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로마서강해

로마서 서론 / D.M.로이드존스

새벽지기1 2016. 6. 30. 13:34



 

서론

1. 영적 접근의 필요성
저는 성경을 파헤쳐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의 감동을 받을 만반의 준비를 언제나 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오래 연구한 결과, 신약서신을 다룰 때는 어느 것이든지 서두부터 차근히 연구하는 것이 언제나 좋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런 위대한 서신들의 서론을 대충 성급하게 다루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서신들의 서론들을 살펴보면 대단히 많은 지식과 영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요점은 이 서신이 신약성경에 포함된 여러 서신 들 중에 첫 번째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서신 중 맨 먼저 쓰여진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였다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가 연대적(年代的)인 순서로 첫 번째이기 때문에 맨 먼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왜 로마서가 서신의 맨처음에 놓였습니까? 이것은 교회가 성령을 통해 얻은 지혜로 로마서가 가장 중요함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이 로마서는 맨초기부터 맨처음에 놓여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위치를 그대로 인정하였습니다. 로마서가 성경의 모든 근본적인 진리들을 다 내포하고 있는 서신으로 인정받아왔습니다.

2. 교회 역사상 드러난 로마서의 중요성
어떤 의미에서 로마서가 성경에 나오는 어떤 다른 책들보다도 교회사에서 더 중요하고 중차대한 역할을 해왔다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 점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1) 어거스틴
신약성경이 완성되고 나서부터 종교개혁에 이르는 기간 동안, 기독교회 내에 존재했던 인물 가운데 히포(Hippo)의 어거스틴 만한 큰 인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심오한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부도덕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이 어떻게 회심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는 영혼의 고통과 고뇌를 안고 어느날 오후 정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톨레, 레게”(책을 들어 읽어라)라고 말하는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어나 그의 숙소로 가 책을 펴서 읽었습니다. 그가 읽은 곳이 로마서 13장의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락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가 그를 강하게 비추었고, 그는 회심하여 구원받아 기독교회의 등대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펠라기우스 이단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은 것은 성 어거스틴으로 말미암았습니다. 그는 로마서를 강해함으로써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논박하고 끝내 무산시켰습니다. 로마서는 교회의 신앙을 지탱해 주고 건실케 하고 계속 존재케 한 기반과 초석이었습니다.

2) 마틴루터
마틴루터가 회심하여 종교개혁의 실질적 선봉이 되는 데도 로마서가 중차대한 역할을 했음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깨닫습니다. 1515년 그는 아직 로마카톨릭에 남아 있으면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때 그는 학생들에게 로마서를 강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바로 이 로마서를 연구하는 중에 이신칭의의 진리,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진리가 그의 이지와 마음과 전 존재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고, 그것은 실로 종교개혁의 사발점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과 갈라디아서에서 언급된 이 위대한 교리는 루터의 삶을 전적으로 뒤바꿔놓는 방편이 되었습니다.

3) 존 번연(John Bunyan)
하나님께서는 그를 회심시키실 때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와 루터의 주석들을 사용하셨습니다.

4) 존 웨슬리(John Wesley)
그가 지친 가운데 알더스케이트 가에서 열리는 한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갔을 때, 그 영혼과 이지와 마음의 상태는 크게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 집회에서 누군가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과 서론을 읽고 있었습니다. 존 웨슬레는 거기 앉아서 그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앉아서 그것을 듣고 있을 때 자기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알고 ‘나같은 사람의 죄도’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그 때 거기서 어떤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확신은 그로 하여금 아무런 능력도 발하지 못하는 보잘것 없는 설교자로부터 위대하고 능력있는 복음전도자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은 초대 기독교회의 위대한 설교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로마서가 너무나 놀라운 서신이라서 매 주마다 두 번씩 로마서를 읽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로마서의 메시지를 얻기 위해서 로마서의 말씀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자신이 로마서에 대해서 뭐라 하는 지 들어보십시오. “ 이 서신은 신약 가운데 최고의 부분이다.” 그 말은 신약가운데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로마서는 가장 순전한 복음으로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으로 한 마디 한 마디 다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매일 영혼의 양식으로 삼고 섭취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로마서를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아무리 깊이 생각한다 할지라도 결코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를 다루면 다룰수록 그 로마서는 더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며 더 좋은 맛을 낸다.”


루터는 로마서를 배우고 암송하고 마음으로 알고 부단히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 로마서는 더 많은 기쁨을 주고 더 좋은 맛을 내기’때문입니다. 우리는 루터가 하는 그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3. 바울의 회심의 준비
로마서의 첫 단어는 바울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서신은 바울이라는 사람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그는 로마라는 큰 도시에 살고 있는 일단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로마시는 그 당시 세계의 메트로폴리스였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빌립보서 3장에서 그 사람의 내력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접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어떤 백경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빌립보서의 그 부분을 읽어야 합니다. 이 일이야 말로 기인한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로마서라고 하는 책보다 더 기이한 일은, 바울이 이 로마서를 그 이방 사람들에게 써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엄격하고 완고한 민족주의자 유대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미워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모독자로 간주했던 사람, 그래서 기독교회를 멸하려고 애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인생은 바뀌었고, 믿음을 방호하는 능한 변호자가 되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천성적으로 비상하고 예외적인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점에 하등의 의문이 없습니다. 그의 모든 서신에서 그 점이 어느 곳에서나 드러나 보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이 이야기 속에서도 그 점을 발견합니다. 이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위대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그러하였습니다.

