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0 12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5) / 이금환목사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3:14-15)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사건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불뱀과 놋뱀의 사건과 같은 의미와 능력의 사건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할 때 하나님은 불뱀들을 보내어 그 불뱀에게 물리는 백성들은 죽게 하셨습니다.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고,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범죄했다고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으라고 하셨고, 불뱀에 물린 자라도 그 놋뱀을 쳐다 본 자는 모두 살게 되었습니다(민21:5-9). 놋뱀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모형이었습니다. 그 모형이라도 믿고..

선동인가 감동인가 (행 21:37~40, 22:22~29) / 이재훈목사

요즘 ‘사이버렉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온라인에서 특정인에게 일어난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비판하는 일에 참여하는 콘텐츠로 이익을 얻거나 이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그 일을 이슈화하는 유튜버에 대한 별칭입니다. 세상은 지금 사이버렉카들에 의해 선동의 시대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열렸던 복음주의 선교대회인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를 ‘종교통합운동’이라고 끊임없이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울-인천 제 4차 로잔대회 내용이 CGN으로 오전 저녁 모두 생중계 되었는데도 내용은 전혀 들어 보지도 않고, 아직도 그 선동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10년, 20년 함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 하..

카테고리 없음 2024.10.20

성서문자주의(3) / 정용섭목사

셋째는 성서의 희화화(戱畵化)요. 희화화는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는 뜻이오.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셨다는 복음서의 보도를 문자적인 사실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소. 생각해보시오. 예수님이 물위를 그냥 걸으셨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소? 예수님은 참 사람(vere Homo)이시오. 온전한 사람이었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물위를 걸을 수 없소. 여기서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 하는 논쟁은 무의미하오. 그런 것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소. 그런 것으로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가 보장되지도 않소.  지난주일 설교 본문에는 예수님은 재림 때 구름을 타고 오시고 사람은 공중으로 들림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오. 그걸 문자적인 차원에서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있소. 그런  성서의 ..

성서문자주의(2) / 정용섭목사

둘째는 성서의 형해화(形骸化)요. 자꾸 한자를 써서 미안하오만 압축적으로 표현하려다보니 그렇게 되었소. 형해화라는 말은 내용 없이 뼈만 앙상하다는 뜻이오. 성서의 내용이 단순한 교리문답에 떨어졌소. 구약만 일단 본다면, 그 안에 녹아있는 유대인들의 역사경험이 드러나지 않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말만 할 뿐이지 그런 설화가 형성하게 된 신학적이고 인문학적 배경은 말하지 못하오. 전문적인 신학이 바탕 되어야만 한다는 말이 아니오. 성서 안에 녹아있는 삶과 역사를 폐기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오.  신약도 마찬가지요. 로마서를 읽으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외칠 뿐이지 믿음의 존재론적 신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오.      이런 방식의 성서읽기에 길들여진 신..

성서문자주의(1) / 정용섭목사

지난 10월30일 경동교회에서 행한 종교개혁기념 신앙수련회 특강에서 한 대목을 전하겠소. 루터의 ‘오직 성서’라는 대목이오. 루터의 이 신앙원리가 한국교회에서 크게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했소. 그 왜곡을 한 마디로 끊어 말하면 ‘성서문자주의’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소. 가톨릭은 사람인 교황을 우상으로 삼는 반면에 개신교는 종이인 성경을 우상으로 섬긴다고 말이오. 그게 문자주의가 가리키는 현상이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성서는 문자적으로 오류가 전혀 없는 말씀으로 인정받고 있소. 그게 성경을 높이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깎아내리는 일이오. 왜 그런지를 세 항목으로 나눠서 설명하겠소. 다 아는 이야기겠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여주시오. 오늘은 첫 항목이오.      성서의 도구화가 첫 번 문제요. 성서를 일..

