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 해체의 서곡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페북을 열었더니 거기서도 단비와 같이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분당우리교회의 이찬수목사가 10년 후에는 교회를 해체하여 절반 이상의 교인들이 그 교회를 떠나 약한 교회를 돕게 하겠다는 소견을 발표하였다. 한국교회의 영적인 가뭄을 해갈할 반가운 빗소리를 듣는 듯하다. 그동안 대형화 일변도로 치달았던 한국교회의 광란의 질주에 제동을 거는 신선한 충격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단 큰 후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런 이 목사의 선언이 단순히 개혁적인 제스처를 표방하는 선동적인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단계에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지혜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 목사는 이런 소신을 발표하기 전에 교회의 장로들과 교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했어야 했다. 아무리 순수한 의도에서 나온 참신한 발상이라고 할지라도 목사는 그것을 독단적으로 밀고갈 수는 없다. 그럴수록 더 신중하게 교인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왜 그런 조치가 꼭 필요한지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교인들을 설득해야한다. 그렇게 교인들이 정든 교회를 떠나는 희생을 감수할만한 가치와 당위성이 있는지를 밝혀주어야 한다. 이 목사가 이런 준비 과정을 생략하고 먼저 저지르고 보는 식으로 접근한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앞으로 이 목사가 자신의 선한 의도와 참신한 프로젝트를 장로들과 교인들에게 잘 설득시켜 적극적인 호응과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리라고 믿는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한국교회에 대형교회 해체의 서곡을 울려주기 바란다.
앞으로 이 목사가 그의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교인들에게 교회가 대형화되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교회가 수적으로 일정한 사이즈 이상이 되면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기 불가능하다는 점, 즉 교인들이 성령 안의 친밀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교인들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수천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에서 대부부의 교인들은 담임목사조차 모르는 이름 없는 군중들이니 어찌 정상적인 목양이 가능하겠으며, 성령 안에서 교인들 상호간의 친밀한 교제와 섬김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성화와 영적인 성숙이 진행될 수 있겠는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병폐, 즉 교인들에게 참된 구원의 증거인 성화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문제는 대형화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대형교회가 제자도의 삶을 회피하고 무리 속에 안일하게 묻혀 신앙생활하는 익명의 크리스천들, 오래 교회생활을 해도 도무지 변화되지 않는 미성숙한 교인들을 양산해온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목사는 대형교회가 성경적으로 부흥하고 성공한 교회의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목양과 영적성숙이 불가능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구현하기에 심대한 제약을 안고 있는 아주 비정상적인 교회의 형태라는 점을 교회론적으로 밝혀주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온통 대형화를 추구해온 것은 목사들에게 기본적인 교회론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분명한 반증이기도 하다.
또한 교회가 대형화되면 그 구조가 안고 있는 생래적인 속성상 이 세대의 가치관과 날카롭게 대립하는 종말의 영인 성령보다 세상신이 더 활보하기 좋은 영적인 토양을 조성하게 된다. 대형교회는 겨자씨처럼 미미한 존재들을 통해 은밀하게 진행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보다 물량주의와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된 세속주의 가치관에 의해 작동되는 메커니즘을 안고 있다. 세속화의 물결이 교회로 은밀히 밀려들어오게 하는 구조적인 틈새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산출되는 영적인 감화력을 세상에 흘려보냄보다 거대한 건물과 재정과 수적인 위력으로 세상을 압도하려는 패권주의적인 오만함의 구린내를 풍겨 세상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한 대형교회는 영적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목사와 장로들의 허영심, 즉 종교적인 야망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며, 대형교회를 이루는 것이 목회성공의 척도라는 하나님 나라와 상반된 세상의 가치관으로 한국교회를 오염시켜 많은 젊은 목사들이 그 허욕의 길을 따르도록 강력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 목사는 대형교회가 안고 있는 이런 심각한 문제 때문에 대형교회를 해체해야한다는 분명한 논리적인 근거를 교회론의 관점에서 제시함으로 교인들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대형교회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교인들을 떠나게 하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교인들을 끄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리하려 고차원적 ‘경건의 꼼수’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목사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교인들은 이 목사의 그런 ‘내려놓음’, ‘욕심을 비움’에 더 매료되어 그를 떠나기가 무척 아쉬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이 목사의 선언은 그가 사심이 없고 참신한 목사로 더 추앙받게 하며 사람들을 더욱 끄는 홍보용으로 둔갑할 것이다. 그는 하나의 명예를 버림으로 훨씬 더 큰 명예를 얻게 되는 셈이다. 참 지혜로운 선택이다. 진정한 명예와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볼 수는 없다. 목사는 참으로 존경받을만한 목사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이제는 목사가 큰 교회를 이루었다고 비난을 받을지 몰라도 존경받는 시대는 끝났다. 이 시대의 한국교회가 요청하는 목사는 바로 이 목사가 추구하는 목자상, 즉 진실함과 개혁의 의지를 겸비한 목사이다. 그런 점에서 이 목사는 지혜롭고 바람직한 선택을 한 것이다.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의 결연한 의지가 결국 그의 참신함을 더 돋보이게 하여 그가 대형교회를 이룰 정도로 실력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과감하게 내려놓을 정도로 개혁적이라는 칭송과 영광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을 이 목사 자신이 결코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교인들을 계몽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대형교회는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을 이루기가 불가능한 교회라는 점을 주지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서 대형교회를 해체하는 것이 정당한 것을 포기하는 고귀한 희생으로 존경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부당한 것을 거부하는 당연한 일,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이 시대의 긴급한 과제로 인식되게 해야 한다.
이렇게 교인들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 한 대형교회의 해체는 불가능하다. 교인들이 좋은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하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목사에게 떼거리로 몰려 대형교회를 이루는데 일조하는 교인들을 보면 과연 그들이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크리스천인지 매우 의심스럽다. 왜 그들은 담임목사조차 알지 못하는 군중 속에 이름 없는 무리로 취급받는 자기비하를 스스로 자처하는 것일까? 그것은 대형교회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유익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명한 목사가 시무하는 대형교회에 속했다는 알량한 자존감으로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허영심을 달래려는 심리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대형교회로 인한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더 이상 대형교회를 세우는 것이 성공한 목회의 기준이며 그 비전을 실현한 목사를 이상적인 목사로 떠받드는 희한한 교계의 풍토가 쇄신되어야 한다. 대형교회 목사들이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변칙적인 목회를 하는 이들로 취급받아 목에 힘을 주지 못하고 몸을 바짝 낮출 수밖에 없는 새로운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교우들도 대형교회 다니는 것에 자부심을 갖기보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느끼는 날이 속히 와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형교회를 등진 교인들이 마음 놓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공동체, 즉 교회의 본질을 구현해가기에 알맞은 규모(100-500명?)의 건강한 교회들이 이 땅의 도처에 점증하는 날이 속히 도래하는 것이다. 주여, 이런 목사들과 교회들이 구름떼처럼 일어나게 하소서
박영돈목사 페이스북에서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