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새벽지기1 2017. 12. 7. 06:12


사람에게는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금방 확인하고도 뒤돌아서면 불안하고 걱정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불안해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계속 불안해합니다.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지고 어그러지면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사람과 관계가 깨어지면 고독하고 소외감을 느낍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주 가까이 있는 사람과 관계가 나빠지면 외롭습니다. 부부, 자녀, 친구의 관계가 깨지면 갑자기 소외감을 느낍니다. 나와 내 자신의 관계가 깨지면 인생의 허무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오늘 본문 8절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첫째,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주인과 종과의 관계입니다.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나 바울’은 이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자기의 관계를 종과 주인의 관계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노예와 주인, 주종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깊이 신뢰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둘째, ‘나의 택한 야곱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선택된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 중에 내가 너를 택했다. 너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너를 싫어버리지 않았다. 너는 내가 진주처럼 보석처럼 가장 아끼는 선택받은 사람이다’라고 관계를 설정해 주셨습니다.

셋째,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입니다. 하나님은 ‘벗(친구)’이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런 관계의 대상으로 보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상적인 관계가 계속될 때는 불안하지 않고 두렵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관계일 때는 그 사람을 보면 볼수록 행복하고 안심이 되고 뿌듯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졌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겁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관계를 계속 유지 시켜 주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갈대아 우르에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던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9절입니다.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여기서 ‘땅 끝, 모퉁이에서 불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신 배경에는 ‘내가 너를 택했고, 너는 내 종이고, 나는 너를 친구처럼 사랑한다’는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가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절대 부르시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면 ‘아멘’하십시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왜 오라고 하시겠습니까? 관계가 있으니까 당신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부르시는 하나님


9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의 종이라고 했고, 나에게 택함을 받았다고 했고, 싫어버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좋아한다는 말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관계가 깨어져서 불안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가서 이사야를 통해 회복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고난이 깊고 고통이 클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그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다시 임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10절입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불치병, 사업의 실패,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 두렵습니까? 자살하고 싶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환경을 보면,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지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겪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여기 있고, 내가 네 하나님이다!” 고난과 고통이 파도처럼 계속 몰려오지만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 앞으로 나아가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고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어떤 고통도 이겨낼 수 있고 어떤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안개가 사라지듯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도, 고통도 여전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이길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고난과 싸워 이길 능력이 내 안에 생깁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겁을 먹는 것입니다. 겁만 먹지 않으면 사실 죽는 것도 괜찮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하나의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죽음 자체보다도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죽음을 축복으로 받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는다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고통이 축복의 도구로 바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우연도 아니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행복과 불행은 내가 선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불행을 선택하면 불행해 집니다. 그러나 내가 행복을 선택하면 행복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을 선택하십시오. 불행 쪽으로 기울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고 택하십시오.


여러분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을 불행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미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을 선택하지 않고 하늘을 선택했기 때문에 나를 가로 막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죽음, 질병, 실패 등 그 어떤 것도 나를 막을 수 없습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


하나님께서는 놀라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이것을 선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굳세게 해줄 것이다. 참으로 너를 도와줄 것이다.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도와줄 것이다.” 이것보다 어떻게 더 강하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해도 믿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인격문제입니다. 막 울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가 다가가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면 아이가 부모의 말을 믿어야지, ‘우리 부모는 사기꾼이야. 저렇게 이야기 하고 5분 후에 딴 소리해’라며 믿지 않는다면 관계가 다 깨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주리라”라고 말씀하셨으니, 이것을 믿으십시오. 이것을 택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축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제가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알면 고민이 많아집니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 힘입니다. 아는 것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확실히 믿고 여기 교회 예배당 안에 앉아 있습니다. 만약 건물이 언제 주저앉을지 불안해한다면 이곳에 어떻게 앉아있겠습니까? 이제는 믿음을 영적인 것으로 바꾸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영이 튼튼해지고 흔들리지 않고 축복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안 되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이 있고,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불안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찬송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기쁨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감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서 불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말씀 안에 있으면, 이 믿음을 가지면 모든 여러분을 괴롭히는 요소들과 악인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것입니다.


