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나』(눅 24:25,26)
오늘은 기쁘고 즐거운 부활 주일 아침 예배로 우리가 모였습니다.
이 우주에는 부활의 원리가 있습니다. 재생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명의 근본이 되시는 까닭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생을 내실 때에 곧 죽을 생명으로 내시지 않은 것입니다. 단순히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인생에게 사망이 온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만민의 죄를 대속하셔서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죄악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죽은 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었습니다. 그를 믿는 사람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준 것입니다. 오늘 아침 읽은 이 설경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부활절 어떤 오후에 된 일입니다.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거기서 참혹히 죽으시는 광경을 보고 돌아온 제자들은 말할 수 없는 상심 가운데서 낙심하게 되었고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부활절 이른 아침에도 제자들이 먼저 무덤에 갔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여인들이 먼저 일찍이 무덤에 가서 빈 무덤을 보고 천사들을 만나보고 돌아와서 그 사실을 고할 때에 제자들이 달음질하여 갔다고 그랬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제자들과 거기 있던 사람들은 아직까지 예수 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이 마음 가운데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아직 앞길의 장래가 캄캄하였고,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도 자세히 알 수 없었습니다. 그대로 예루살렘에 있다가 언제 신변의 위험이 닥쳐올지도 모른다고 느낀 제자들 가운데 두어 사람은 조용한 엠마오라고 하는 촌에 가서 기다리면서 어떻게 되어 가는지를 살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이런 심경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향하여 천천히 걸어가던 도중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잊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길을 외로이 걸어가면서 그 두 제자가 주고받은 말은 다른 말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그 때에 뜻하지 아니한 어떤 행인이 그 두 사람의 뒤를 따라오면서 같이 걸어갑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에 대한 이야기만 하느라고 아마 그이를 처음에는 모른 것 같습니다. 그 때에 그이들을 따라오는 사람이 하는 말이『당신 네 들은 무슨 말을 그렇게 열심히 합니까?』하고 물어볼 때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어떤 점잖은 분이 따라옵니다. 그 때 그들의 표정은 슬픈 빛을 띠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심정을 그대로 말하여 준 것입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그 사람들이 그 때는 열심 이 나서『아, 당신도 예루살렘에서 오는 모양인데 근일에 예루살렘에서 된 사건을 알지 못합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 말과 일에 능하신 분, 위대한 선지가요 우리 이스라엘의 대속(代贖)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관원들일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실을 당신은 모릅니까?』비장한 가운데 그런 설명을 하여 주었습니다. 그 때 그 말을 듣더니 그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말이『모든 선지자의 말을 더디 믿는 미련한 사람들이여, 그리스도가 먼저 고난을 받고 그 후에 영광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그러면서 모세로부터 선지자들에게 내려오기까지 모든 성경을 풀어서 그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예수님이 지나갈 듯이 하니까 그들은 강권해서 같이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같이 식탁에 앉아서 떡을 떼어 줄 때에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이신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 이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냥 그대로 머물렀습니까? 엠마오에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니 곧 그 날 저녁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먼저 번에는 힘없고 맥없는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걸어왔지만, 이번에는 기쁨으로 달음질해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돌아갔습니다. 무엇 하러 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 님을 만난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기쁨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에서부터 엠마오로 내려오던 제자들의 그 심경, 그들의 그 감겨진 눈, 그리고 그들이 예수의 부활을 친히 보게되고 눈이 밝아진 다음에 기쁨으로 달음박질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되는 그 두 제자들의 심경과 그들의 행동을 비교해 보세요. 얼마나 천양지차(天壤之差)가 있습니까? 그 전에는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이 동행하지만 동행하는 예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눈이 열려져서 예수를 보고 예수를 본 까닭으로 기쁨으로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여러분, 부활절을 축하하는 오늘날에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 두 가지 형태의 제자가 있는 줄 압니다. 우리 가운데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오는 도중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 부활에 대한 말은 들었습니다. 성경에서 읽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참 부활의 예수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아직도 실망과 환멸의 비애 가운데서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예수께서 멀리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까닭으로 예수님께서 동행하십니다. 그들이 슬픔 가운데 있고 낙심 가운데 있으며 어려움을 당하는 까닭으로 예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동행하십니다. 성경 말씀으로 그르쳐 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살아 계시는 예수 님을 알아보지는 못합니다.
