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한국교회의 개혁 과제 (1)

새벽지기1 2019. 1. 18. 07:58


올해로 494주년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해마다 종교 개혁주일을 맞이할 때면 많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가운데 우리 교회가 정말 종교개혁 정신에 걸맞은 교회인지를 돌아봅니다. 종교개혁의 3대 표어였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말씀의 신앙이 온전히 지배를 받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말로만 개혁 교회를 외치고, 삶에서는 전혀 개혁교회의 모습이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교회를 향해서는 성경적인 교회를 회복해야 한다고 부르짖으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성경적 갱신을 적용하고 있었는지 물어봅니다.

종교 개혁은 494년 전에 일어났던 성경의 회복과 개인 신앙과 교회 공동체의 갱신이었습니다. 이러한 종교개혁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더구나 한국교회를 생각할 때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종교개혁 선배들의 가르침처럼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종교개혁이 현재진행형이라면 우리가 가야 할 길도 분명합니다.

종교개혁을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이 서 있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올바른 종교개혁을 이어가는 일입니다.


첫째, 성경관의 회복이 더욱 필요합니다.

종교개혁은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신학 운동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성경을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성경을 전체의 관점에서 해석해야 하는데 개별적으로 읽고 해석했습니다. 여기에서 불일치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여러 종류의 하나님으로 만드는 실수를 만든 것입니다.

모 신학대의 신약학 교수는 지옥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피하고, 교회 다닌다고 다 천국 가느냐는 질문을 해야 한다는 동문서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개혁의 과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하는 일입니다.


둘째, 바른 신앙고백의 회복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듯 보입니다. 마치 실천적 무신론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는 오지만 종교인으로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귀에 달콤한 설교만을 골라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삶을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결국 하나님과 관련이 없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신앙 생활하는 것은 자신도 죽고, 교회도 죽이는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고백이 회복돼야 합니다. 그리고 고백에 따른 신앙생활이 나타나야 합니다.


셋째, 설교 강단의 회복입니다.

개혁교회는 강단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강론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시장 통이 됩니다.

시장은 다양한 소리가 난무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비자의 마음을 유혹합니다.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줌으로 상품을 팔아 버립니다. 여기에는 애통함이나, 회개함이 없습니다.

결국 회심의 기쁨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만족만 누리고 끝납니다.

이것이 교회의 강단이라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런데 교회가 성장이라는 마수걸이에 걸려서 소비자 중심 설교와 마케팅을 통한 인위적 변화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절망뿐입니다. 강단의 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귀를 간지럽게 해주는 설교가 아니라 가슴을 찢고 회개의 자리에 이르게 하며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말씀이 선포돼야 합니다.

이것이 개혁 과제 중의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장의 포로에서 벗어나서 말씀의 포로가 돼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종교개혁입니다.


넷째, 말씀과 삶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주의며 개혁파 신앙입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균형 있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는 지역에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지역을 위한 섬김의 사역이 함께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불의한 정책에 대한 처방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는 지역의 문제를 잘 살피고 교회가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은 교회 안에 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주인이 누구인지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누구보다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늘 고민이 되고 가슴이 아픈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써서 감당해야 할입니다.


다섯째, 교회는 부자가 되는 것을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는 너무나 큰 부자가 됐습니다. 이 말은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회에서 복음의 영향력이 아니라 물리적 영향력을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교회의 연합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정치인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일을 즐거워합니다.

이제 이 일을 그만 둬야 합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돈은 권력을 움직이는 동인입니다. 돈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무서운 일도 가볍게 치루고 있습니다.

돈은 인간의 삶에 필요하지만 사랑하기 시작하면 독이 됩니다.


교회가 회복해야 할 일은 복음의 영향력이지 기득권의 강화가 아닙니다.

너무 편하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의존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기에 참된 개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