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누구나’이지만 ‘아무나’는 아닙니다

새벽지기1 2020. 10. 12. 07:38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돈 재財의 사람. 돈을 창출하여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사람. 5% 정도입니다. 재능 재才의 사람. 재능을 살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 15% 정도입니다. 있을 재在의 사람. 있으나마나한 사람. 그냥 저냥 사는 사람. 70% 정도입니다. 재해 재災의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 10% 정도입니다. 나는 어느 사람에 해당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소금이고 빛입니다. 당연히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유익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새 꿈을 꿉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베드로가 처음 외친 것은 ‘새 꿈’에 관한 것입니다.

고귀한 꿈과 거룩한 열정은 그 자신을 살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다윗에게는 고귀한 꿈과 거룩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그 어떤 사람보다 가장 사랑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섬기며, 누구보다 가까이 모시겠다는 열정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하나로 묶고, 예루살렘 성을 하나님 도성으로 세운 다윗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 성에 안치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새로 만든 수레에 하나님의 법궤를 정중히 모시고는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실은 수레가 맨 앞에 서고, 웅장한 악대가 뒤를 따르고, 이어서 다윗과 삼만의 군대가 하나님의 법궤를 호위하였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무슨 영문이지 소들이 날뛰었고, 하나님의 법궤가 심하게 흔들리면서 그 순간 수레를 호위하던 웃사가 잽싸게 하나님의 법궤를 붙잡았습니다. 그 때, 웃사가 즉사를 했습니다. 가장 놀란 것은 다윗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 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여호와께서 웃사를 충돌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칭하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다윗은 웃사나 하나님에 대하여 분하게 여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불찰로 빚어진 이 비극에 대해 스스로에게 화를 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찾아 보았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상의해보고 하나님의 법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연구하는데 석 달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드디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찾은 자신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법궤 운반에 오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반드시 레위인들 중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걸어야’ 했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법궤에 직접 손을 댔다가는 그 즉시 죽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하더라도 그 분은 지고하시고 거룩하셔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이십니다. 최고의 전심과 정성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받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럼, 다윗과 백성들은 왜 법궤 운반법을 몰랐을까요? 하나닙의 법궤가 70년 동안이나 방치되었고, 사무엘이 죽은 후 여호와의 법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다윗도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기 바빴습니다.

우리들도 같은 실수를 저지릅니다. 내 방식대로, 내 생각대로 행하고는 하나님께서 용납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용납하시지 않는데에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를 비유로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임금님은 혼인잔치를 베풀고 종들을 보내어 ‘누구나’ 잔치에 오게 하였습니다. 혼인 잔치에는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임금님은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만나다가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할 말을 잃은 그를 두고 임금님은 종들에게 뜻밖의 명령을 합니다.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비유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마이클 캐롤은 19세의 나이에 165억원의 복권에 당첨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그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마약 중독자로 전락하고 현재는 주급 30만원을 받는 비스킷 공장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캐롤은 바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가치를 모를 때 반드시 잃습니다. 둘째, ‘누구나’이긴 하지만 ‘아무나’는 아닙니다. 이 둘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십자가는 내게 닥친 어려운 고난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바로 하나님의 법궤입니다. 세상과 구별된 우리 모두가 내 어깨에 메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삶의 십자가가 내 어깨를 짓누를 때,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크고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고 계십니다. 그 십자가를 주님의 사랑과 내 믿음으로 이겨내면, 나는 이 말세에 소망을 주는 생명의 리더가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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