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1 15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한 사울(삼상11:1-5) / 리민수목사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한 사울(삼상11:1-5) 본문은 사울이 마침내 온 백성의 신임을 얻는 장면을 보여 준다.  즉 사울은 당시 암몬족이 길르앗 야베스를 침공하려고 위협 할 때, 야베스 거민들은 이스라엘에 사자를 보내어 구원을 요청한다. 이에 사울은 암몬을 쳐부수고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하나님은 사울로 하여금 백성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암몬족 나하스의 탐욕과 교만한 마음을 이용하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잠19:29) / 이금환목사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잠언19:29)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심판하시고, 채찍도 때리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죄악이 만연하고, 이렇게 거만이 판을 치고, 이렇게 어리석은 자들이 많은데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요?, 하나님의 채찍이 있다고요?라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현재와 미래에 심판과 채찍이 없다면 이 세상은 죄악에 의해서 지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완전히 점령 당하고, 죄악이 이 세상을 완전히 뒤덮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자들도 죄악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심판과 채찍에 대한 인식과 두려움이 있으므로 죄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이 지탱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카테고리 없음 2024.10.21

오직 믿음(6) / 정용섭목사

오늘 한국교회에서 믿음은 철저하게 세속화되었소. 건강한 의미에서의 세속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떨어졌다는 의미에서의 세속화요. 신자들이 믿음을 마치 돈을 버는 방식쯤으로 생각하오. 그대도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큰 교회 목사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헌금으로 비교해보자고 설교 시간에 말하오. 자신이 헌금을 제일 많이 하는데, 왜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을 하느냐는 주장이오. 믿음이 헌금 액수와 비례한다는 말인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언이오. 그런 발언이 그대로 통용되는 교회가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내가 보기에 그 목사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오. 오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왜곡하고 있소. 그는 믿음이 신비의 차원이라는 사실을 전..

오직 믿음(5) / 정용섭목사

보른캄은 ‘오직 믿음’을 하나님의 신비, 세계의 신비, 존재의 신비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소. 신비라고 해서 비이성적이라는 말이 아니오. 동양식 어법으로 불립문자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오. 궁극적인 것은 말로 세울 수 없다는 뜻이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은 어떤 대상을 신비라고 말하는 것이오. 아직은 자연과학이 한계가 있지만 결국은 모든 신비의 실체를 다 들춰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오. 그게 가능하겠소? 내가 보기에 피조물인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소. 믿음은 그 궁극적 신비와의 관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삶의 태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보른캄의 언급을 다시 인용하겠소.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내 생명을 지배하고, 또 수수께끼와 같은 수많은 음성 중에서 나를 인도하고 권면..

오직 믿음(4) / 정용섭목사

보른캄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오.      신앙은 어떤 다른 상상의 결과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대한 하나의 시적인 조작이 아니다. 그런 것은 특별한 실재 곧 상징적이고 진술적인 가치만을 주장한다. 신앙은 오히려 전혀 현실적인 어떤 것, 곧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떤 것이다. 신앙은 우리 정신의 통찰력이나 의지 결단의 표현과 같은 우리 존재의 부분적인 기능만이 아니다. 신앙은 오히려 우리 전 존재의 표현, 또는 아주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정신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나눌 수 없고 정의를 내릴 수 없으며 우리의 전 자아로서 모든 것이 거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지각, 정신의 분별, 부드럽거나 격렬한 감정, 사랑, 정신의 상상 같은 것들이 있다. 신앙은 여기에, 다만 여기에만 있다. 신앙은 우..

오직 믿음(3) / 정용섭목사

보른캄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겠소. “신앙 자체는 하나님의 신비의 일부분이다. 신앙은 억지로 있게 할 수 없다.”(45쪽) 여기서 ‘하나님의 신비’라는 말을 더 생각해보시오. 이것을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거로만 보면 안 되오.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자연스러운 분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소? 하나님의 능력은 매우 자연스럽소. 자연스럽다는 말은 우리 사람의 인식에 다 들어온다거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명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오. 우리는 지금 자연을 다 알고 있지 않소. 모르고 있는 현상을 사람들은 초자연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오. 고대인들에게 화산폭발과 지진은 초자연적인 능력이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자연적인 현상인 것처럼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신비로운 분이시오.  보른캄의 설명에 따르면 신앙은 인간..

오직 믿음(2) / 정용섭목사

오늘 믿음이 주관적인 자기 확신에 떨어졌소. 심오한 신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믿고 있는 자기에 대해서 대견하게 생각하는 것이오. 간혹 교회에서 행해지는 간증 류의 집회를 보시오. 모두가 믿는 자기에 대한 관심이오. 이런 믿음은 사이비 이단으로 갈수록 강렬하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말할 게 별로 없소. 대신 믿고 있는 자기의 경험만 부풀려서 말하오. 이런 식이라면 성황당을 믿는 주술과 다를 게 하나도 없소. 우리가 믿고 있는 분은 하나님이오. 정확하게 말하면 삼위일체론의 하나님이오. 그분은 세계 창조자이며, 역사에 개입해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며, 창조와 종말의 능력인 성령이오. 그리스도교가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구도로 설명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가 ..

오직 믿음(1) / 정용섭목사

마틴 루터의 신앙원리 중에 하나가 ‘솔라 피데’라는 건 그대도 잘 알고 있소. 도대체 ‘오직 믿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하시오? 표면적으로만 보면 의에 이르는 길이 믿음과 더불어 행위라는 가톨릭의 주장과 대립해서 오직 믿음뿐이라는 뜻이오. 루터의 이런 원리에 따라서 개신교도들은 종교적 행위와 도덕적 행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서는 이 명제가 왜곡되었소. 일종의 믿음 만능주의에 빠진 것이오. 믿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자기 확신에 빠졌소. 루터가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른캄(J. Bornkam)의 설명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겠소.      “믿음이라는 말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가장 심오한 신비에 접하게 한다.” 보른캄이 “복음주의 신앙의 근본원리”에..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사야서 19장) / 김영봉목사

해설:19장은 이집트에 대한 예언이다. 이 예언은 유다가 앗시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이집트와 연합하려 했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1-15절은 이집트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주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이집트로 가실 것이니”(1절)라는 표현은 앞 장에서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겠다”(18:4)는 표현을 생각나게 한다. 조용히, 은밀히, 드러나지 않게 일하시는 하나님은 때로 태풍처럼, 돌풍처럼 강하고 빠르게 일하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전광석화처럼 심판을 행하실 때 강성대국 이집트는 졸지간에 멸망할 것이다. 이집트 왕실은 극심한 내분에 시달릴 것이고(2절) 그로 인해 국력은 급격히 쇠약해질 것이다(3절). 자중지란으로 쇠락해진 이집트는 “잔인한 군주”(4절)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잔인한..

노벨 상이라니, 그것도 문학상이라니! / 김영봉목사

2016년에 한강 작가의 가 영국에서 주는 ‘맨 부커 상’을 받았다고 해서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몰입하여 읽기는 했지만, 깊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채식주의자이기를 선언한 이후에 주인공이 당하는 상황과 그로 인해 주인공이 겪는 아픔이 저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 이후로 출간되는 그의 작품을 찾아 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받은 첫번째 노벨상이 평화상이고 두번째 받은 상이 문학상이라는 사실은 의미가 큽니다. 우리가 비록 과학 연구에는 뒤쳐져 있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뛰어난 민족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음악, 미술 같은 영역에서는 이미 탁월성을 입증한 우리 민족이 드디어 문학에서도 그 탁월성을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