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진리의 깃발 제 80호 p22-30에 있음을 밝혀둡니다.)
Ⅰ. 들어가는 말
루터파들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매우 인간론적인 차원에서 다루었기에 구원론 후반부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론을 펼쳤다.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오직 신앙에 의해 확립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에 대하여 개혁파에서는 단순히 신앙적 차원에서 다루기 보다는 이 연합의 기초가 되는 은혜언약이라는 영원한 경륜적 구도 속에서 이해하였다. 개혁파는 이 연합론을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속 사역에서의 객관적으로 성취되는 연합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하였다. 특히 존 칼빈은 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구원의 혜택과 감격을 누릴 수 없음을 반복적으로 언급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은혜언약과 구원과 성도의 연합의 역학관계를 강조하였다.(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 447-8)
청교도 신학의 최종 정점이자 완성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존 오웬(John Owen)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논함에 있어서 연합의 몇가지 특징을 제시하였는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s) 보다는 은혜언약(the covenant of grace)의 성취의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Ⅱ. 은혜언약
오웬은 일차적으로 은혜언약의 구조(framework)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신학을 구축하였다(William Bridse, The Sermons, London: Printed by John Hancock Senior and junior, 1656, 93). 그는 이르길,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사실은 은혜언약과 구속연약(the covenant of redemption)의 성취를 이루는 과정 중 하나라고 하였다: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이 언약 안에서 신자가 본래부터 소유하게 된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guarantee)이다”(John Owen, The Works of John Owen, Ed. William H. Goold, Edinburgh: the Banner of the Truth Trust, 1981, vol. XX. 150-151).
오웬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따라 세워진 언약신학에 기초하여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이미 형성된 언약신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의 사건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음을 논중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미 노아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설정하시기 오래 전부터 체결되었던 은혜언약의 궁극적인 기능은 하나님의 사람들(선택받은 구원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게 하는 것이었다(Sinclair B. Ferguson, John Owen on the Christian Life,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7, 32). 이러한 오웬의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신학적 관점은 칼빈의 신학과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칼빈주의 및 청교도주의의 신학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Ⅲ. 그리스도의 성육신-은혜언약의 성취
17세기 청교도였던 제레마이어 버러스(Jeremiah Burroughs)는 이 세상의 두 명의 공적인 사람(Public persons)이 존재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인 아담을 통하여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와 죄가 보편적으로 모든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편화된 죄악을 도말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회복의 역사를 통해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게 되었음을 강조하였다(Jeremiah Burroughs, Gospel-Revelation, London: 1660, 133-4). 또한 버로우는 그리스도께서 은혜언약에 동의하심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자신이 “한 공적인 사람(a Public Person -sic)”이 되시길 기뻐하셨다고 주장함으로써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언약에 철저하게 기초하고 있음을 논증하였다(Jeremiah Burroughs, The Saints Happinesse, London: Printed by MS for Nathaniel Brook, Thomas Parkhurst, 1660, 242-243).
오웬은 그리스도께서 이 언약을 통해 신자와의 연합을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이루셨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협약, 언약, 약정 또는 약속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맺어진 것으로써, 그리스도의 중보에 의해 형성된 신자의 구속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은혜를 찬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은혜의 언약을 통한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 자신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가져올 사람들의 본질을 취하셔야만 하셨으며, 이러한 인간의 본질 사운데 처하셔서 그리스도는 종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여 그뜻을 수행하는데 자기 자신을 복종해야만 하셨다. 또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을 감당하셨다(John Owen, Works, Ⅻ:502, 503, 287).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콜(Thomas Cole)은 이르길, “그리스도의 인간이 되심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연합과 교제를 이루게 하는 근원적 배경을 이루었으며 신자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육체의 베일을 통해서만 가능케 되었다” 고 강조하였다(Thomas Cole, A Discourse on imputed Righteousness, Regeneration, Faith & Repentance, London, 1689, 137). 오웬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우리의 몸과 피를 취하시게 되었으며 중생의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동일하신 성령의 작동하심을 통하여 그리스도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 수여하셨음을 논증하고 있다(John Owen, Works, XIII:22). 따라서 성육신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는 우리의 본질을 그리스도 자신과 인격적인 이루도록 하셨으며, 이를 통하여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mysticalunion)을 성취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속하신 분이 되셨고, 우리는 그의 소유물이 되었다”(John Owen, Works, Ⅰ:365).
이처럼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수불가결한 주요 요소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통해 신자는 그리스도에 이식되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아들의 양자됨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원천적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그에게 이식됨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John Owen, Works, XX: 150).