8·15 해방 이후와 6·25사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큰 고통과 큰 슬픔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한국의 교인을 예수 님께서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이와 같이 슬픔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모든 신도들과 함께 주님께서 지금도 살아 계셔서 신령한 가운데 동행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여전히 실망과 슬픔과 근심과 염려 중에 삽니다. 그러나 이들이 사관에 들어가서 음식을 나눌 때에, 떡을 주는 것을 받을 때에야 예수 님인 줄 깨달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는 사람은 이 세상을 다 살고 인생의 날이 다 저물어서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 나라에 가서 천국 잔치에 참여할 대에야 예수 님을 보게 됩니다. 그때에야『아, 나는 몰랐더니 내 일생을 주님께서 나와 동행하였구나』하고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물론 그것도 감사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예수 님께서 동행하던 그 군간부터 깨달아 알았던들 얼마나 더 엠마오 길을 기쁨으로 갈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의 눈이 감겨진 이유를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로, 믿기를 더디 한다고 그랬습니다.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눈이 감겨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했습니다. 여인들도 갔다 와서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곧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생으로서 그와 같은 기상천외의 일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믿기 어려웠겠습니다. 믿기를 더디 했습니다. 오늘날도 어떤 사람의 눈이 지금까지도 감겨져서 부활하신 주님이 자기와 동행하시건만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합니까? 실상은 믿음이 적은 까닭입니다. 믿기가 어려워, 이성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워, 대자연의 모든 신비를 인정하면서도 성경의 신비를 인정하기 어려워 믿지 않습니다.
둘째로는, 예수 님께서『너희들이 성경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로부터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자세히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지 않고 공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라는 책은 알지만 성경 자체는 읽기를 게을리 합니다. 다른 책은 많이 읽지만 성경 읽기는 게을리 합니다. 성경을 모릅니다. 그런 까닭으로 신령한 눈이 감겨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인생의 길을 걸어갈 때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같이 믿기는 믿으면서 슬픔과 근심과 낙심 가운데서 맥없는 외로운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길에서 동행하며 격려해 주시건만, 마음이 뜨거워지건만, 주님의 동행을 모르고 외로운 인생의 행로를 걸어가는 신자가 없이 않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앉은 여러분은 어떤 신앙 생활을 하십니까?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들이 그 교훈을 받고 떡을 떼어 주는 것을 먹고 눈이 밝아진 다음에는 이들의 방향이 변했어요. 예루살렘에서 멀리 가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해 돌아왔습니다. 기쁨으로 달음질했습니다. 가서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기쁨으로 돌아오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 하면서 일생행로를 걸어가되 기쁨과 즐거움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환난이 없는 것 아닙니다. 슬픔이 없는 것 아닙니다. 역경을 당하지 않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이 동행하시니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생행로를 걸어갑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한 것이 없느니라. 내가 어려운 일을 당할 대에 간밤에 주님께서 나와 같이 서서 계셨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몸을 버리신 주님께서 내 속에 사느니라』그런고로 옥중에서『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즐거워하라. 너희 양선 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쓸 것을 기도와 간구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너희 사람의 지각에 뛰어나는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다스릴 것이라』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기쁘고 즐거운 부활절 아침에 여러분의 믿음이 새로워지고 여러분이 성경을 더 연구하여 신령한 눈이 밝아져서 우리와 영원히 같이 동행하시는 주님을 체험하면서 생명 있는 신앙생활의 새로운 시작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프리카에 새로 개척 전도를 한 리빙스톤이 읽은 유명한 성경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다른 성경 구절이 아니고 마태복음 28장 마지막 절이올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시기를『온 하늘과 땅의 권세를 내게 주셨는데 너희들은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모든 사람을 가르치라』고 하면서 하시는 말씀이『또 내가 너희와 항상 같이 있으리라』하였습니다.
리빙스톤이 이 성경을 읽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들어갔다고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사람보다도 제일 진실한 사람이다. 예수님은 거짓말할 수 없어. 예수님은 글자 그대로 신사야. 세상의 다른 사람은 다 거짓말하되 예수님께서는 거짓말할 수 없어.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겠다. 내가 아프리카에 가면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실 것이 분명하다.』 이 확신 가운데서 담대히 고국을 등지고 암흑의 대륙에 가서 일생을 거의 외로운 가운데서 고독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혼자 한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같이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동행했습니다,. 격려했습니다. 힘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이 기쁜 부활주일 아침에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1954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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