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박형호의 포토에세이

동행

새벽지기1 2020. 11. 27. 05:07

 

동행

 

노송의 표피에 렌즈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나무 사이로 남자의 얼굴이 잠시 보였다 사라진다.

다시 촬영하려니 또 보인다.

아마 나무사이를 운동삼아 걷는 것이라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기로 하였다.

 

지나가길 기다리며 자세히 보니 그 남자의 한쪽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또 한손에는 어머니인 듯한 노파의 손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의 손에 잡힌 검은 비닐봉지에는 북어의 꼬리 부분이 비스듬히 삐져나와 있었고

남자에게 한 손을 잡힌 노파는 다른 쪽 손에 지팡이를 의지한 채 힘겹게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들은 슬로우비디오의 한 장면처럼 아주 느린 동작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더디기만 하는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옆을 지나며 고개들어 나를 힐끔 쳐다보는 남자의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보인다.

그제야 촬영을 해야지 하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어 올려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그들의 뒷모습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아마 남자의 아버지, 노파의 남편 산소를 찾아가는 길인 듯 하다.

나무 사이로 두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나이 든 소나무와 나이 든 아들, 그리고 더 늙어버린 노모의 모습이 잔상으로 계속 남아 있다.

 

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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