악인의 공격에서 보호하시는 하나님


11절, 12절입니다.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세력들을 성경에서는 네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네게 노하던 자들’입니다. 둘째 ‘너와 다투는 자들’입니다. 셋째 ‘너와 싸우던 자들’입니다. 넷째 ‘너를 치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나에게 화를 내고 으르렁대며 싸우자고 덤벼드는 사람들, 신경을 쓰게 하고 마음을 너무 힘들게 해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사람들이 11절, 12절에 보니 수치와 욕을 당하고, 멸망하게 되고, 허무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믿으십시오. 여러분들을 그렇게 괴롭히던 사람들이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이사야가 얼마나 예민하게 관찰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한테 배신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기에 이렇게 예리한 관찰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악인들이 왜 사라집니까? 왜 멸망하고 수치를 당하며 당신을 만날 수도 없게 됩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잘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여러분들을 날개를 펴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래서 악인이 여러분을 공격해도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면 우리는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더라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는 눈을 씻고 봐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던 자는 다 사라질 것입니다.13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신 것입니다. 만약 내가 하나님을 붙잡았다면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고 있으면 내가 힘이 없어도 절대로 놓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내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싸우시는 것입니다. 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전사입니다. 어떤 적도 무너뜨리는, 어떤 악한 세력도 무너뜨리는 분이십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굳세게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


14절, 15절입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14절에서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지렁이 같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했습니다. 15절에서는 네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 같다고 했습니다. 지렁이라는 말은 무가치하며 비천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렁이 같은 우리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새 타작 기계로 바꿔주신다는 것입니다. 타작 기계는 곡식을 까기 위해서 둥그런 널빤지에 못을 박고 이것을 돌리면서 곡식을 까는 기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렁이를 타작 기계로 바꿔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타작 기계가 돌아가면 산들이 부서져서 돌멩이가 되고, 작은 산들은 부서져서 먼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수를 다 갈아 버릴 것입니다. 열방을 갈아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지렁이처럼 맥을 못 추는 천박한 존재였지만 이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고 믿음을 선포하면 타작 기계가 될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열방은 겨와 같이 날아가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다 흩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이 도시, 국가, 이세상의 권력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 밑에서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군사력이 무섭고 경제력이 무섭고 정치권력도 무섭습니다. 도대체 이 커다란 세상 속에서 우리는 지렁이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이미지를 바꾸어주십니다. 타작 마당의 새 기계처럼 내가 움직이면 산들이 부서져서 돌멩이가 되고, 작은 산들은 변하여 티가 될 것입니다. 바람이 불면 이 열방들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타작 마당의 새 기계로 일어나라


여러분 오늘 저는 동일하게 이 환상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 환상이 여러분에게 그려지기를 바랍니다. 가슴을 펴고 떳떳하게 가십시오. 빚, 병, 이중삼중으로 겹쳐있는 어려운 인간관계를 뚫어버리십시오. 고난과 역경 속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십시오. 이것은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여러분의 환상으로 받아들이고, 이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승리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기쁨이 내 안에서부터 살아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이런 환상이 영적 기쁨과 영적 능력과 영적 환희를 깨우고, “나는 살았다”는 소리를 지르게 합니다. 찬송이 터지고 춤을 추게 됩니다.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달라지고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달라집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불행을 선택하면 불행해 집니다. 의심을 선택하면 회의론자가 됩니다. 믿음을 선택하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지렁이가 아닙니다. 벌레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열국을 다 부셔버리는 타작 기계처럼 될 것입니다. 일어나십시오. 여러분의 모습, 여러분의 인생, 여러분의 청사진을 바꾸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회복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희망을 갖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직장은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변할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사야를 통해서 주셨던 이 격려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 마음에 살아남아 잔잔한 파도가 되듯이

내 영혼을 뒤덮고 세상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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