먹인 젖은 아기에게 대단히 위험하다고 합니다. 아기 어머니들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싸움하면서 젖먹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합니다. 성나고 독한 마음이 생기면 그 독소가 분비된다고 합니다.
성난 다음에는 왜 소화가 안 되는고 하니 위 가운데 위액이 잘 분비되지 않고 위액 가운데 독소가 분비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육신을 낼 때는 선의를 가지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살아야 육체에 고장이 안 나게 만드셨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독한 마음을 가지면 우리 육신에 고장이 생깁니다.


이런 말은 소극적이려니와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해 주어야겠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이렇게 한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하셨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 형제의 허물을 용서해 주어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는 성품은 하나님에게 속하는 성품입니다. 모든 성품 가운데 가장 고귀한 성품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윗 왕의 역사를 잘 알거니와 다윗 왕도 허물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고 예수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윗의 성품 가운데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성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여러분 기억하실 줄 압니다. 다윗이 한 번은 자기가 압살롬의 난을 만나 쫓겨서 먼 곳으로 달아났습니다. 길가에 황급히 달아나는데 길가에서 본래 다윗에게 대해서 혐의를 가졌던 게라의 아들 시므이라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기뻐서 손뼉을 치면서『피 흘린 자여 잘 가거라, 네가 사울의 왕위를 빼앗더니 네가 네 아들에게 보좌를 빼앗겼구나. 잘 도망가거라, 잘 도망가거라.』비웃고 돌을 내던지면서 야유를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함께 쫓겨가던 다윗의 대장 요압이 성이 나서『대왕이여, 제가 곧 가서 저놈의 목을 베어 오겠습니다』하였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무엇이라 했는지 아십니까?『아서라, 그만 두어라 내 몸에서 난 아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하물며 베냐민 지파에 속하는 저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 있느냐? 이것이 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죄로 주는 것인데 그 사람은 가만 두어라』
그랬더니 그 후에 압살롬의 혁명이 실패가 되고 다시 다윗이 개선 장군과 같이 예루살렘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가까이 오니까 쫓겨갈 때에 그렇게 욕을 하고 저주하던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그의 일족을 다 모아 가지고 길가에 나와 엎드려서 제발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 때에 또 요압이 말하였습니다.『저놈이 대왕이 쫓겨 나갈 때는 그렇게 욕을 하며 저주하더니 이제는 다시 와서 환영하며 용서해 달라고 빕니다. 저놈을 처치합시다』그 때에 또 다윗이 하는 말이『그만 두어라 오늘과 같이 기쁜 날 우리 유대 나라에서 사람을 죽여서 되느냐. 그 사람을 용서해 줄 마음이 있다』하고 그 사람을 데려다가『내 너를 용서하고 죽이지 않을 테니 평안히 살아라』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여러 번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를 여러 번 만났으나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 님의 그림자가 된다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일 국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쥐고 있을 때에 일찍이 옛날 자기를 미워해서 팔아먹고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자기 형제들이 형편없는 모양이 되어 자기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렸습니다. 그 때에 원수를 갚으려면 얼마든지 갚을 수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원수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당신네들이 이와 같이 다 했소, 나는 당신들의 죄를 용서해 주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이 곳에 있으시오』하였습니다.
어떤 이가 링컨의 성격을 평해서 말하기를『아브라함 링컨은 그 마음이 천하라도 용납할 만큼 넓지만 그 마음속에는 악이라는 것은 조금이라도 둘 방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 가운데도『누구에 대해서나 악의를 가지지 말라. 모든 사람에게 선의를 가지라』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남북전쟁 때에 어떤 군인이 군대를 이탈하다가 잡혔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 때에 이탈하다가 잡히면 군법회의에 송부(送付)되어서 판결을 받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마침 이 청년은 과부의 외아들이었습니다. 이 과부가 소식을 듣고서 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자기의 아들을 살리려면 대통령의 특사를 받는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애를 써서 대통령을 면회하여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자기 아들을 바로 인도할 데니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이 용서한다는 특사를 내렸습니다.
