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른캄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시오.
신앙은 어떤 다른 상상의 결과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대한 하나의 시적인 조작이 아니다. 그런 것은 특별한 실재 곧 상징적이고 진술적인 가치만을 주장한다. 신앙은 오히려 전혀 현실적인 어떤 것, 곧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떤 것이다. 신앙은 우리 정신의 통찰력이나 의지 결단의 표현과 같은 우리 존재의 부분적인 기능만이 아니다. 신앙은 오히려 우리 전 존재의 표현, 또는 아주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정신의 표현이다. 왜냐하면 정신은 나눌 수 없고 정의를 내릴 수 없으며 우리의 전 자아로서 모든 것이 거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신의 지각, 정신의 분별, 부드럽거나 격렬한 감정, 사랑, 정신의 상상 같은 것들이 있다. 신앙은 여기에, 다만 여기에만 있다. 신앙은 우리의 전 자아지만 새로운 형식의 자아이다.(46쪽)
내가 독일어 원서가 없어서 저 번역에 몇 가지 이상한 것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가 없었소. 그래서 번역문을 조금 바꿨소. 정신이라고 바꾼 단어의 원래 번역문은 ‘마음’이었소. 번역자가 어떤 독일어 단어를 마음으로 번역했는지 모르겠소. Herz일 수도 있소. 영어의 heart요. 내 짐작에 Geist가 아닐까 하오. 그래서 마음을 정신으로 바꾸었소. 어쨌든지 보른캄이 여기서 말하려는 핵심은 신앙이 인격 전체의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오. 단순히 의지나 감정, 통찰력 같은 부분에 속한 게 아니라는 것이오. 다른 말로 그는 전체 자아라고 했소. 마지막 문장을 보시오. “신앙은 우리의 전 자아지만, 새로운 형식의 자아이다.” 신앙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에도 자아는 형성되어 있소.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 들어오면 그 자아는 방향이 바뀌오. 보른캄은 형식이 새로워진다고 했지만 오히려 내용이 새로워진다고 봐야 할 것이오. 신앙의 세계에 들어와도 습관이나 취미 등은 바뀌지 않소. 영적인 관심이 바뀌오. 아마 보른캄도 그걸 염두에 두고 저렇게 말했을 것이오. 루터가 말하는 ‘오직 믿음’이 우리의 전제 존재, 우리의 전체 자아, 우리의 전체 인격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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