솔밭길 / 정용섭목사

어제 설교 준비하러 원당 농가에 갔었소.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김밥 두 줄로 점심을 먹고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산책에 나섰소.햇살 약간 따가울 정도였소.어제는 농가에서 북쪽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소.쭉 따라가면 저수지가 나오오.중간 쯤 가다보니 왼쪽으로 난 길이 보였소.처음 가보는 길이오.걷기에 맞춤했소.경사도 그렇고,더 중요한 건 솔닢과 참나무 낙옆이 깔려 있다는 사실이었소.아래 사진을 보시오.  다른 사진을 한장 더 보여드리겠소.봉긋하게 생긴 바닥에 솔닢이 떨어져 있는 모습이오.예쁘지 않소?일부러 그렇게 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고루 뿌려진 솔닢이오.어제 솔향을 맡으며 걷던 기억이 새롭소.좋은 주일을 맞으시오.

경동교회 / 정용섭목사

지난 10월30일 오후 1:30-4:00에 서울 장충동에 있는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시무)의 ‘2011년 전교인 신앙수련회’ 강사로 다녀왔소. 큰 제목은 이고, 작은 제목은 다음의 두 가지였소. 1) 성서의 놀라운 세계, 2) 칭의의 놀라운 능력.      경동교회는 말로만 들었지만 실제로 가본 건 이번이 처음이오. 예배당 건물이 탐이 났소. 교회 구석구석 살필 시간의 여유는 없었소. 주로 본당만 보았소. 잠시 당회장 실에 들렀고, 중간 휴식 시간에 식당에 들르긴 했소. 본당의 구조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겠소. 예배드리기 맞춤한 구조였소. 강단은 열린 개념으로 되어 있었소. 강단과 회중석이 단절되지 않았소. 바닥은 붉은 카펫이 깔려 있었고, 벽면은 콘크리트가 그냥 날것으로 드러나 있었소. 회중석은 연극 극..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 / 봉민근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것        글쓴이/봉민근하나님의 은혜는 단 한순간도 멈춤이 없다.우리가 알던 모르던 하나님의 은혜는 변함이 없다.살아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사람들은 은혜의 출처도 모르고 그저 받아 누리면서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지만믿음이란 은혜를 은혜로 알고 사는 것이다.은혜 속에 거하는 사람은 결코 불순종의 자리에 서지 않는다.우리가 모르고 짓는 죄보다 알고 짓는 죄가 더 많으며 그 죄가 더 크다는 사실 알아야 한다.요셉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오 하는 신앙으로 살았다.정말 위대한 신앙이다.믿는 자라면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해야 한다.복 있는 사람은 비록 손해를 볼지라도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으며죄인의 길에 줄 서지 않는다.남이 ..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셨는가?(애2:1-10) / 신동식목사

선지자는 슬피 웁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셔서 예루살렘을 구름으로 덮으셨는지 묻습니다.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땅에 던졌습니다. 가치없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귱휼이 여기지 않았습니다. 맹렬한 진노로 이스라엘의 왕권을 박살내셨습니다. 원수 앞에서도 하나님은 잠잠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원수같이 이스라엘을 대하셨습니다. 시온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졌습니다. 모든 궁궐과 견고한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유다에 근심과 애통을 더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것뿐 아니라 절기도 폐하셨습니다. 절기와 안식일이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왕과 제사장을 멸시하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이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멸시하심이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분노하셨는지 자..

1990년 그리고 2014년 / 신동식목사

1990년 그리고 2014년30여년전 문민정부가 시작되는 해에 이제 교회는 현대주의를 파악하고 교육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시민 불복종이 개혁교회의 가르침이기에 잘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그때 교회는 비웃고 외면하면서 사회 문제에 가담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빡빡 우겼다. 그 증거들이 기독교 세상이 상실된 세상에서(우리시대), 그리스도인의 정치 색깔(우리시대)에 남아있다.오직 한국교회는 성장에만 몰두하였다. 어떤 교회는 아예 고3 주일학교를 없애기도 하였다. 대입시험이 중요하기에 대부분의 교회에 부모들은 1년동안 주일예배 안드려도 된다고 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하는 이기적 기독교의 전형이었다.한 쪽에서 주일날 국가고시 시험보는 것 철회해 달라는 탄원을 하는데 정작 교회는 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