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자리에서 도망칩시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의인이란 단지 올바른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된 자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법률적인 의미로 재판에서 무죄로 인정된 자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죄 없는 자로 여겨주심을 입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사람의 행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되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 은혜를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자부심이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고 판단하며 결정합니다. 자신들의 외적인 조건들에 따라서 타자를 재단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세속적인 문화를 거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과감하게 저항해야 합니다. 물론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의 도전이 종종 우리를 속상하게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 세계관과 싸울 수 있는 것은 복 있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세계관이 있어야 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확신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잘 안 되는 것이 태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적 세계관을 강조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세속적 세계관에 사로잡힌 것을 종종 봅니다.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실천적으로는 세속주의자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로운 자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현실에 물질적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영원한 삶을 기대하며 살게 합니다. 그래서 가장 멋진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멋지게 살아가가는 의인이 필연적으로 살아야 할 삶이 있습니다. 바로 죄로부터 도망치는 것입니다. 죄의 자리에서 도망가고자 치열하게 싸웁니다. 청교도 목사였던 존 오웬은 이것을 죄 죽임(Mortification)이라고 하였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 일에 열중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악인의 꾀”는 악을 꾸미는 것입니다. 죄악을 계획하고 그것을 실행하고자 하는 자리에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죄인의 삶의 여정이나 삶의 태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길은 반드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은 항상 달콤합니다. 마약같이 우리의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그 자리에 머물러있으면 너무나 황홀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어서 빠져나오기가 싫습니다. 그렇게 머물다가 죽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곧 깨어날 뿐 아니라 영원한 고통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잠간 누리는 즐거움을 위하여 영원한 고통을 택하는데 어리석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잠시 받는 고난을 인내하고 영원한 즐거움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의인이 누리는 복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의 영광을 너무나 잘 알기에 죄의 자리에서 도망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단호하게 그 자리에서 도망칩니다. 그렇다고 비겁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자리에서 도망하는 것은 죄에 대하여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죄의 권능은 참으로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첫 사람 아담부터 죄와 싸움에서 패배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와 맞서서 죄 가운데 들어가서 죄를 물리치겠다는 자세는 오히려 교만입니다.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능력은 성령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죄를 물리치십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죄의 자리에서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자리에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고, 죄를 미워하게하고, 죄를 역겨워 하도록 죄의 실체를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의 자리에서 떠나가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이 받아 누리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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