1) 그의 출생, 성장과 학문적 수련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등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라 그는 바리새인으로 수련받았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우는 특권도 얻었습니다. 가말리엘은 그 당시 바리새인들 중에서 가장 큰 선생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유대율법에 대한 한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바리새인들이 가르치고 해석하는 차원에서 율법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했음을 말해줍니다.
그에게 또 하나 특기할 만한 사항은, 로마시민으로 태어났다는 점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가 잡힌 후에 자기를 변호해야 했을 때 “결코 작지 않은 도시”(로마)의 시민임을 밝히고 자기가 자유인으로 태어났음도 고백합니다. 그는 로마의 자유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있어서 로마 제국의 자유시민이라는 것은 더욱 더 자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소라 불리 우는 도시에서 자라났습니다. 다소는 그 당시 헬라문화의 주요한 세 중심시 가운데 들어있는 도시였습니다. 다른 둘은, 물론 아덴과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그러나 권위있는 학자들에 의하면 이 헬라 문화의 문제에 있어서 다소는 아덴과 알렉산드리아와 실질상 어깨를 나란히 한 곳이었습니다. 그는 문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헬라 시를 알고 그것들을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헬라철학자들의 저작들을 알고 있었고 또한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일 뿐 아니라 혈통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며, 거기다가 이 놀라운 헬라 문화의 배경을 최고로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2) 바울의 임무
① 복음을 변증하는 일
이 서신은, 하나님께서 두가지 특별한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능한 사람을 일으키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두가지 일 중 하나는, 유대인들이나 유대교에 맞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일입니다. 그는 자기의 거의 모든 서신들에서 그 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들 보다 논쟁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가면, 심지어 그는 이 문제에 대하여 베드로마저 면박해야 했음을 발견합니다.

또 하나는, 구약성경과 그 교훈을 이 새로운 복음, 이 새로운 믿음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복음을 비난하며 하는 소리가 이러하였습니다. ‘그것은 가짜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며, 구약의 모든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되며, 사람이 새로 고안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 식으로 비난하면서 그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사람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바울이 수행한 위대한 임무들 중 하나는 구약의 교훈과 신약의 교훈을 조화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회심한 후 아라비아로 가서 바로 이 문제에 대하여 묵상하며 시간을 보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처럼 잘 아는 성경을 파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성경 어느곳에서나 그리스도를 발견하였습니다.

② 이방인의 사도되는 일
이 하나님의 사람이 소명받은 두 번 째 큰일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로마서 15장에서 그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자기가 맡은 직무를 크게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점에 있어서 그가 로마 시민이었다는 것이 값으로 따질 수 없이 귀했음을 보여줍니다.
그 사람은 전할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뿐 아니라, 자기의 전도를 받는 사람들을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한 유대인으로서 말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이방인으로서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두 문화 배경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나타낼까, 모든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복음을 전할까를 압니다.

4. 천성적인 은사들과 성령의 은사 사이의 차이
사람이 일단 회심하여 성령의 은사를 받으면 다른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은 회심과 성령의 은사이며, 천성적인 재능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바울이 유대인이며, 헬라 문화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 수 있으며, 로마 시민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다. 사람이 거듭나서 회심하고 그 속에 성령을 모시고 있으면 그만이지 다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자체가 그 논리를 배격합니다.
성경을 통독해 보고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용한 사람들을 주목해 보십시오. 모든 직종마다 주목할만한 사람들이었고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비상한 방식으로 그 사람들을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천성적인 재능도 있었고 바로의 집에서 학문도 터득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그를 준비시켰습니다. 다윗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시편을 읽어보십시오. 그는 얼마나 놀라운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얼마나 걸출하게 유능한 사람이었습니까! 이사야를 보십시오. 그의 사역기간 중에 행한 능한 일들을 읽어보십시오.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동적인 그의 언어를 주목하십시오. 그는 무엇보다도 위대한 시인이었습니다. 한 설교자로서 수련을 받았던 예레미야 같은 사람을 보십시오. 그의 논증방식을 주목해 보십시오.
존 칼빈이나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웨슬리같은 사람도 언급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천성적인 의미에서 비상한 재능들을 받은 걸출하고 유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교회를 발전케 하시려는 큰 뜻을 이루시는데 이 사람들을 가장 뛰어나게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1)천성적인 은사는 그 자체로 나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천성적인 재능을 부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 스스로가 자시의 재능을 만들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무지나 우둔함을 편들어 올려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그러한 무지나 우둔함의 범주로 떨어지면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2) 천성적인 재능은 의지할 것이나 자랑할 것은 되지 못합니다.
고린도 서신에서 바울이 바로 그 점에 관심을 두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 은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랑하고 떠벌렸다는데 있었습니다. 성경 어느곳에서나 그러한 자세는 다 비난을 받습니다. 은사들(재능들) 자체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랑하고, 그런 것들을 가졌으니 내게는 성령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분명히 천성적인 재능을 내버려 두거나 제쳐놓지 아니하십니다. 성령께서는 그것들을 조정하시고 사용하십니다.

바울이 다소에서 태어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렇게 그를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마틴루터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이 사람은 종교개혁을 이룬 선봉장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수도사로서 수련을 받았고 로마 카톨릭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취하여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사용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절대 그런분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 사람을 예비하셨습니다. 십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재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그 재능들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십시오. 여러분은 다른 어느 누구와 똑같이 행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되도록 창조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들을 하나님께 사용하시도록 드리십시오. 그래서 저는 제 방식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방식대로, 다른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다양한 방식대로 행해야 합니다.
같은 꽃이 하나도 없고 같은 새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마다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다양성과 매력을 통해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