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즐거워하여야 할 이유?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은 두 사람의 차이를 진리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말합니다. 자유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라고 말합니다. 생명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구분합니다. 구원 받은 자와 구원 받지 못한 자라고 말합니다. 부활에 이를 자와 사망에 이를 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우는 자와 교회를 허무는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였습니다. 산 소망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허물을 벗기시고 사망의 자리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비로소 사람이 살아야 하는 제 일 목적을 알게 되었습니다. 땅에 살지만 하늘을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땅의 것을 찾는 존재에서 하늘의 것을 찾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부귀와 성공과 권력을 따르던 불나방과 같은 존재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존재로 변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의인이라는 의미입니다. 죄인이 아니라 의인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의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의인의 길을 여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에게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가 나에게로 전가됨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의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은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살아있는 자만 누리는 복입니다. 의인은 본질적으로 죄와 싸웁니다. 죄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를 힘씁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함께 하지 못하듯이 의인은 죄와 함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의 자리에 서면 가슴아파하고, 슬퍼하고 참담하고 철저한 회개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시금 새 힘을 얻어서 죄와 싸울 힘을 갖습니다. 또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은 겸손의 자리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죄에서 도망친 자가 머무는 곳은 바로 겸손의 자리입니다.
그러나 의인이 누리는 충만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이유는 바로 의인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에게 있어서 말씀은 생명입니다. 영원한 양식입니다. 말씀이 없이는 숨 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는 것에 어떠한 즐거움도 찾지 못합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에는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작된 말씀과의 만남은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함께 합니다. 말씀을 읽기도 하고 묵상하기도 합니다. 설교 말씀을 되 새김질하기도하고 전하기도 합니다. 말씀은 생명의 젖줄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싹트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의인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기에 흥하는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 것 없는 것 같이 보일 수 있으나 그 마지막에 형통함을 입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육적인 양식을 먹고 자라난 사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별로 세지 않는 바람만 불어도 허공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그들이 누렸던 부귀와 성공과 권력이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을 앞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을 알려줘도 가볍게 여겼던 사람들이 통곡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그 마지막 심판은 결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목이 말라서 혀에다 물 한 방울만 달라고 하여도 먹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애쓴다 해도 의인과 함께 할 수 가 없습니다.
의인은 영원한 나라를 보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정직하게 살다가 당하는 자발적 불편을 기꺼이 감당하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리고 의인은 이 모든 것을 감당할 힘을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공급받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즐거워합니다. 말씀이 나와 함께 있다면 의인의 복을 충만하게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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