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 (롬10:16-21 이스라엘을 유기한 이유③)

새벽지기1 2019. 4. 4. 07:13

9

10

1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본심

왜 이스라엘을 유기하셨는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바울의 고통과 근심(1-3)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4-13)

하나님의 주권(예정)(11-13)

하나님이 주권(토기장이 비유)

(14-24)

하나님의 주권과 이방인(25-29)

행위로 의를 구했기 때문!

(9:30-33)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

(10:1-15)

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

(16-21)

이스라엘의 남은자의 구원(1-10)

이방인의 구원과 자만경고(11-24)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14)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약속(25-32)

이스라엘 유기의 기간: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25)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의(의의 변론)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거부했기 때문!

(10:16-21 이스라엘을 유기한 이유)


본문


16.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21.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해석과 설명


16-21절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이 율법 시대에서 복음의 시대로 바뀌었으며, 구속사의 범위에 있어서도 구약 선민 이스라엘 중심에서 세계 만민에게 확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구속사적 경륜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무조건적인 민족주의적 배타성과 구약 율법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 복음을 배척한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현재 복음이 세계 만민에게로 전파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받아 들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과 세심한 섭리에 따른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6)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저희는 유대인을 가리킨다. 한편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AD57년경)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을 포괄하는 복음의 전 세계적 전파가 이미 시작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11-15). 그러나 나타난 현실로는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라고 표현한 것은 모든 유대인들이 불신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도 복음에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53:1의 인용이다. 53장은 52장부터 시작된 종의 노래의 도입되는 부분으로, 53장 서두에 나오는 이 부분은 그 고난의 종에 대한 메시지를 과연 누가 믿을 것이냐라고 질문하는 구절이다. 즉 이 질문 속에는 이스라엘이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신 메시야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리라는 의미를 짙게 함축하고 있다. 이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그가 유대인들에게 배척된 사실이 이러한 예언이 사실로 성취되었음을 증명해 준다. 한편 우리의 전한 것은 복음 메시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바울은 본장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는 믿음을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말미암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불순종을 추궁하는 유일한 근거로 바로 복음을 들음에 당연히 뒤따라야 할 반응이 없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관성이 16절에서 전하는 바에 사용된 단어가 본 절의 들음과 동일하게 사용된다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한편 그리스도의 말씀은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복음의 도구의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은 그들은 분명히 복음을 들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17절에서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데서 비롯된다는 결정적인 진술을 한 후에 바울의 논지는 이스라엘이 그 가장 기본적인 행위도 하지 않았음을 통박하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이 부분에서 명시적으로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지 못했을 리가 결코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바울이 유대인들의 핑계를 봉쇄하고 복음 선포의 보편성을 증거하기 위해 바울이 시19:4을 인용한 것이다. 시편19편의 구조를 보면 1-6절은 일반계시를, 7-14절은 특별계시를 기록한 내용이다. 하지만 바울은 늘 그렇듯이 구약을 엄격히 인용하기 보다 그 의미가 크게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성령의 감동한 바대로 인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본 절 역시 종말론적 구원사의 전개과정을 보다 명확히 밝히기 위해 복음전파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이다. 아울러 바울이 복음의 편만함을 증거하는 것은 그가 바라보는 선교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이는 18절의 첫 번째 질문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와 유사한 구조의 두 번째 질문이다. 다만 첫 번째 질문의 들음에서 아는 것으로 질문을 전환했을 뿐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기는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했기에 믿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 있었으므로 그 변명을 봉쇄하기 위해 두 번째 질문을 하는 것이다.(핸드릭슨)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는 말은 이스라엘이 분명히 복음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어법이다.

먼저 모세가 이르되

여기서 먼저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트는 이스라엘이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구약의 구절로 인증하면서 모세의 것이 그 첫 번째라는 의미다. 따라서 첫째로라고 번역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편 모세를 처음으로 거론한 것은 유대인에게 있어 최고의 권위를 갖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이것은 모세가 죽음을 앞두고 후에 있게 될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 모세의 노래에 나오는 신32:21의 인용이다.

그들(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이방인)으로 그들(이스라엘)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고의 권위자였던 모세의 말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복음에 대한 분순종과 변명을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신32:21에서 그들을 바울은 너희로 바꾸어 반박의 효과를 한 층 더 높였을 뿐이다. 한편 여기서 백성 아닌 자미련한 백성은 모두 영적 지식이 없으므로 원래 우상 숭배하에 있었던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표현들은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소유한 이스라엘이 이방을 멸시적으로 부르며 자신들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이 자만심은 사도 바울에 의해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 것이다. 이스라엘은 모세 때부터 이이 복음이 이방인에게도 미칠 것이라는 예언을 알고 있었다.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20)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사도 바울은 모세에 이어 이스라엘에게 권위 있는 이사야 선지자의 증거를 통해 이스라엘의 과오를 더욱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매우 담대하여라고 쓴 것은 이사야의 메시지의 성격 보다는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의 강도를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이것은 사65:1을 인용한 것이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본래 구약에서 이 구절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반역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의미로 기록되었다. 바울이 신32:21 이후에 이 이사야서의 말씀을 또 다시 인용하는 것은 앞서 언급한 신명기 말씀을 더욱 확증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신32:21의 말씀과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구원 받은 사실을 보고도 하나님께 계속 불순종함으로서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불행에 처하고 만 것이다.(데니) 한편 사65:1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는 모두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21)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하였느니라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사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계속적인 하나님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거절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지칠 줄 모르고 끊임없이 베풀어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 기록한 것이. 이는 마치 예수의 비유 중 눅15장 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생가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이 이러한 철저한 불순종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남은 자는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유기는 최종적이 아니며(11:1-16) 마침내 이스라엘은 회복될 것이다(11:25-29).

 

교훈과 적용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본문은 복음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 대한 무지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배척한 이스라엘을 떠나

복음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흘러가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지 못했는가?

아니면 복음에 대하여 알지 못했는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복음을 들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분명히복음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복음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16)

그래서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흘러 간 것이다.

참고로 바울이 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AD57년경)

이미 바울의 1,2,3차 선교여행을 마친 후였기 때문에

이방인을 포함하는 복음의 전 세계적 전파가 이미 시작된 때였다.

바울은 복음이 왜 이방인에게 흘러갔는지 이사야 예언을 인용(65:1)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20)

여기서 나를 찾지 아니한 자내게 묻지 아니한 자는 모두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이 세계 만민에게로 전파된 것은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과 세심한 섭리에 따른 것 이었다.

본문에서 주목할 곳은 21절 이 부분이다.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이것은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사랑의 기다림을 나타낸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그 기다림에 기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