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른캄은 ‘오직 믿음’을 하나님의 신비, 세계의 신비, 존재의 신비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소. 신비라고 해서 비이성적이라는 말이 아니오. 동양식 어법으로 불립문자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오. 궁극적인 것은 말로 세울 수 없다는 뜻이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더 많은 어떤 대상을 신비라고 말하는 것이오. 아직은 자연과학이 한계가 있지만 결국은 모든 신비의 실체를 다 들춰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오. 그게 가능하겠소? 내가 보기에 피조물인 인간은 그럴 능력이 없소. 믿음은 그 궁극적 신비와의 관계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삶의 태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보른캄의 언급을 다시 인용하겠소.
헤아릴 수 없는 곳에서 내 생명을 지배하고, 또 수수께끼와 같은 수많은 음성 중에서 나를 인도하고 권면하고 위로해 주는 한 음성이 있다는 것은 믿음의 차원일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며, 실로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믿음만으로”, “다만”이라는 말은 자명의 것이며, 믿을 수 있는 능력은 기적이며 은총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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