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과 균형이 필요합니다.
“죄파도 우파도 아닌 개혁파다.”
한 목사님과의 대화 가운데 나온 말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재임 속에 연일 일어나는 이념의 투쟁 가운데 나온 말입니다. 사랑으로 진리를 전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이념문제만 나오면 야생동물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는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념의 비인격적 논쟁은 결국 교회를 깨트리는 도구가 됩니다. 이념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이념이 다르면 목사에 대한 비방도 도가 넘어 갑니다. 불신 사회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목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반응하는 막말을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성도를 향하여 내 뱉는 말들이 참으로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이념 앞에서는 직분도, 나이도, 관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서로를 향하여 온갖 더러운 것을 내 뱉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하여 어떠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없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향한 언어폭력은 매우 무섭습니다. 마치 정치인들이나 쓰는 언어들을 아무런 의식 없이 막 사용합니다. 참으로 인간이 가진 죄의 부패성을 여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아픔인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꽤 오랜 시간을 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그리스도인들끼리 하는 행위일까요? 예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리가 없고 오직 이념만이 있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이념이 전부이기에 이념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이념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념 때문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목숨을 거는 때는 진리뿐입니다.
물론 이념이 결코 가벼운 대상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매우 무섭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는 다 배설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설물에 만족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칼빈의 말처럼 개만도 못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위대한 것은 모든 이념을 십자가 아래에 내려놓은 것입니다.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것입니다. 이념이 말씀과 십자가를 넘어서는 안 됩니다. 이념이 말씀과 십자가를 넘어서는 순간 우상숭배가 됩니다. 그것은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이고, 교회를 허무는 일이 됩니다.
성경의 빛 아래 이념을 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념을 다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강력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펼쳤던 프란시스 쉐퍼는 미국에서는 보수주의자로 불립니다. 그가 했던 정치적인 행동은 낙태 반대, 안락사 반대, 영아 살인 반대, 환경운동이었습니다. 이 일로 정말 열심히 싸웠습니다. 거기다가 열심당과 같은 사람들인 제리 파웰과 팻로버트슨 같은 강한 보수주의 운동가들은 쉐퍼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강한 미국을 외쳤던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쉐퍼에 대하여 비판적입니다. 쉐퍼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한 쉐퍼가 교회의 표지라는 인생 후반기에 쓴 책에서 자신의 열심당과 같은 모습을 회개하였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옳다 해도 사랑으로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사람을 얻고자 합입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싸움으로 인하여 사람을 잃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았습니다.
쉐퍼의 이러한 생각은 사실 사도 바울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거듭난 성도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가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을 정말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균형 있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선진들이 남겨준 교리의 틀 안에서 상식적으로 해석하고 살펴 볼 때 우리는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성령이 중심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입니다. 또한 성령은 진리의 영이면서 사랑의 영이십니다. 진리와 사랑은 성령을 통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진리를 소유한 존재이면서 사랑을 나타내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사람을 메마르게 하고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진리를 나눌 때 사람을 얻고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개혁파 성도의 삶입니다. 이념이 진리의 자리에 앉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념이 사랑보다 앞서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이념을 분별할 수 있고, 균형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책을 보든지, 뉴스를 보든지 이념의 눈으로 보지 말고 성경의 눈으로 보려고 투쟁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고 가볍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감당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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