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시대를 보면서 다시금 교회의 가치를 생각해 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습니다.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에 따라 교회는 세워졌습니다.
물론 구약 시대의 광야 교회도 있었지만 오늘날의 우리가 고민하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오순절 성령의 임함으로 현실화되었고 사도들을 통해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렇듯 교회의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가 이 땅에 참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시고 제자들을 위한 기도에서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감이 아니라 세상으로 보냄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제자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뜻이 실체로 나타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의 대안입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맛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변방에서 시작했지만 중심을 깨우는 일을 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교회를 통해 나왔습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이 교회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공동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교회를 통해 전파되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모든 삶을 위한 하나님의 전진기지와 같습니다.
그러기에 교회의 건강은 인류의 건강과 같습니다.
이렇듯 교회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무너짐은 인류의 절망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여받은 사명을 감당할 때 인류의 삶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세상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사람들이 불법을 자행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세상에 속한 사람이 된다면 세상은 치유 불가능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온갖 경쟁과 차별과 비교가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어디에도 배려와 양보, 평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경쟁에 밀리면 변방으로 밀려나야 합니다.
다양한 모습의 차별이 사람을 나누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비교의식 가운데 살아납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고3 학생이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8개월 동안 방치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그 내막을 보면 더욱 비참합니다.
부모는 이혼했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는 아들을 통해 소망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고3이 될 때가지 매로 다스리면서 1등을 위한 삶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살해의 위협을 느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늘 자살을 생각하며 살았던 아들은 마침내 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일을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경쟁과 차별과 비교가 난무하는 세상이 가져다 준 열매입니다.
우리 시대 아이들이 부모에게 얼마나 고마움을 가지고 있을 까요?
그렇게 열심을 다해 가르쳤지만 부모가 오래 사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모두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잠 27:1)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삶을 맡겨놓고 살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어디에도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 보이지 않습니다.
꿈의 나라로 불리던 미국에서 1%의 부자를 향해 99%의 서민들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참다운 꿈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1%가 되기 위한 욕망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상의 전복을 위해 분노할 것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물에 그 밥이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참다운 대안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물대포를 맞으면서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시대입니다.
암울한 이 시대의 대안은 오직 교회입니다.
교회가 대안 공동체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못합니다.
점점 대형화 되어가는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에 그 힘이 부족합니다.
선지자적 복음을 선포하고, 한 영혼을 돌아보기에는 너무나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시대의 대안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교회 스스로 경쟁과 차별과 비교의 세계관을 폐기처분해야 합니다.
맘몬을 섬기고 권력에 빌붙어 기생하는 매춘 행위를 멈춰야 합니다. 정
직과 공의가 나타나고, 교회의 진정한 표지인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처럼 진리로 거룩함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참다운 행복을 누리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제 교회는 말씀과 삶이 하나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소망이며, 행복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사명을 망각하고 여전히 매춘행위를 한다면 하나님의 손은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큰 교회가 아니라 바른 교회를 소망해야 합니다.
더 이상 복음이 들리지 않고 마케팅에 물들어 있는 교회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대안이 되는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 길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소망이라고 믿는다면 교회가 그 소망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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