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 24:5-6)
전쟁과 기근(饑饉)으로 황폐한 이 강산, 참혹한 이 민족 위에도 1953년 부활절의 서광은 비치었습니다. 어느 덧 우리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1900여 년 전 예루살렘 교외(郊外)의 동산을 헤매면서 빈 무덤, 빛나는 천사, 그의 명랑한 음성이 연상됩니다.『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느니라.』『사망의 권세는 깨어졌느니라. 흑암(黑暗)의 세력은 무너졌느니라.』그러면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오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활절은 이처럼 과거에 있어서는 1900여 년 전 겟세마네의 근방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간증입니다.
곧 고린도 전서 15장 3절의 말씀과 같이『이는 성경대로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느니라.』부활절은 예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대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회고하게 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초자연적,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종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남으로써 절망에 빠졌던 제자들은 새로운 용기와 담력을 얻었고, 이러한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담대히 증거 하는 날부터 기독교는 탄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활절을 맞을 때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이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권세까지 이기신 그리스도에게는 능치 못하신 것이 없고 모든 불의(不義)의 세력은 반드시 그리스도 앞에 패망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부활절은 현재의 의미로서 우리 신앙 생활의 한 상징입니다. 우리 신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과거의 사실로 믿을뿐더러 현재의 체험으로 삼아야만 합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부활대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시고…』『그런고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골 3·1)
이 모든 교훈은 우리 신자는 현재에 있어서 영적(靈的)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육에 죽고 영에 살아야 하겠습니다. 죄에 장사(葬事)하고 의에 다시 살아야 하겠습니다.『그런고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치시리라 하셨느니라』
영생(永生) 곧 영원한 생명은 죽은 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에 시작되는 것입니다.『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이렇게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주께서 나사로의 무덤 가에 서서『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참으로 예수를 믿어 중생(重生)한 사람은 이미 그 사망에서 나와 생명과 영생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이 이미 부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골 3·3) 아직도 흑암과 죄악과 사망 가운데서 헤매는 동포가 있습니까? 그러면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의 심령이 과연 부활의 축복을 받드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부활절은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부활절은 과거의 예수 부활의 사실의 증거일뿐더러, 또는 현재의 우리 신앙 생활의 상징일뿐더러, 한 걸음 더 나가서 장래에 될 일에 대한 예표(豫表)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과거에 이미 부활하였음과 같이 미래에 모든 인간의 큰 부활이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12-22).『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느니라』(요 5:28-29).『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래의 우리 신자의 부활과 이미 얻은 생명이 길이 계속될, 곧 불멸의 생(生)에 대한 예표(豫表)이며 확증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 모든 성도의 장래 부활과 또 내세의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의심 없이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오,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한국의 백만 신도여, 현재의 우리의 처지가 아무리 비참할지라도, 인간적 견지에서 우리 한국의 장래가 막연할지라도 우리는 조금도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이미 죄악의 권세를 타파하였습니다. 우리는 현재에도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미래의 영원한 소망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 부활의 신앙, 부활의 능력,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 앞에는 일찍이 적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 제국도 무릎을 꿇고 북구(北歐)의 만족(蠻族)도 항복하고야 말았습니다. 오늘의 로마 제국, 오늘의 만족이 제아무리 강한 듯하지만 반드시 그리스도 앞에 항복하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1953년 부활주일을 기하여 백만 신도가 한 덩어리가 되어 일제히 일어나 이 부활의 종교를 담대히 전파하십시다. 이것이 오늘 부활주일 아침에 우리 한국 신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입니다. (1953년 4월·부산 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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