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여호와를 앙망하라

새벽지기1 2017. 12. 4. 06:54


이사야서 40장을 보면 이사야는 하나님께 들은 네 가지 메시지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합니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인생의 허무함과 말씀의 영원성에 대해서 외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포로 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지 


이사야는 이 메시지를 전하면서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세상,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네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네 시선을, 네 관심을, 네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첫째 하나님은 강하고 능하신 분입니다. 어떤 원수도 막아내고, 어떤 강대국도 쳐부술 수 있고,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강하고 능력 있는 분입니다. 둘째, 양떼들을 돌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양떼들을 먹이시고 안으시고 인도하십니다. 이사야는 강한 어조로 이 우주에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을 보호하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시는 그런 분이라고 강조합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평가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마치 손바닥으로 바다를 헤아리는 것과 같고, 뺨으로 하늘을 재는 것과 같고, 바구니에 흙을 담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도 많은 사람들은 마음대로 하나님에 대해 농담도 하고 평가 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상담자가 되어주고, 하나님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하나님보다 지식이 많을 수가 있겠느냐고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관점, 우리의 편견, 오해, 천박한 지식, 무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돌이나 나무, 금으로 만든 우상과 견줄 수가 없는 분입니다.


듣기를 거부하는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메세지를 들었지만 가슴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사야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귀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포로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 일터, 가정을 빼앗기고 가족은 다 흩어졌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팔려가고 아내들은 농락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포로생활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상처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사야의 외침이 들어올 리 없습니다. 이사야가 화려하고 위대한 하나님을 소개하면 할수록 이스라엘 백성의 아픔은 점점 커져갈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입니다. 27절입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죄인은 자신의 죄와 허물과 실수는 가볍게 생각하는 반면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과 고난은 크게 생각합니다.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자기 죄는 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기가 받는 고통은 크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죄인인 인간입니다. 


이사야는 원망과 불평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스라엘에게 이것을 깨우쳐줍니다. 똑같은 사람인데 ‘야곱아’ ‘이스라엘아’ 라고 두 번 부릅니다. 왜 이렇게 똑같은 사람을 두 이름으로 부를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위대하신 분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상처와 오해가 있는 것을 본 이사야의 애절하고 가슴 아픈 심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하나님께서 수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내 사정이 여호와께 숨겨졌다’는 것은 길이 막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을 알았다면 길을 뚫어주셔야 할 텐데 길이 막혀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 원통함을 풀어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죄와 벌 


이 말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 말에 허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포로생활을 하게 된 이유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했고, 음란했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차례 경고하고 또 경고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경고마저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일을 그들은 까맣게 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당한 것만 원통하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이 민족이 갖고 있는 고통과 아픔에 대한 원인은 규명하지 않고 결과만으로  상처를 받습니다. 왜 선하신 하나님이 악을 만드셨습니까? 기근과 지진과 태풍과 재앙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은 왜 쓰나미를 허락하셨습니까? 왜 카트리나 태풍을 막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까? 굉장히 그럴듯한 말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노아시대에 홍수로 전 인류가 심판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잘못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죄악이 심판을 몰고 온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도 하나님의 실수입니까? 아닙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그런 심판이 온 것입니다. 오늘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기가 막힌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존층이 파괴된 것도 하나님이 잘못한 것입니까? 빙하가 계속 녹아서 인류를 위협하는 것도 하나님의 잘못입니까? 인간이 환경을 관리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려서 이런 결과가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자연이 신음하고, 태풍이 몰아치고, 쓰나미가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저지른 죄악과 전쟁과 욕심이 낳은 결과입니다. 지상의 식량은 모든 인류가 다 먹고 살만큼 충분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식량을 독점합니다. 하나님은 이 환경이나 우주를 부족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욕심이 전쟁을 일으키고, 독점을 만들고, 인간의 욕심이 극도의 빈부차이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이사야가 말하고 있습니다.  


