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지금도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11:1-10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

새벽지기1 2019. 4. 10. 08:01

9

10

1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

왜 이스라엘을 유기하셨는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바울의 고통과 근심(1-3)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4-13)

하나님의 주권(예정)(11-13)

하나님이 주권(토기장이 비유)

(14-24)

하나님의 주권과 이방인(25-29)

행위로 의를 구했기 때문!

(9:30-33)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

(10:1-15)

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

(16-21)

이스라엘의 남은자의 구원(1-10)

이방인의 구원과 자만경고(11-24)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14)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약속(25-32)

이스라엘 유기의 기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2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의 변론)



11

본장은 9-11장의 결론부로서 이스라엘의 거부가 이방인의 구원을 가능하게 했고, 이방인의 구원이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하게 함으로써 인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이 이루어진다는 구속사의 신비를 담고 있다.


지금도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11:1-10 이스라엘의 남은 자의 구원)

 

본문


1.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해석과 설명


1-10현재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이방인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구약 선민 이스라엘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며, 여전히 소수의 택한 자들을 중심으로 구속역사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여기서 그러므로는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전장 후반부의 진술(19-21)을 말한다.

즉 앞장에서 밝힌 바울의 논증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오해가 있는데 바울은 11장에서 그렇지 않음을 밝히겠다는 의지가 담긴 접속사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베냐민 지파라

바울은 한 마디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 증거로 첫 번째 바울 자신을 내세운다. 즉 바울은 이스라엘인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베냐민 지파임을 언급하는데 이는 자신의 족보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분명한 이스라엘 사람임을 강조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유기된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버리지 않은 남은 자가 있으며 이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이는 1절의 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는 자신이 제기한 질문에 대하여, 결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재강조한 것이다. 여기서 미리 아신다(, 프로에그노)’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아니하신다는 강력한 보증이 된다. 다만 여기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대상이 이스라엘 전부냐? 아니면 이스라엘 중 구원 택함 받은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냐?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본장의 문맥으로 볼 때 후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바울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두 번째 증거로 엘리야를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는 왕상19:1-18 내용의 인용으로, 여기서 바울이 고발하되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당시 엘리야가 처한 상황을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3)

이 구절은 왕상19:10, 14을 단축 인용한 것으로,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한 내용이며, 자신이 처한 처지를 표현했던 것이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4)

이는 왕상19:18의 인용으로 구약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은 나를 위하여라는 구절이 첨가되었다.

이 첨가된 구절은 바울이 이 남은자의 사건을 이야기 하는 강조점이 그들의 고결한 신앙에 있지 않고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행위에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칠천이라는 표현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하나는 실제의 수로 보는 견해와 또 하나는 완전을 가리키는 7이라는 상징적 의미(25:37) ‘무한대를 뜻하는 이 곱해져 많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는 견해가 있으나 후자가 적합하다 하겠다.(, 요한계시록의 천년 왕국등 히브리 숫자의 의미)

구약 본문에서 이 사실이 엘리야에게 큰 충격이 되었던 것처럼 바울의 논증에 있어서도 이러한 많은 수의 선택받은 자기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강력한 논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5)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 숭배 정책으로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락하였으나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칠천의 남은자가 있었듯이 바울의 시대에도 대다수의 이스라엘이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그런즉 이와 같이라는 표현은 엘리야 시대의 사건과 바울 시대의 상황을 밀접히 연결해 주는 기능을 가지다.

한편, 이러한 남은 자 사상을 잘 대변해 주는 말씀이 바로 마22:14절 말씀이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6)

바울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행위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을 반박하면서,

오직 구원은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7)

그런즉 ?’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도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가 있음을 논리적으로 기술한 1-6절의 결론이 무엇인지 보여주겠다 의미가 담긴 접속사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

여기서 구하는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에피제테이는 유대인들이 강하게 집착하면서 반복하여 계속적으로 찾는 행위를 가리킨다. 한편 택하심을 입은 자는 문맥으로 볼 때 5절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중 남은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우둔하여졌느니라는 헬라어 에포로데산으로 단단해져서 무감각해지다’, ‘심령이 둔하여지다라는 뜻이다. 즉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편중된 종교적 열심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해 본질적으로 무감각해졌고, 이러한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신 형벌이기도 했다.(부루스)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9:1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8)

이 구절은 사29:10과 신29:4의 복함 인용이다. 선민으로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그역사 속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기록된 말씀을 계속 듣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을 깨닫지 못했음으로 계속 범죄한 가운데 머물렀고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시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박는 결정적 죄를 범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상태를 혼미한 심령’, ‘보지 못할 눈’, ‘듣지 못할 귀라는 삼중적인 표현을 통해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불순종함으로 이미 굳어져 버린 유대인의 영혼의 마비상태를 지적한 것이다.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9-10)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사도 바울이 다윗의 말을 인용한 이 부분(9-10)은 시69:2-23의 인용이다. 원래 원문의 의미는 원수에 대한 신적 보복을 기원하는 기도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원문과 약간 다르게 시편을 재해석하여 인용하고 있다. 즉 본 절은 10절과 더불어 율법을 지킨다는 미명하에 하나님의 은혜받기를 망각하고 메시야를 거역한 이스라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정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 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9절에 언급된 보응이 구체적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탄다. 하나는 8절에서 이미 나타난 대로 영안이 어두운데서 비롯되는 영적 통찰력의 상실이며, 또 하나는 죄로 인한 고통과 속박에 짓눌린 삶을 의미한다. 한편 등은 항상 굽게하옵소서는 포로들의 등이 무거운 짐으로 인해 굽어짐을 뜻하거나(웨스트), 슬픔이나 고통으로 위축되는 것을 상징한다(머레이). 이처럼 복음을 배척한 유대인들은 영안이 어두워 진리를 분별치 못할 뿐만 아니라, 지키지도 못할 율법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비유한 것이다.

 

교훈과 적용


지금도 남은 자가 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

앞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 있는 말이다.

이에 바울은 본장에서 그렇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다.

첫째,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바울 자신을 들고 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1)

자신도 분명한 이스라엘 사람임이며 유대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유기된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 가운데서도 버리지 않은 남은 자가 있으며

이들은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둘째,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엘리야의 칠천명 들고 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4)

바울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당시 엘리야가 처한 상황을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바울은 그들의 고결한 신앙에 있지 않고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행위에 있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바로 5절에 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5)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 숭배 정책으로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락하였으나

그런 상황 가운데에서도 칠천의 남은 자가 있었듯이

바울의 시대에도 대다수의 이스라엘이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거부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앞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던 성경에서 남은 자(remnant)’?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사를 이끌어 가시기 위해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와중에서도 남겨두신

그 시대에 남겨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소수>를 말한다.

이러한 남은 자는 각 시대 마다 있었다.

여기서 지금도라는 말씀은 오늘 날에도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사역은 바로 그 남은 자를 찾는 일이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1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