그 어머니가 너무 기뻐서 백악관을 나오면서 혼자 하는 말이『나는 그것이 꼭 거짓말인 줄 알았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같이 오던 사람이『무슨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단 말이요?』하고 물으니 이 부인의 하는 말이『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링컨은 아주 못생긴 사람이라고 그럽디다. 얼굴이 아주 험악하게 생긴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실상 대통령을 면대해 보니까 그 사람처럼 아름답게 생긴 미 남자는 없습디다.』
혹 여러분 중에 링컨의 사진을 보신 분이 많이 계실 줄 알지만, 사실 링컨은 미남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죽을 자리에 들어간 것을 용서해 주는 사인을 하는 아브라함 링컨의 얼굴은 아마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스테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이 사람들의 죄를 이 사람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기도했습니다. 돌로 맞아 죽지마는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난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의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사람의 일이요, 그러나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행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40년 전 터키에서 알메니야 사람 특히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학살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어떤 터키 군인이 알메니야 믿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학살하는데 마침 이 집에는 오빠와 누이가 있었습니다. 먼저 남자를 만나서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 때 옆에 있던 누이는 용서하기를 빌었으나 자기마저 죽이려 하니 피하여 요행 살아났습니다. 이 여자의 직업은 간호원이었습니다.
이 일 이후 수개월 후에 어떤 환자가 들어오는데 부상을 당해서 아주 얼굴이 형편이 없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상을 당한 아주 중환자가 입원을 해서 그녀가 치료를 하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그 사람의 얼굴을 보니까 그 사람은 바로 몇 달 전에 자기 오빠를 죽인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 마음 가운데『내 원수이며 내 오빠의 원수인데 어떻게 할까?』하고 마음 가운데 번민(煩悶)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여자는 곧 생각하기를『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 주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내가 이 사람을 죽여서 될 수 있나?』하고 이 사람도 잘 치료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두기만 해도 죽을 형편인데 어떻든지 정성을 다해서 잘 치료해 주었습니다.
한 달쯤 후에 이 사람이 점점 나아서 눈을 뜨더니 두루 살폈습니다. 자기를 간호해 주던 간호원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보니까 자기가 몇 달 전에 죽이려고 하던 그 여자와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편 놀라기도 하고 한편 두려워도 하면서『당신 오빠가 몇 달 전에 죽은 일이 없습니까?』물어보았습니다.『예, 죽었습니다.』『그를 누가 죽였는지 압니까?』『그럼 알지요.』『누굽니까?』『당신 아닙니까?』그 때에 이 터키 군인이 더욱 놀라면서『그럼 당신이 이것을 처음부터 안 모양인데 그러면 내가 당신의 오빠를 죽인 당신의 원수인 줄 알면서 어떻게 당신이 이렇게 친절하게 나를 정성껏 간호해 주었소?』반문했습니다.
그 때에 이 간호원이 하는 말이『나는 처음 당신을 만날 때에 그런 독한 마음도 품어 보았지요. 그렇지만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인데 우리 주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그 교훈을 기억하고 내가 당신이 내 원수인 줄 아는 까닭으로 더욱 친절하게 간호하려고 지금까지 간호해 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이렇게 낫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 터키 군인은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만일 당신이 믿는 기독교가 이와 같은 것이라면 나도 이제부터 예수를 믿겠소』하고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다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원수라도 용서해 주고 죄를 사하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 나라 속담에도『은혜는 물에 새기지만 원수는 돌에 새긴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을 잊어버리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내 재산을 다 탈취하고 내 가족을 다 살해한 사람들은 더욱 용서하기 힘들 줄 압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도 조금 잘못하면 이 원한과 분한 마음을 품고 그대로 지나가기 쉽습니다. 더욱이 언제든지 어느 사회든지 전시에는 증오심과 복수심과 원한과 독한 마음이 더 심해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많은 죄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내가 내 형제의 죄가 비록 많을지라도 용서해 주어야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원한이라는 것, 독한 마음이 얼마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해독을 주는지 압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 형제간에 어떤 일로 어떤 손해를 보았든지, 내게 어떤 괴로운 일을 했든지, 지금도 내게 어떤 손해를 주고 있든지, 재정으로나 명예로나 다른 방면으로 나를 불리하게 했든지, 우리 마음속에 분한 마음과 원한이 있으면, 오늘 이 교회 문을 나가기 전에 온전히 다 하나님에게 자복하고 회개하고 용서해 주고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를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다 같이 주 기도를 하겠는데 지금도 말했지만『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해준 것과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실 내 형제의 죄를 사하여 주지 않고 기도를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희롱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다 머리를 숙여서 각기 자기 가슴을 더듬어서 조금이라도 혐의가 있으면, 성경 말씀 그대로 용서하여야 되겠습니다. 피차에 용서하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해야겠습니다 (1954년 5월 30일 낮 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