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수련회의 주제가 <창조와 종말>이오. 이에 관해서는 앞에서 몇 번에 걸쳐서 짧은 글을 썼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오. 그리스도교의 모든 신앙은 사실 이 두 단어에 걸쳐 있다고 해도 좋소. 이 세상이 이렇게 우리 눈앞에 있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소. 그것이 창조 사건이오.
엄격히 말해서 세상이 우리 눈앞에 있는지 아닌지도 우리는 모르오. 이미 그 세계 안에 들어가 버린 뒤에는 그 세계가 객관적으로 인식될 수 없기 때문이오. 우리 눈에는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만 그게 빛이 아닐 수도 있소. 인간의 문명이 자연을 능가할 것처럼 발전하고 있지만 이것도 현실(reality)이 아닐 수 있소. 우리가 그 심층의 세계를 어느 정도로나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는 접어두고, 일단 우리가 오감으로 경험하는 이 세계는 분명한 것이오. 그 세계와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은 채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는 없소.
창조에 관한 이런 저런 정보는 대충 알 수 있소. 성서가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신앙의 연조가 있으면 따라갈 수 있소. 그러나 그걸 단순히 아는 것과 그것이 삶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은 완전히 다르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소. 누가 창조의 신앙을 바르게 살아내고 누가 아닌지가 밖으로 확 드러나지는 않소. 남이 판단할 수 없소. 본인도 모를 수 있소. 그래서 대개 신자들은 용케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갈 수 있소. 이건 불행한 일이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그리스도교 2천년 역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게 최선이오. 한국교회 신자들을 그걸 두려워하오. 그래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소. 왜 그런지는 그대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첫째 날 강의에서 좀더 자세하게 말하게 되겠지만 오늘 한국교회 신자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개인의 종교적 욕망과 자기 연민과 개인구원에 매몰되어 있소. 그런 신앙에서는 창조 사건을 아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소. 창조를 말해도 그건 자기의 종교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것뿐이오. 한국교회가 그렇게도 열광적으로 진화론을 거부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소. 종교적 퇴행에 불과하오. 그것으로 행복하다는데, 어쩌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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