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적 혼돈이 나은 참담함
요즘 가짜 뉴스로 시끌벌쩍합니다. 한겨례 신문은 가자 뉴스의 숙주로 에스더 기도운동본부를 지적하였습니다. 그러자 에스더 기도운동본부는 즉각적으로 국민일보에 반박성명을 내었습니다. 여기에 동성애 반대 모임에서 자유로운 언론에 재갈 물리는 행위라고 동참하였습니다. 이렇듯 가짜 뉴스의 진원지에 대하여 난투극을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누가 진짜 뉴스를 전하고 있는지는 법원으로 넘어갔습니다. 법의 판결이 날 때까지 계속하여서 서로 싸을 것입니다. 참으로 서글픈 세상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가짜 뉴스가 각종 SNS를 통하여 유통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 진원지가 누구인지 밝혀지고 처벌받을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하게 도약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그 많은 보수적인 단체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된 단체가 거짓 뉴스의 진원지로 지적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정직하여야 할 단체가 거짓 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법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이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독교가 스스로 좌초한 일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심심하면 전달되는 확인되지 않은 문자와 뉴스를 볼 때면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저주 받을 일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아무런 검증도 없이 무조건 유통하는 것 역시 거짓을 말하는 것과 진배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행하는 자는 교회를 파괴하는 자입니다. 우상숭배자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의견을 전할 때 사랑과 정직함으로 전해야 합니다. 정직함과 사랑이 없는 의견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버림을 당하지 사람들의 심령에 남지 않습니다. 혹 남아있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정치적인 견해와 이념을 강조하려는 행위 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존재입니다. 정치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크든 작든 모두가 다 정치에 관여하며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좀 더 결단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일 뿐입니다. 그래서 정치적 견해가 다를 때 서로를 향하여 날선 비판을 합니다. 때로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념이 거짓 뉴스를 양산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현실에 대한 불만이 이러한 무례한 일들을 벌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분노를 상대방을 향한 비난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만을 배설하는 도구로서 거짓 정보를 만들고 혹은 유통하기도 합니다. 특별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는 더할 나윌 없는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왜곡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받음으로 인하여 생기는 편향된 사고입니다. 이러한 정보의 길목에는 믿을 만한 사람들을 등장시킵니다. 전직 고위 공무원, 법관, 군 장성, 국회의원, 정보위원등 다양합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신망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결코 알 수 없는 정보를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교회의 직분자들입니다. 그러니 분별력을 상실 할 수 있는 좋은 터가 된 것입니다. 왜곡된 정보로 인한 편향된 사고는 매우 무서운 무기가 됩니다.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전부 도려냅니다. 대화조차도 포기합니다. 그리고 단정해 버립니다. 이렇게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사람들이 정말 무섭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뉴스를 만들고 퍼 나르는데 사명감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리에 기독인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인들 역시 확인되지 않은 뉴스를 유통하는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인들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신학적 혼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과 우리가 같은 혈통이라는 생각 그래서 예루살렘을 회복하자는 운동, 오늘날도 여전히 사도가 존재하며 예언한다고 생각하는 신사도운동 그리고 세대주의적 종말 사상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신학적 혼돈이 괴물같은 기독인들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념과 신학이 만나서 돌연변이 인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을 말하여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는 가짜 뉴스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안타까움을 갖는 것은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성경이 말하는 것을 외치는 사람들이 도매급으로 이상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있는 형국입니다. 선한 의도가 악용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란시스 쉐퍼는 연대와 공동참전을 잘 구분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선한 생각이 악한 일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혼돈의 시대에 정직하게 살려면 성경적 세계관과 교리적 명료함이 분명해야 합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시대에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의 성산에 거할 수 있는 자는 정직한 자입니다. 그는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나타나지 않는 그 어떤 말도 선한 역사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참담한 시대에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한 하나님의 군사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아래서부터, 변방에서부터 참담함을 끊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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