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본질에 집중합시다.

새벽지기1 2020. 7. 21. 06:36

본질에 집중합시다.

 

세계관 공부를 하면서 실존주의에 대한 대화가 있었습니다. 실존주의는 현대 세계의 문을 활짝 연 사상입니다. 장폴 사르트르, 하이데거, 카뮈, 카프카와 같은 이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상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은 행동하는 자신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본질이 중요하지만 그 본질은 바로 존재하는 자신의 실존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결국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티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였습니다. 실존이 중요한 시대는 이제 본질 자체를 해체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정의(定義,definition)는 사라지고 서로의 의견과 이야기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X세대로 문을 열었던 우리의 현대도 이제 포스트모더니티의 중심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가치보다 의견이 더욱 중요한 시대입니다. 정의(定義,definition)보다 감정이 앞서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논리적 설복보다는 감정적 이해가 더 힘을 얻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세대의 양극화를 가속화 시키고 있습니다. 더구나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우리 현실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노년 세대와 젊은 세대는 많은 면에서 단절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이성적 이해를 추구하는 세대와 감정적 이해를 추구하는 세대는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다른 답을 내고 있습니다. 논리적 결론을 추구하는 세대와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추구하는 세대는 소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답을 주고 싶은 세대와 스스로 답을 찾고 싶은 세대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세대는 가르치는 세대를 불편해 합니다.

 

누가 결혼을 두 남녀의 결합으로 정했냐고 항의합니다. 참과 거짓의 정의(定義,definition)를 누가 내렸냐고 대듭니다. 기록을 남은 역사가 참으로 진실하다고 누가 정했냐고 반박합니다. 이 말 앞에 두 세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제 점점 사회적 정의(定義,definition)가 진리가 되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생각이 진리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여론이 진리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람들은 언론을 통한 여론에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고 있습니다. 여론에 대한 바른 분별력이 없으면 중심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자기 생각도 없어집니다. 마치 여론의 아바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본질보다 보여 지는 것이 우선순위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각종 언론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나르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각종 매체는 더욱 다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수혈 받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시대의 정신에 빨려 들어 갈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상대주의의 바다 속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상대주의는 참으로 무서운 세력입니다. 이미 니체로부터 싹터왔던 상대주의는 실존주의자들을 거치고 포스트 모더니스트에게 와서 공교해졌습니다. 이들에게 본질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존이 중요합니다. 이성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느낌이 중요합니다. 정의(定義,definition)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시대는 성경도 상대화 시킵니다. 더더욱 신앙고백은 무시합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라는 소리로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극단적 쏠림 현상이 지배적입니다. 사고하는 것보다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존재의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감성적으로 만들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이제는 진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과 태도입니다. 마음과 태도가 진리 앞에 자리 잡습니다. 마음이 가지 않는 진리는 메마르고 가치 없다고 여깁니다. 그러니 교리에 대하여 부정적입니다. 또한 신앙은 철저하게 개인의 취향으로 돌립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바로 나의 결정이다” 이것이 이들의 구호입니다. 내 생각대로 신앙 하겠다고 요구합니다. 왜 나의 삶을 간섭하느냐고 말을 합니다. 편하게 신앙 생활하게 해달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것을 허락 받지 못하면 담대하게 교회를 떠납니다. 신앙은 내 중심이지 하나님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실존이 본질에 앞서기 때문입니다.

 

실존을 강조하는 시대는 본질을 강조하는 교회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주 적대시 합니다. 나의 삶을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 책 가운데 하나이지 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사상에 자신의 신앙을 헌납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유일한 진리를 부정합니다. 상대주의적 진리를 추구합니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특별히 설교의 영역에서도 유일한 진리로서의 성경을 강조하지 않고 여러 진리 가운데 하나로 언급합니다. 그러니 선포가 아니라 이야기가 강단의 주인노릇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한 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고 돌아갑니다. 그런 성도들이 월요일의 삶에서 어떤 소명을 감당하겠습니까? 점점 합리주의적 신앙만 내 보일 뿐입니다.

 

본질이 무너지면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가 주인 노릇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본질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 유전자의 작동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섭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습니다. 철저한 자연주의자들의 농간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시대에 영합할 것인지, 시대와 싸울 것인지, 시대를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는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우리의 삶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해 아래 새것이 없습니다. 무서울 정도로 본질을 우습게 여기고, 성경을 무시하는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있었습니다. 박식한 계몽주의자요 백과사전학파라 불리는 볼테르는 성경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성경의 종말을 예언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19,20세기에 교회는 땅 끝까지 증거 되었습니다. 20세기 초의 평양의 대 부흥은 볼테르의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상대주의는 다양한 모습으로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교묘함은 대단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정서를 파고들어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본질을 가볍게 만들고 실존을 강조하면서 의견만 개진하는 시대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시대의 학생들은 답을 찾지 않습니다. 의견만 듣고자 합니다. 그러니 선생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답이 없이는 존재의 가치는 매우 연약해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보이는 것은 화려하지만 기초는 부실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교회는 역사가 보여준 대로 담대하게 걸아가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변증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넓은 길을 포기하고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당장의 교회가 힘들어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른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주의 시대에 본질을 붙잡는 것이 우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신앙고백을 통하여 가야 할 길을 정립하였던 교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금 신앙고백을 가르치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정직한 답을 얻어야 합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진 자만이 시대의 무게를 감당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복음을 아는 그리스도인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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