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른캄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겠소.
“신앙 자체는 하나님의 신비의 일부분이다.
신앙은 억지로 있게 할 수 없다.”(45쪽)
여기서 ‘하나님의 신비’라는 말을 더 생각해보시오.
이것을 초자연적인 능력 같은 거로만 보면 안 되오.
자연이 하나님의 창조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자연스러운 분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소?
하나님의 능력은 매우 자연스럽소.
자연스럽다는 말은 우리 사람의 인식에 다 들어온다거나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명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니오.
우리는 지금 자연을 다 알고 있지 않소.
모르고 있는 현상을 사람들은 초자연적이라고 말하기도 하오.
고대인들에게 화산폭발과 지진은 초자연적인 능력이었지만 현
대인들에게는 자연적인 현상인 것처럼 하나님은 자연스럽게 신비로운 분이시오.
보른캄의 설명에 따르면
신앙은 인간이 억제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존재 신비를 어떻게 억지로 인식하고 경험하고 믿을 수 있게 하겠소 .
여기서 억제한다는 말은 우리의 합리적인 언어로 모두 해명될 수 없다는 뜻이오.
이해가 가오? 동의하시오?
이렇게 생각해보시오.
노자와 장자는 도(道)를 모든 것의 근원으로 생각했소.
그런데 도는 그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소.
설명이 불가능한 것이오.
도가도 비상도라 했소.
도를 규정하면 이미 도가 아니라고 말이오.
그래도 도가 현실이라는 것은 분명하오.
그것을 억지로 믿을 수는 없소.
믿음 자체가 신비로운 사건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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