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품어야 합니다.
아이가 이 땅에 태어나기까지는 10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 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기와 엄마 모두 힘을 합쳐서 서로 만나게 됩니다. 생명을 얻는 일에는 이렇게 수고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생명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생명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한 영혼을 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 소중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소중한 생명을 우리의 무지와 실수로 종종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속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탑을 세운 것은 쉽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더욱더 깨어 경성 하지 않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만큼 복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분명한 선언에 나타납니다. 에클레시아아의 선포가 바로 예수님의 입에서 주어졌습니다. [마 16:18] 그리고 사도들은 이 에클레시아를 세우기 위하여 생명을 바쳤습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되라고 한 것은 바로 땅 끝까지 에클레시아를 세우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는 반드시 에클레시아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에클레시아를 세운 것은 에클레시아를 통하여 구원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른 것입니다. 구원 즉 영적 생명이 교회를 통하여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사도들을 세웠고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도를 부르고 또다시 에클레시아를 세웠습니다. 그러한 교회의 역사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에클레시아를 무너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각종 이단과 철학자와 인본주의자들이 그러한 일을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지금 당장은 다 무너질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완성하기까지는 교회를 지키십니다. 교회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오묘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현실의 상황에 따라 세워지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됩니다.
요즘 우리의 현실이 교회를 불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 무교회주의자로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은 사회학적으로 살펴보고 영적으로 해석하고 답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라 기관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교회의 현상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회적 관점에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곳은 가이샤라 빌립보로서 거대한 우상인 판신이 자리 잡고 있으며, 헤롯의 궁궐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확인하였고 에클레시아를 선포하셨습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신앙고백의 산물입니다. 교회는 사회적인 여건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에 따라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무너짐은 신앙고백이 소실되면 더 이상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풍토가 아닙니다. 40-50년 뒤에 나타날 인구의 유무도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없다고 앞으로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 있다고 앞으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틀립니다. 그것은 통계학적인 견해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일에는 합당할 수 있습니다. 일반 은총의 영역은 일반 은총의 방법이 적절합니다. 그러나 특별 은총은 일반 은총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직 특별 은총의 관점에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구가 많아도 하루 만에 소돔과 고모라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알의 밀알이 땅에 썩어 죽을 때 많은 열매가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살피고 진단되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교회의 세워짐은 신앙고백에 있습니다. 교회의 기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른 신앙고백이 교회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금의 교회의 위기는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고백의 문제로 보는 것이 좀 더 옳습니다. 신앙고백이 문제가 있기에 교회의 기능이 잘못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협화음은 결국 사회의 지탄이 되고 만 것입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관심은 한 영혼입니다. 새로운 회심자를 낳는 것입니다. 이 일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회심자들의 교회는 이제 지경을 넘어가야 합니다. 교회를 세운 지역에 복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거룩한 길을 가고자 애써야 합니다. 동시에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로 상징되는 사회적 약자를 섬기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심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교회의 생명이 있습니다.
교회를 안 나가면서 신앙 생활하겠다는 새로운 무교회주의자들의 출현 앞에 교회는 자신들의 신앙고백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도려내고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를 계속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가르침을 듣고 다시 일어선다면 교회는 또다시 소망의 빛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흔들리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다시금 교회를 품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 땅의 소망임을 확고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교회가 힘든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교회를 품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이 세운 기관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세우신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세웠습니다. 힘들어도 교회를 세워야 하고 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하여 오늘도 사람을 부르시고 회심케 하고 직분을 세우시고 에클레시아를 만들어 가십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존재와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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