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8 14

미물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삼상6:10-18)

미물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삼상6:10-18) 본문은 블레셋인들이 언약궤를 수레에 실어 벧세메스로 보내는 장면이다. 그리고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를 기쁘게 맞아들이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  이로써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탈취당한지 꼭 7개월 만에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아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다. 본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않고 아직 젖도 떼지 않은 새끼를 둔 암소가 그 새끼를 떼어 두고 벧세메스까지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언약궤를 싣고 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기서 미물인 짐승까지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보게 된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히13:9) / 이금환목사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서13:9)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견고하게 세워 주십니다. 온갖 세상의 교훈이나, 지식을 쫓아다니고, 음식을 가려먹거나, 좋은 것만 골라먹는다고 사람의 마음이 굳건하게 서고, 사람의 마음이 평안하고, 사람의 마음이 기쁘고, 사람의 마음에 만족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이리 저리 끌려다니고, 그런 것들을 쫓아다니는 마음이 갈등이고, 방황이고, 방향 키를 잃은 난파선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결코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거나, 우리의 마..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히 1:1-4, 2:5-10) / 정용섭목사

창조절 6주, 2024년 10월 6일  대부분 교회당에는 십자가상이 달려 있습니다. 건물 첨탑에도 세워져 있고, 예배당 강단 벽에도 달려 있습니다. 로마가톨릭과 정교회와 성공회 예배실에는 십자고상이 있습니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을 문자적으로 실천하는 유대교의 회당과 이슬람교의 모스크에는 십자가는 물론 없고 하나님을 상징하는 그 무엇도 없습니다. 불교 신자들이 예불을 드리는 대웅전에는 염화미소의 부처상이 가운데 자리합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자비롭게 맞아주는 느낌입니다. 십자가는 단두대나 교수형 밧줄처럼 로마 제국의 사형 집행 기구였기에 그것을 종교적 상징으로 사용한다는 건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십자가나 십자고상을 예배당에 설치하지 않다가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를 잡..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10) / 정용섭목사

엄밀한 의미에서 진화는 창조 자체와 관계없다. 오히려 그것은 ‘만듦’과 ‘창조’의 배열과 관계된다. 창조한다는 것과 만든다는 것은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 될 성서적으로 상이한 개념들이다. 창조는 현존 일반의 기적을 의미한다. 창조 행위는 단 하나의 신적인 순간에 있는, 그 자체 속에서 시간으로 연장되어 있고 풍요한 형식으로 구분된 현존 전체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원칙상 창조와 진화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두 개념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한다. 이 개념들은 동일한 현실의 상이한 국면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237쪽)      몰트만에 따르면 진화와 창조는 서로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오. 이것은 내가 앞에서 몇 번 말한 것이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 않겠소. 현대 신학의 대가도 똑같이 말했다는 것을 그냥 확..

세상과 ‘나’ / 정용섭목사

창조 신앙은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서 피조되었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오. 그게 창조론이라는 낱말에 담긴 뜻이오. 그 세상에 나도 포함되어 있소. 그 세상에 내가 철저하게 의존해 있소. ‘나’가 우선이 아니라 ‘세상’이 우선이라는 뜻이오. 나는 변수이고, 세상은 상수요. ‘나’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오. 그걸 잘 생각해보시오. ‘나’ 없는 세상 말이오. 그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실감이 잘 가지 않기도 하고, 인정하기도 어렵소. 우리는 철저하게 세상을 나와 연결해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오.      조금더 이런 생각을 밀고 나가보시오. 인간보다도 세상이 더 크오. 인간이 없어도 세상은 움직이지만, 세상없이는 인간도 없소. 인간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시오. 어쩌면 그런 세상이 더 평화로운 세상일지 모르겠소. ..

창조와 종말에 대해서 / 정용섭목사

이번 수련회의 주제가 이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몇 번에 걸쳐서 짧은 글을 썼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오.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앙은 사실 이 두 단어에 걸쳐 있다고 해도 좋소. 이 세상이 이렇게 우리 눈앞에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소. 그것이 창조 사건이오. 엄격히 말해서 세상이 우리 눈앞에 있는지 아닌지도 우리는 모르오. 이미 그 세계 안에 들어가 버린 뒤에는 그 세계가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오. 우리 눈에는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만 그게 빛이 아닐 수도 있소. 인간의 문명이 자연을 능가할 것처럼 발전하고 있지만 이것도 현실(reality)이 아닐 수 있소. 우리가 그 심층의 세계를 어느 정도로나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는 접어두고, 일단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

고요히 흐르는 실로아 물 (이사야서 8장) / 김영봉목사

해설:임마누엘에 대한 예언(7:13-17)을 주신 후,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서판을 가져다가 태어날 둘째 아들의 이름을 적으라고 하신다. 그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1절)로서 “노략이 속히 임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7장 16절과 17절에서 예언한 전쟁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그 예언을 받은 다음, 이사야는 아내와 동침하였고, 예언대로 아내는 임신한다(3절). 하나님은, 아이가 “아빠, 엄마”를 부를 줄 알기도 전에 앗시리아 왕이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수도)와 “사마리아”(이스라엘의 수도)를 약탈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신다(4절). 5절부터 10절까지는 유다가 당할 일에 대한 예언이다. “실로아 물”(6절)은 예루살렘 바깥에서 성 안으로 물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든 수로와 연못을 가리키는데, ..

여호와를 의뢰하고 마음을 굳게 정하라!(시편 112:7-10) / 원용일목사

여호와를 의뢰하고 마음을 굳게 정하라!(시편 112:7-10)7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8 그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의 대적들이 받는 보응을 마침내 보리로다9 그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구히 있고 그의 뿔이 영광 중에 들리리로다10 악인은 이를 보고 한탄하여 이를 갈면서 소멸되리니 악인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로다은혜와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기억된다고 시인이 노래했습니다(6절). 계속 어떤 사람이 복된 자인지 노래합니다.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7절).그 사람의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벌을 받는 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