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살 길
2013년 영국의 레가윰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인의 번영지수 세계 26위입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오롯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조사를 보면 슬픔을 면치 못합니다. 동일한 연구소에 의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생활 만족도는 110개의 조사대상국 가운데 104위였습니다. 또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OECD 34 국가 가운데 33위입니다. 이러한 조사만 보아도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불균형한 사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해마다 실시되는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꼴찌입니다.
우리 사회는 가난을 가장 큰 적으로 삼고 극복하고자 무단히 노력하였습니다. 기성세대들이 먹지 않고, 자지 않고 일을 해낸 결과로 세계 26위의 번영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 이면에 짙은 어두움이 깔리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잘 살려고 노력하다가 그만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열심히 벌면 행복하고, 삶의 만족도 있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오히려 삶은 점점 피폐해 진 것입니다. 동방의 예의지국이라는 말을 들었던 한국은 천박한 세상이 된 것처럼 변해가고 있습니다. 화려함 속에 괴물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괴물 같은 세상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누구에게 이 책임이 있습니까? 정치권력입니까? 식자층입니까? 물론 이들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바르게 정치하지 못하였고, 가르치지 못하였던 이들의 모습이 오늘의 괴물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를 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적 주범은 한국 교회입니다. 전체 인구의 20%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자랑하였던 한국 교회가 바로 괴물 같은 세상을 만들어낸 주범 중의 주범입니다.
혹자는 너무 과한 말이 아니냐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양보해도 주범의 역할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국 교회는 누구보다는 성공주의에 물들어 살았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다는 속설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신봉하였습니다. 여기에 앞장섰던 교회 리더들인 목사와 장로들은 주범 중에 괴수들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도 낙제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20%이상을 넘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한국 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목사와 장로의 권위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2012년에 조사한 대학생들의 종교현황에서 66.7%의 학생이 무종교였고 그 가운데 86.3%는 단 한번도 교회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가 삶에 있어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배울 만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젊은 세대들은 교회를 등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 스스로 만들어 냈습니다.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정직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하여도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말을 하여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저 미사여구에 불과한 말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 드러난 현상은 돈의 우상입니다. 돈이 신앙이 되어서 교회를 휘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분도 돈을 주고 사고팝니다. 한국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직분매매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직분을 받기 위하여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장로는 얼마. 안수집사와 권사는 얼마라는 이야기는 이제 관습이 되어버렸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성장 신화는 긍정의 힘과 함께 고공행진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무슨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합니까? 오직 교회성장과 부의 추구만이 교회가 주는 복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하면 복 받지 못한 이상한 종교집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 장로가 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교집단이지 교회는 아닙니다.
장로가 되기 위하여 반드시 공부하여야 할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한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을까요? 무슨 내용이 담긴지도 모르고 서약합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젊은이들이 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더럽고 추한 곳에 함께하지 않겠다고 떠나는 것입니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 교회 청년의 성의식 조사는 충격이었습니다. 성관계 경험에 52%가 ‘있다’고 답해 기독청년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이미 성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나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남성 59.4%, 여성 44.4%). 혼전순결에 대해서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고 응답한 경우가 61.3%로 비교적 높았으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38.7%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지속적인 성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도 상당히 높았습니다(주 2-3회 5.4%, 주1회 16.1%, 월 2-3회 22.4%). 이것이 현재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양산한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목사들의 성 범죄가 난로 갈수로 나타나도 교회는 어떠한 징계도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들이 성범죄에 대하여 자유한데 청년들이 무엇을 바라보고 따르겠습니까? 목사의 성 범죄에 대하여 노회가 분명하게 조사하고 징계를 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풀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교회를 신뢰하겠습니까? 동네 개처럼 이리저리 발길질 당하는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선지자적 사명의 퇴출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권력지향형 기생충 목사들이 기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가 보고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어느 교단을 막론하고 불의함 싸움에 휩싸이지 않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특별히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하는 연합단체들의 탈선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지 않습니까? 어디에 십자가의 진리가 세워져 있습니까? 인간의 추악한 죄만이 냄새를 풍기고 있지 않습니까? 진리를 가지고 담대하게 불의를 대적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불의와 타협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가 선지자적 사명을 포기하면 하나님은 돌들을 통하여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교회의 역사입니다.
우리 시대는 매우 위급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될 줄 알았는데 그 돈 때문에 생때같은 아이들이 몰살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돈이 주인이 되지 더 이상 타인의 문제를 신경 쓰지 않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오직 개인적인 평안과 풍요만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치가 방황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황하는 시대에 가야 할 길을 알려주지 않으면 사회는 큰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누구도 이러한 방황을 끝낼 수 없습니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고 사는 이들에게 어떠한 소망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답은 교회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교회로는 소망이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낙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가다가 한 세기도 지나기 전에 한국 교회는 미미한 존재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야 합니다.
우선의 돈과 성장의 우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소망은 이 땅이 아닙니다. 천국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추악한 세습도 사라집니다. 천국의 영광을 정말 믿어야 합니다.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이제는 직분매매가 더 이상 발붙여서는 안 됩니다. 직분으로 천국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혼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돈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자발적 불편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예수 믿음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의 대형화는 결코 오래가지 않을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일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고 당회에서 십자가의 정신이 살아나면 교회를 다시금 회복 될 것입니다. 거대한 교회의 위엄은 잠시 있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에 집착하지 말고 천국을 소망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 개혁의 신학과 신앙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목사와 장로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신변잡기적인 설교를 포기하고 성경을 설교해야 합니다. 성경을 전하지 않으면 반드시 교회에는 곰팡이가 피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설교하는 설교자를 교회는 세워야 합니다. 성도는 그러한 설교자를 청빙하여 섬겨야 합니다. 더 이상 학력과 이력의 그물에서 벗어나서 성경을 설교하는 설교자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살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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