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세

새벽지기1 2020. 11. 30. 07:08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참으로 묘한 곳입니다. 세상은 모두가 살고 있는 터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구별해야 할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서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경계선을 구분하기가 너무 긴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세상을 떠나 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참으로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갖가지 선물들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지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감사함으로 누릴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그리스도인 가운데 선물의 의미를 곡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물이 목적이 되는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선물은 항상 한시적인 것입니다. 마치 영원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잠시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영원한 것처럼 오해를 하는 분들이 있음이 안타가운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삶의 모든 목적이 선물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 땅의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한번 뿐인 인생이라 생각하고 온갖 탐심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이 땅은 삶의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은 잠시 거처 가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이 땅의 삶은 나그네로 살아갑니다. 혹자는 잠시 소풍을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표현이 어떠하듯 이 세상은 종착역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사람들과 다르고 결코 속할 수 없는 사실은 영원한 나라를 알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이 세상의 삶을 사는 자세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목적을 항상 기억하는 일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고백하였듯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할 자세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베풀어 주신 목적을 아는 일입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땅의 것들에게는 필수적인 용도와 그리고 동시에 다른 특별한 가치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즐기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의 것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하는 매우 귀한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것이 육체의 정욕을 탐하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좋은 옷을 입을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정욕에 빠지는 것이 됩니다. 또한 자신이 가진 부를 자랑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무시하는 것 역시 정욕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4)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경건의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칼빈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삶의 원칙을 강조하였습니다.

첫째, 가능한 적게 탐하며, 반대로 사치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지나치게 풍부한 상태를 모두 끊어내며, 또한 도움이 되는 것들이 오히려 방해거리가 되지 않도록 부지런히 경계하는 것을 우리의 끊임없는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둘째,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그들이 궁핍한 상태를 인내로 견디기를 배워서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으로 고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모든 물질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또한 그 물질들을 우리에게 맡겨진 것들로서 후에 그것들을 사용한 모든 일에 대해서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정산할 때가 온다.

넷째, 주님은 우리들 각자가 인생의 온갖 활동을 하는 가운데 우리 각자의 소명을 기억하고 존중할 것을 명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소명이 바른 활동의 시작이요, 기초라는 사실을 알며 그것을 족할 것이다. 하나님의 소명에 따라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정도를 따라 하나님 앞에 의무를 다한다 할 수 가 없다.

 

칼빈의 이 원칙은 우리 시대에 더욱 큰 울림이라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더 가지려고 눈을 부릎 뜨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칼빈의 경계의 말은 큰 찔림이 됩니다. 비록 우리의 삶에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고 때로는 짜증나는 일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작지만 큰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입니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여러분에게 주어진 소명을 따라 나아가면 아무리 천하고 추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 일이야 말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찬란하고 고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죄 짓는 일이 아님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피하거나 떠나 살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즐기고 누려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육체의 정욕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섭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자세에 대한 성경과 선배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길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아름다움에는 항상 자발적 불편이 함께 하고 있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