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8 15

겸손한 자세로 출발한 사울왕(삼상9:18-27) / 리민수목사

겸손한 자세로 출발한 사울왕(삼상9:18-27) 본문은 사무엘을 만난 사울이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사무엘로부터 전해듣는 장면이다.  즉 사무엘은 그를 유력한 30여명이 모인 자리의 수석에 앉히므로 그가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이 될것임을 암시한다. 이어 사무엘은 사울을 신당의 지붕으로 불러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사울은 장차 자신이 왕으로 등극하리라는 예언을 듣고서도 겸손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21절).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끝까지 그 같은 자세를 견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하박국2:1-3) / 이금환목사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하박국2:1-3) 하박국은 하나님을 향하여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지도자들에 대한 강포에 고통 당하는 백성들을 왜 그 고통에서 구출해 주시지 않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합1:2). 하나님의 대답은 갈대아 사람 즉 바벨론을 통한 심판으로 유다의 지도자들의 강포보다 더 악하고, 더 잔혹한 고통..

종교개혁 494주년(30) / 정용섭목사

우리 시대에는 교황이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마다 항상 똑같이 우리를 향해서 그런 주장을 했다. “교회여, 교회여! 그대들은 저 몇 안 되는 이단적인 루터교인들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전체 교회를 거부하시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온 힘을 다하여 교회는 파괴될 수 없으며 전복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증은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이와 비슷한 논증으로 거짓 사도들은 갈라디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래서 바울의 권위를 저들 중에서 잃게 만들고 바울의 가르침을 의심받게 만들려고 했다.      이 거짓 교사들의 자만에 대항하여 바울은 담대하게, 그리고 강한 확신으로 그의 사도적 권위를 대결시킨다. 자신의 소명을 찬양하면서 그의 사역을 방어한다. 다른 데서는 그리하지 않았으나 여기서 바울은 누구에..

종교개혁 494주년(29) / 정용섭목사

유대교와 바리새주의를 따라가는 이 거짓 사도들은 대단한 명성과 권위를 지닌 자들이었다. 사람들 중에서도 이들은 거룩하고 선택받은 유대인에게 속한 자들로 자랑하였으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랑하였으며, 약속과 족장들이 저들에게 속했다고 자랑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종들이며 사도들의 문하생으로서 사도들을 개인적으로 아는 자들이며 사도들이 행한 기적들을 목격한 자들이라고 자랑하였다.  그들은 아마도 스스로 표적이나 기적을 행한 자들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기를 악한 자도 기적을 행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막 7:22) 이같은 권위를 가진 자들이 어떤 지방이나 도시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감격해한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 혹은 신앙에 매우 깊이 서 있는 ..

종교개혁 494주년(28) / 정용섭목사

우리는 이 신앙의 교리, 혹은 기독교적 의를 항상 반복하고 경고하고 가르쳐야 한다. 계속해서 가르쳐서 그것이 이해되고, 율법의 능동적인 의로부터 정확하게 구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교리에 의해서만, 이 교리를 통해서만 교회가 건설되고 이 안에서만 교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면 우리가 참된 신학을 관찰할 수도 없을 것이며, 쉽사리 법관들, 의식 수행자들, 율법주의자들, 교황주의자들이 되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는 심히 암울해져서 교회에서는 아무도 바르게 가르침을 받거나 위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남들을 위한 설교자와 교사가 되려면 이 문제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하며, 율법의 의와 그리스도의 의 사이에 있는 구별을 굳게 유지해야 한다. 이 구별을 입으로 말하..

종교개혁 494주년(27) / 정용섭목사

오늘날 우리는 이 은총의 의에 관하여 아무 것도 올바로 가르치고 있지 못하며 가르칠 수도 없는 열광주의적 심령론자들과 분파주의자들에게서 이 사실을 본다. 그들은 다시 우리의 입에서 그리고 우리의 문서들에서 말을 가져간다. 그리고 그것을 입으로만 말하고 기록한다. 그러나 그들은 실질적인 내용에 관하여는 논의하지도 않으며 다루지도 않으며 주장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것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이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율법의 의에만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로에 관한 규범을 지키는 자들이며 그런 자들로 남아 있다. 능동적 의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이리하여 그들은 교황 아래 있을 때와 꼭 같은 모양으로 남아있다. 확실히 그들은 새 이름과 새 사역을 발명한다. 그러나 내용..

종교개혁 494주년(26) / 정용섭목사

그렇다면 이 의를 얻기 위하여 우리는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나는 대답한다. “전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의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율법이나 공로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오직 다음과 같은 사실만을 알고 믿는다. 즉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 가셨다. 그리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심판자로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에게서 오신 우리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속함이 되신다.(고전 1:30) 다시 말하면 은혜를 통하여 우리 위에서 우리 안에서 중보하시고 다스리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계신다.      여기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며 양심의 공포와 뉘우침도 알지 못한다. 이 기독교적 의에 죄는 있을 수 없다. ..

종교개혁 494주년(25) / 정용섭목사

율법의 의는 땅의 것들과 관계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으로 우리는 선행을 한다. 그러나 땅은 먼저 물을 주고 위로부터 배려해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땅은 하늘을 심판하거나 새롭게 하거나 다스릴 수 없다. 하늘이 땅을 심판하고 새롭게 하고 다스리고 열매 맺게 한다. 그래서 주님이 명하신 것을 행하려는 것이다.  또 율법의 의로는 우리가 많은 것을 했을 때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이 된다. 우리가 율법을 다 실천했을 때도 우리는 율법을 성취하지 못한다. 우리 자신의 공로나 공적 없이 우리는 기독교적 의로 먼저 의로워져야만 한다. 이 의는 율법의 의, 또는 지상의 능동적인 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이 의는 하늘의 것이며 수동적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를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하늘에서 ..

종교개혁 494주년(24) / 정용섭목사

이것이 우리의 신학이다. 능동과 수동, 이 두 가지 의 사이에 있는 정확한 구별을 우리는 이 신학으로 가르친다. 그리하여 도덕과 신앙, 공로와 은혜, 세속 사회와 종교가 혼돈되지 않도록 하였다. 둘은 다 필요하다. 그러나 각각 자기 한계 안에 머무르도록 하여야만 한다. 기독교의 의는 새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율법의 의는 혈과 육으로 난 옛 사람에게 적용된다. 후자는 나귀에게 짐을 지우듯 그를 억제할 짐을 지워 두어야 한다.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기 전에는 영적인 자유 혹은 은혜의 자유를 즐기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이생의 삶에서는 결코 이런 자유를 충만히 누리지 못한다. 때가 오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