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칼빈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요1:26) / 칼빈 주석

새벽지기1 2016. 6. 7. 21:30



이 말은 요한을 찾아온 사람들의 오류를 교정하기에 충분한 선언이다. 요한이 그들의 주의를 그리스도에게로 돌리면서 그분이 이미 세상에 와 계시다고 선언했을 때,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임명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교회의 회복을 증언하라고 보냄을 받은 참 엘리야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스도의 영적인 세례가 요한의 외형적인 세례와 뚜렷이 대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구절에서 그 둘이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대조를 이루어 설명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령 세례에 관한 언급이 보충될 것이다. 잠시 후에 복음서 기자는 정알로 이 두 문제를 서술한다.

 

세례 요한의 대답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요한은 자신에게 합당한 것 이상의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가 베푸는 세례의 주관자는 그리스도시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세례가 상징하는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요한은 외형적인 표지를 수행하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손안에만 모든 능력과 효력이 있다. 요한의 세례가 가리키는 진리가 그리스도의 성령 세례에 의존하기에, 요한은 자기가 베푸는 세례를 그 한도 내에서 변호한다. 그리스도의 높으심을 찬양하며, 사람들이 그리스도만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사역자에게 있어서 최상의 자기절제는 자기가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권위를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하면서 모든 공을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그분만을 의뢰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례에 관하여 두 가지로 말한다. 때로 성경은 세례를 중생의 씻음’(3:5)이라고 한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 죄가 씻음 받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으며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우리는 새 생명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사람의 사역과 하나로 묶는다. 결국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손일 뿐이다. 이런 식의 표현은 사람이 스스로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밝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도구인 사람과 표지를 사용하여 어떤 일을 이루시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사람은 미신에 빠지기 쉽고 그 본성적인 교만함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 자기가 그 영광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성경은 이와 같은 불경스러운 교만을 억제하기 위해 종종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와 구별하기도 한다. 사역자들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가 배울 수 있도록 말이다.

 

- 존 칼빈, 칼빈주석 요한복음Ⅰ』, pp 6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