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와 성도의 긴장
설교자와 성도 간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이 있습니다. 가장 편한 관계이면서 동시에 긴장이 팽팽합니다. 그것을 가장 많이 느낄 때가 바로 설교입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여 우리 시대에 전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설교자의 사적인 감정이 최대한 배제되어야 합니다. 설교는 간증이나 만담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도덕 강연도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설교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신학교에 첫 입학하여 들었던 첫 말씀이 설교는 죽어가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전하는 말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는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퇴색되게 하는 비유, 간증, 몸짓도 최대한 절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정의가 유언과도 같은데 어찌 광대처럼 설교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다릅니다. 설교를 엄중하게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제가 경험했던 한 교회는 목사의 설교가 자신들을 너무 힘들게 한다고 하여서 내 쫓았습니다.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설교자는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는 유언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주는 간식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은 웃고 즐깁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설교는 최고의 인기입니다. 울렸다가. 웃겼다가,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설교에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교회는 한국 교회의 얼굴 마담 노릇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래서 긴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유언과도 같은 설교는 매주일 듣고 싶겠습니까? 지친 마음과 육신을 치유해주는 설교를 듣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교회를 향하여 자주 제기되는 비판 가운데 하나가 너무 무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밝고 환한 모습을 내고자 변화를 시도합니다. 각종 음악 시스템이 들어왔습니다. 시스템이 변화되면서 설교도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성경을 강해하여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전하는 것에 방점을 두지 않습니다. 설교의 방점은 성도와 그들의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반짝하였습니다. 더구나 미디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목사들의 공통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점이 심각한 갈등 지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 까? 설교는 한 영혼에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회심과 부인의 결단이 있는 곳이 바로 설교입니다. 그래서 같은 설교에 한 사람은 회심의 자리에 이르고, 한 사람은 배교의 자리에 이르기도 합니다. 물론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결정을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정직하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을 해야 하고, 성도는 정직한 복음을 듣고자 애써야 합니다. 이 둘이 만날 때 변화와 성숙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눈치를 보면 설교를 통한 변화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의 사람들은 설교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사람을 변화 시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한국 교회에 제자 훈련의 광풍을 가져왔습니다. 제자훈련에 미쳐야 한다는 광인론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일부분의 성공적인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훈련을 강조하는 시대의 영향으로 각종 훈련 프로그램이 나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두 날개 훈련입니다. 아마도 이것도 광풍을 일으켰던 훈련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나타난 것이 가정교회 운동입니다. 제자훈련이 기반 된 가장교회 운동 역시 많은 교회가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훈련에는 설교의 강조성이 빈약합니다. 그러는 사이 성도들의 생각은 점점 견고해 졌습니다. 설교의 목사 독점권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성도중심의 교회를 추구하였습니다. 여기에 교회로부터 도피하였던 일단의 성도들도 함께 동참하였습니다. 이제 목사의 설교는 점점 세력이 약해진 것으로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더 이상 회심을 위한 설교와 죄 죽임을 위한 설교 그리고 연속적 강해가 위축될 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여기에는 교회 성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설교는 시대와 호흡하기에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면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설교가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 보기에 미련한 것 즉 설교를 통하여 사람을 구원시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을 훈련을 통하여 거룩함의 열매를 맺게 하는 일에 협력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성경적 구원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성령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지만 현장에서 설교와 훈련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더구나 설교자의 소명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설교자는 시대와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그렇게 선포된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삶의 현장에서 열매를 맺어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함께 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자와 성도 간의 긴장을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하나님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자의 소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설교자가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 까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성도가 설교를 통하여 시험 들지 않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 긴장이 우리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