참 하나님을 만나라 


28~29절을 읽겠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여기서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는 뜻은 하나님에 대한 너희 지식이 일방적이고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으면 대상을 정확하게 볼 수 없게 됩니다. 언제나 왜곡해서 분노의 대상으로, 미움의 대상으로 봅니다. 또한 이 말은 ‘네가 진짜 하나님을 모르고 네가 만든 상처의 하나님만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생각한 예수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는 기독교에 대한 상처와 아픔 때문에 진짜 기독교는 보지 못하고 당신이 만든 허상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첫째,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지만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입니다. 둘째, 그분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셨고, 통치하고 다스리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지치거나 피곤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고 그 힘이 날마다 새롭기 때문에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도중에 포기하는 분이 아닙니다. 넷째, 하나님의 명철은 한이 없습니다. 그의 지혜와 그의 지식은 무궁하며 그의 분별력과 통찰력은 완벽합니다. 결론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관점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음의 대상을 바꾸십시오. 그 생각을,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삶의 고통과 저주는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하나님에 대해서 계속 기도하고 있으니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것입니다. 경험하지 못했고, 동의할 수 없더라도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하나님으로 생각을 바꾸십시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28절을 보십시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절망한 자에게 희망을 주시고, 병든 자에게 건강을 주시고, 길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보게 하시고, 죽은 자에게 부활을 주실 것입니다. 크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왜 이제껏 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점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십시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가 만든 예수, 내가 생각하는 예수를 예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도할 때 보면 예수가 싫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교회가 꼴보기 싫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가 아니라 목사를 비롯해 소위 예수 잘 믿는 사람들한테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예 마음을 굳게 닫아 버린 것입니다. 이런 비극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은 여러분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관점을 바꾼다면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축복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고, 더 이상 미래가 없던 사람도 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교회 30년 다녔다’, ‘대대로 크리스천 집안이다’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은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같이 산다면 ‘너같이 믿느니 내 주먹을 믿겠다’고 조롱을 받기 십상입니다. 


30절, 31절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은 세 가지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하늘로 비상하는 것’ ‘달음박질하는 사람이 숨이 차지 않을 것’ ‘걸어가는 사람이 힘이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능력을 부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결론은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시작하면 새로운 능력과 힘과 세계가 열릴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새 힘 주시는 하나님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면 새사람의 경험, 거듭남의 경험, 새로운 능력의 경험이 어느 날 어느 순간에 내 안으로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자기를 묵상하면 자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묵상하면 부활이 다가옵니다. 세상일을 생각하면, 자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희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비바람 치고 폭풍우가 치고 캄캄한 가운데 빛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마음이 환해지기 시작하고, 독수리가 창공으로 날아가는 것 같고, 아무리 뛰어도 피곤치 않고 숨차지 않습니다. 뛰면 뛸수록 힘이 넘치는 것입니다. 아무리 걸어가도 힘이 빠지지 않습니다. 이런 삶이 천국갈 때까지 계속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안된다고 말해도 나는 된다고 말하고,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해도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이 있기에 긍정적으로 말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이 차이가 무엇입니까? 이 차이는 놀라운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다가 굉장히 놀랐습니다. 저는 설교준비를 다 마친 후 춤을 추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에 대한 관점을 바꾸기 시작하니 어떤 힘이 제 안에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 밤에 이 힘을 경험하면서 잠을 잘 수도, 앉아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도 이런 일을 동일하게 경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하나님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힘과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명철하신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내가 그분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선포합니다. 그분을 내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사고와 판단력과 인생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 하십시오 ‘여호와를 앙망하라’라는 말은 ‘고정하라’는 뜻입니다. 한번 슬쩍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폭풍이 치고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까지 십자가에 못박게 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하나님을 영접하십시오. 그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일으키시고,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시는 힘이 이 시간 여러분을 점령할 것입니다. 그 힘이 여러분에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아이디어를 주시고 창의력을 주시고 그분이 여러분에게 의욕을 주시고 생기를 주십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십니다. 독수리처럼 날아갈 것입니다. 달음박질하여도 숨차지 않을 것입니다. 걸어가도 힘이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힘이 더 생길 것이다. 달음질하면 달음질할수록 더욱더 힘이 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원망과 불평의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피곤한 자에게 새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무능한 자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이 믿으신다면 그 순간부터 여러분의 인생은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의 결론을 좋게 만드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치유하실 것입니다. 불치병으로 고생하시는 분 절망하지 마십시오.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 인간관계가 어려운 분,  어려운 문제가 산처럼 둘러싸고 있는 분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 위로 날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은 새 길을 주십니다. 새 방법을 주십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전혀 예기치 않는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 성도들의 삶 속에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가는 것과 같은

비상과 기상과 그런 놀라운 능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좋은 말씀 > 하용조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0) 2017.12.07
겸손의 힘  (0) 2017.12.05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성  (0) 2017.12.03
내 백성을 위로하라  (0) 2017.12.01
베드로를 격려하시는 예수님  (0) 201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