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부활의 역사성

새벽지기1 2020. 9. 29. 06:52

부활의 역사성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정확하게 다른 점은 몇 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참 사람이고 참 신이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입니다. 이 세 가지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고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부활신앙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진리 안에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입니다. 성경은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향하여 진리에서 떠난 자라고 말합니다.[딤후 2:18] 이러한 사람들은 사단의 회에 넘겨짐을 당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고전 15:19]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믿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며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자를 향하여 진리에서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에서 완성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예수님 역시 죄로 인하여 죽은 자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우리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활이 없으면 다시 살아남이 없다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오직 현실입니다. 현실이 삶의 모든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이 땅이 삶이 마지막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에게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고생하면서 신앙생활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불신앙의 자리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사실입니다. 그것도 역사적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사실이었듯이 부활하심도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빈 무덤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부활 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입니다. 유대교의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는 자신의 『유대 고대사』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라고 불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선하게 행했고, 고결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유대인들과 다른 민족들 가운데 그의 제자들이 많았다. 빌라도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제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후에 다니 나타났다고 말했다. 곧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선지자들이 알고 싶어 했던 메시야였는지 모른다. 그의 이름을 따라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마이클 호튼, 기독교신앙의 핵심, 39]

 

이렇듯 유대인 역사가의 기록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성도들의 예배는 지속되었습니다. 소 폴리니우스는 주후 110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모여 예수님을 신으로 숭배한다고 보고했습니다.『(소폴리니우스 서신』10.96). 목격자들, 제자들, 역사가들의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정신의 부활이 아닙니다. 육체적 부활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목숨을 바쳐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거짓에 자신의 목숨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을 비롯하여 오늘까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고자 순교의 자리로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기에 우리는 삶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의 가치관과 싸울 수 있는 것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발적 불편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오늘도 고난이 따라오는 믿음의 길을 완수하고자 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는 힘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의 면류관을 주신다는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허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허탄한 이야기를 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역사적 실체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장치 이뤄질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 앞에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