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몰트만의 창조 이야기(8)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10. 7. 03:13

이 기본명제로부터 출발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연 속에 있는 우주적인 영의 활동 방식들을 발견할 것이다.

1) 영은 물질과 살아 있는 것의 모든 영역 속에 있는 창조성의 원리이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며 물질적이며 살아 있는 유기체들의 새로운 기획들을 그들 속에 선취한다. 이런 점에서 영은 진화의 원리이다.

2) 영은 전체론적(holistische) 원리이다. 진화의 모든 단계에서 그것은 상호작용과 이 상호작용들 속에서의 일치와 상소간의 침투와 동지적이고 연대적인 삶을 창조한다. 하나님의 영은 창조의 ‘공동체 영’(Gemeingeist)이다.

3) 영은 상이한 차원에 속한 특별한 물질의 기획들과 삶의 기획들의 개체화와 분화의 원리인데, 이것은 위의 원리와 동일한 근원에 속한 것이다. 자기 주장과 통합, 자기 유지와 자기 초월은 삶의 진화 과정이 가진 두 가지 면이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보충한다.

4) 끝으로 모든 창조는 목적에 있어서 개방된 피조물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의 가능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공통된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이런 목적성의 원리는 모든 개방된 물질의 체계들과 삶의 체계들 속에 내재하고 있다.(128쪽)

 

     위의 글은 ‘삼위일체론적 창조론’ 중에서 ‘우주의 성령’이라는 대목의 한 구절이오. 이런 글들을 자주 읽으면서 신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저 글에서 마음의 울림이 없을 것이오. 우주와 성령을 하나로 묶는 것 자체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소. 성령은 우리를 위로하고 뜨겁게 하는 영인데, 왜 우주와 연관해서 말하느냐 하고 말이오. 그건 성령을 너무 축소하는 생각이오. 성령은 창조의 영이오. 창조 사건의 능력이오. 몰트만의 표현으로 하면 ‘창조성의 원리’이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라고 한다면 성령은 바로 거기에 내재하는 능력이오. 어제도 언급했지만 진화가 생명 현상에 대한 논리적 해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령의 기능이라 할 수 있소. 진화론이 창조론을 부정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진화론을 모를 뿐만 아니라 창조론도 모르는 사람이오. 뒤 4번에서 몰트만은 창조를 가리켜 개방된 피조물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소. 개방성이라는 말을 기억하시오. 열려 있다는 뜻이오.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생명체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 미래로 열려 있소. 가끔 창조의 원리를 주장하면서 전통적 가족제도를 성서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소. 그것은 피조물의 개방성을 전혀 모르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발언이오. 개방된 종말의 생명 세계를 기다려보시오. 그대의 실존도 그 미래로 열려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마시오. 지금의 것들을 절대화하지 말라는 뜻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