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가 필요합니다.
아내와 결혼 전에 데이트 할 때 호암아트홀에서 보았던 포스트모던 작가들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의 제목은 “경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림이 생생한 것은 다가올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보지 못한 분을 위하여 잠간 설명하자면 수많은 회사원들이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아래 사람의 머리를 짓밟고 위에 있는 사람의 넥타이를 끌어당기는 그림입니다. 그런데 그 얼굴들이 태연합니다. 당연히 받아들이는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IMF를 맞이했었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시간을 보냈고 참 많은 가장들이 실직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양극화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서로를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서로 밟고 끌어내려야할 대상으로만 봅니다. 자신이 살지 않으면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가 목숨 걸고 싸웁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러한 극치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음을 봅니다.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하여 경제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녹녹치 않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대하지만 그 열매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마치 백약이 무효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는 서로를 향하여 매우 날카롭습니다. 조금만 자기와 차이가 나면 험한 말이 툭툭 뛰어 나옵니다. 서로가 예외가 없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넉넉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 수 가없습니다.
더구나 서로의 말에 대하여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의심하고 판단하는 일이 앞서는 것을 봅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이 늘 아킬레스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죽어야 한다는 바울의 고백이 심장을 늘 찌릅니다.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서 확실히 느끼는 것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너 싫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이처럼 슬픈 일은 없습니다.
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공간에도 비슷합니다. 삭막한 말들이 너무 많이 오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이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그래서인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읽을 때마다 그의 과격한 말들이 때로는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의미는 충분하게 이해하지만 그렇게까지 책에 써서 오고 오는 모든 세대들에게 남겨야 할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물론 진리에 대한 열정과 불의한 자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때때로 거룩한 부담감도 있습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교회가 참 삭막하고 냉랭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세상 안으로 보냄을 받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자로서 세상 안으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삶이되기를 원하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진리로 거룩함을 입는 일이 정말 필요합니다. 그러지 못하고 살다보니 세상의 언어와 삶의 표현들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진리로 거룩함을 입지 못하면 세상과 친구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교회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서로 갉아 먹는다면 그처럼 슬픈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를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일도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정의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무튼 각박한 이 시대 가운데 서로에게 작은 격려가 있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은 더더욱 서로 격려하고 사랑으로 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글을 씁니다. 샬롬!
'좋은 말씀 > 신동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는 기억한다. (0) | 2020.11.23 |
---|---|
돌아섬 (0) | 2020.11.22 |
1973년과 2019년 (0) | 2020.11.20 |
죄로나 우로나 (0) | 2020.11.19 |
남 이야기하기 전에 (0) | 2020.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