Ⅳ. 구원의 본질과 그리스도와의 연합
오웬은 그원의 계획을 논함에 있어 연대기적인 구원의 서정(ordosalutis)적 방법을 통해 접근하기 보다 구원의 본질적인 면에 관심을 집중하였다(Sinclair Perguson, Johm Owen on the Christian Life, 32). 신자의 구원 방식이 양자, 칭의, 성화, 영화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통하여 “양자됨을 얻고, 칭의를 누리고, 성화, 열매 맺는 삶, 성도의 견인, 부활의 기쁨, 영화”에 잔치에 참여하게 됨을 강조하였다(John Owen, Works, XX:150; Ⅰ:365; XIII:22; Ⅴ:351).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 사건은 앞서 열거한 모든 은혜를 향유하는 근원적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억할 점은 성령의 갱신케 하시는 능력과 중생의 씻음에 참예하지 못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이다(John Owen, Works, Ⅲ:464).
토마스 콜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하나님의 작정하심’에서 찾고자 하였다. 즉 중생은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들에 대한 영원하신 목적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중생은 믿음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생명의 원천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해 그에게 접붙임을 바데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신자는 중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강조하였다(Thomas Come, A Discours...,81).
장로교 교회의 신조를 이루었던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Westminster Lager Catechism)에 의하면 “선택함을 입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영적이자 신비적으로 형성됨과 동시에 이는 실제적이고도 분리할 수 없는 연합이라는 성격을 지니며, 이 연합은 오직 유효한 소명을 통해 형성된 결과 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이자 남편으로 결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Thomas Torrance, The school of faith, "Westminster Lager Catechism, Q. 66.,197).
오웬은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의 의(Righteousness)가 실제적으로 전가(Actual Imputation)되는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원리에 근거하여 중생과 갱신 그리고 성화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로 교통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즉 오웬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신자의 영적인 기쁨과 소망의 원리이자 수단의 근거임을 강조하였다(John Owen, Works, XX:146). 이 신비한 연합의 진정한 기쁨과 소망은 다름 아닌 신자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과 참다운 교제를 나누게 된다는 점이다. 아담의 타락과 죄의 전가됨을 통하여 사탄의 노예이자 도구로 전락되었던 죄인 신분인 인간이 거룩의 본질이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근거는 오직 그리스도의 신비한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오웬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구약성경 아가서(Canticles) 2:1-7의 주해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었다.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들을 구체화하였다. 첫째, 달콤함(Sweetness)이다.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치 집에 들어갔으니 또는 와인의 집에 들어갔으니”(4절)라는 구절을 주해하되, 오웬은 이를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상냥함을 베풀기 위한 그리스도의 준비과정으로 해석하였다. 둘째로, 기쁨(Delight)이다. 잔치 집에서 행하시는 그리스도의 달콤함과 탁월함을 발견하고 나서 우리 영혼은 곧 바로 이에 압도되어 버리고 이것의 충만함에 참여하고자 외치게 된다. 셋째로, 안전성(Safety)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성도들의 깃발(banner)이 되시는데 이것이 바로 그의 사랑이다. 이 깃발은 지옥과 성도의 모든 대적들의 죽음의 공포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방위수단이 된다. 넷째로, 공급하심과 위로하심(Supportment and Consolation)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공급하심과 위로하심속에서 그의 사랑의 팔에 포근하게 안겨진다는 사실은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이룸에 붙잡힘을 말하는 것이다.
Ⅴ. 나가는 말
지금까지 오웬이 이해한 신자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본질과 내용 그리고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오웬의 신비한 연합에 대한 이해는 존 칼빈의 전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그의 연합사상은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신론적 성격을 바탕으로 한 구원론과 불가불리의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연합론은 하나의 신앙적 고백의 결실이 아닌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을 이루었던 언약신학의 구도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은혜언약이 실현을 이루기 위해 이 땅위에 오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은혜언약의 성취이자 신자의 신비적 연합을 형성하는 매우 중대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오웬은 구속의 경륜적 구도 속에 세워진 언약신학의 성취로서 펼쳐진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을 통해서 신자는 양자됨과 칭의됨, 성화됨과 열매를 맺어감, 그리고 성도의 견인과 부활, 영화에 도달케 됨을 강조하였다. 즉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모든 성도의 구원적 은혜에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웬은 모든 신자의 구원의 과정의 출발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연합론을 펼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 땅위에서의 신자의 영원한 과제인 성화(Sancitification)라는 인간의 책임론과의 조화를 간과하지 않았다. 신자의 연합은 내주하시는 성령의 효과적인 소명을 통해 발생하는데, 이러한 연합은 영적이며 신비적인 연합으로서 그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그 분 안에 거하는 상태’를 의미한다.(벧후 1:4-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다). 따라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은 성령의 사역의 결과로서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함과 성화됨’ 을 성취하는 과정의 한 부분을 이루어가야 할 신자의 ‘영원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수여하신 은혜언약의 효과적인 적용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과 공간 속에서 호흡하는 그 순간까지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고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특히 주께서 우리를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시도록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하셨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고 바울 사도가 고백한 바처럼 내 안에 두 자아(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롬 7장)의 내적 투쟁 속에서 오웬이 지적한 바처럼 피비린내가 물씬 풍겨나는 끊임없는 영적 전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감으로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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