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40768

하나님과의 독대 / 봉민근

하나님과의 독대 글쓴이/봉민근그렇다!어차피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독대다.나 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여럿이 둘러앉아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하나님과 독대한다는 것은 황송하고 망극한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는 것이다.독대의 자리에 앉아서 시간에 좇기거나 조급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안 된다.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기 전에 일어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우리는 기도를 너무 경솔하고 예의 없이 자기의 기분대로 할 때가 많다.하나님의 벗이라 칭하던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정중함과 겸손을 배워야 한다.나와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지존자요 만유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그분은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며 내 생각을 꿰뚫어 보는 분이시다.겸손히 나아가서 정직으로 무장하고 ..

사람에 대한 책임 (신 16:18~20) / 김재홍 목사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각 지파에게 주시는 모든 성읍에 재판관과 지도자를 두어, 백성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도록 하십시오. 당신들은 재판에서 공정성을 잃어서도 안 되고, 사람의 얼굴을 보아주어서도 안 되며, 재판관이 뇌물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뇌물은 지혜 있는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듭니다. 당신들은 오직 정의만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만 당신들이 살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주시는 땅을 당신들이 차지할 것입니다.'-------1. 신명기 법전좋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위로와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교우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아 십계명의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계명에 담긴 의미를 ..

목사공부(59) 헌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다. / 정용섭 목사

앞에서 헌금의 당위를 두 가지로 짚었다. 하나는 교회 공동체의 재정 활동에 실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배금주의에 대한 저항의 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제 한 가지만 더 짚자. 이것은 좀더 원초적인 영성에 속한 것이다 헌금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다. 수단은 돈이지만 본질은 자기 자신이다. 구약의 제사 행위가 그 뿌리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러 가지의 제사를 드렸다. 그럴 때마다 제물도 바쳐진다. 경우에 따라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또는 곡식을 바친다. 동물을 잡아서 피를 제단에 뿌리기도 하고, 동물의 내장을 태우면서 연기를 피우기도 한다. 동물을 잡는 이유는 죄의 용서에 있다.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심정으로 동물의 잡아서 바..

목사공부(58) 물신주의에 대한 항거 / 정용섭 목사

헌금 행위에는 교회의 살림살이에 실존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근원적인 차원이 포함되어 있다. 신구약성서가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물신주의에 대한 항거가 그것이다. 모세오경을 비롯해서 선지자들의 예언은 가나안 원주민의 신앙인 바알숭배와의 투쟁에 초점이 맞춰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었다. 바알을 섬긴다는 것은 풍요를 통해서 생명을 경험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곧 물신주의다. 실제로 가나안 사람들은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서 생존에 급급해하던 이스라엘이 볼 때 화려한 문명을 구가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알에 호기심을 보일만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바알숭배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하라고 외쳤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목사공부(57) 신앙의 진정성은 기독교 신앙에 실존적으로 참여할 때 확보된다. / 정용섭 목사

신앙의 진정성은 기독교 신앙에 실존적으로 참여할 때 확보된다. 이는 기독교 신앙에 구경꾼이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는 뜻이다. 바르트에 의하면(Einführung in die evangelische Theologie, 63쪽) “원하든 않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에게 매혹당할 뿐만 아니라 휩쓸린 사람이 되지 않는다면” 신학의 세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없다. 휩쓸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영적인 세계에 실존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단순히 신앙적인 열정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구경꾼이면서도 겉으로는 열정적일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을 호기심으로만 접근할 수도 있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이런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은 오히려 신앙의 퇴행이요, 독단이다. 그래서..

목사공부(56) 헌금 행위 자체를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경우 / 정용섭 목사

헌금에 참여하지 않는 신자들의 경우를 위에서 두 가지로 설명했다. 이런 경우는 이해가 간다. 각자 형편과 생각에 따라서 스스로 결정할 일이니 내가 더 이상 왈가왈부 할 게 없다. 제 삼의 경우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뭔가 말을 해야겠다. 헌금 행위 자체를 냉소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이것이다. 헌금을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거나, 헌금은 기복주의에 떨어진 사람들의 유아적 행태라거나,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선동에 이용당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율법적인 차원에서 과도할 정도로 헌금에 열정을 보이는 이들도 문제이긴 하지만, 냉소적인 태도로 헌금을 거부하는 이들도 잘못이다. 신앙 자체가 없거나 신앙의 깊이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빠져드는 게 아닐는지. 교회에 발을 걸친다 해서 ..

목사공부(55) 헌금 행위에 소극적인 이유 / 정용섭 목사

어떤 이들은 나름 합리적인 이유로 헌금을 거부하거나 헌금 행위에 소극적이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내는 헌금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 밖의 구호단체에 내는 기부금도 헌금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주장은 아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도 과부나 고아, 또는 긴급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구호금을 지원하는 장치가 있었으며, 바울도 흉년 등의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던 예루살렘 교우들을 돕기 위해서 광범위하게 기금을 모금했다. 유럽이나 북미에는 일상적인 기부 문화가 발달해 있다고 한다. 오늘 기독교인들도 이런 일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 헌금 행위에 소극적인 또 다른 이유는, 이것이 더 큰 이유일지 모르겠으나, 교회가 헌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말하자면 교회가 헌금을 교회 자체만을 ..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 신동식 목사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 지하철 3호선 원당역에 가면 기씨 문중이 있습니다. 매우 익숙한 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설마 그 분의 가문일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고양 시청에 발행하는 소식지에 그 분의 이야기가 실려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당 역에서 지하철을 탈 때 마다 한번 더 생각하는 즐거움을 가집니다. 그분은 바로 행주 기씨 가문의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기대승입니다. 기대승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리학에 관심이 있거나 조선 후기의 사상인 “사단칠정론”은 가장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단칠정론의 주창자가 바로 기대승입니다. 더구나 한국 성리학의 대가인 이황을 안다면 더욱 기대승을 모를 수 없습니다. 이황과 기대승은 나이 차이는 26살입니다. 한 사람은 학문의 대가가 ..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 4:1-17) / 신동식 목사

하만의 계획대로 왕의 조서가 내려지자 유다인들의 공동체는 슬픔과 애통에 빠졌습니다. 이에 모르드개를 비롯하여 많은 유다인들이 통곡하며 재를 뒤집어 쓰고 금식하며 기도를 합니다. 기도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유다 공동체는 위기가 오자 바로 기도 공동체로 전환됨을 봅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 옷을 입었기에 궁궐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궁궐 밖에서 기도합니다.이 소식을 들은 에스더는 옷을 보내주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 이에 에스더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고 알게 됩니다.내시 하닥이 에스더의 명을 받들고 모르드개에게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하만이 벌인 일과 왕의 조서를 보냅니다. 동시에 왕에게 나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민족을 구할 것을 요청합니다.에스더는 모르드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