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번호 11번!”이라는 호명과 함께 큰 환호성이 넓은 KBS 공개홀을 마구 뒤흔들었습니다.
48명의 합창단원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하였습니다.
단원들의 평균 나이는 63세, 지휘자 가수 김태원의 지휘 경험은 전무,
하지만 피나는 3개월여의 연습 끝에 KBS 합창대회 “더 하모니”에서 은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9월 25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눈물과 감동은 그저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노인들이 모여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김태원을 포함한 단원들은,
‘의미 있는 마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모였습니다.
그 시작이 제대로 꽃을 피우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60여 년 동안 굳어졌던
자신을 버리는 일이었고, 한 목표를 위하여 마음을 합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는 동안 꿈이 되살아나고 자신감이 더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고, 단원들에게는 하나가 되는 기쁨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단원들이 체험했던 경험들은 그 팀이 해체되고 난 후에도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열매로 결실될 것입니다.
그런데 48명의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새로운 삶을 살아 열매를 맺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그때의 그 감격을
“예전에 한때 내가 그랬었지.”라는 추억으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당부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구원을 이루라.”는 말에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기독교 교리에 밝은 사람일수록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는 것이지, 우리 인간들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각 종교마다 구원이 있습니다.
통상 구원은,
내가 신을 잘 섬겨 복을 받고 죽어서는 천국, 극락, 무릉도원과 같은 각 종교에서 말하는
유토피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과정에서 중요한 두 개념이 있습니다.
‘칭의’와 ‘성화’입니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란, 의롭다고 칭하는 것입니다.
칭의를 간단히 말하면, “너는 합격이다.”라는 뜻입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든지, 부처나 신선이 된다든지 하는 것이 모두 ‘칭의’입니다.
성화(聖化, sanctification)란 거룩해져 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섬기는 신의 뜻에 따라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아서 신이 요구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열심히 지키거나, 스님들이 벽면참선을 하거나, 일상의 삶에서 욕심을
죽이고 선행을 하는 것 모두 성화의 과정입니다.
칭의와 성화는 어느 종교에서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거나 오해하면 교회를 다니거나 절에 다니거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칭의와 성화의 순서입니다.
다른 모든 종교에서는 ‘성화’가 우선합니다.
각 종교에서 정해놓은 계율들을 열심히 지킵니다.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열심의 정도에 따라 “그만하면 됐다.”는
칭의가 이뤄집니다.
불교의 예를 들어봅시다.
선행과 정진을 열심히 하여 합격을 하면 윤회를 벗어나 부처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는 다시 인간으로 또는 벌레나 짐승으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칭의는 성화의 성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칭의’가 맨 앞에 옵니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 1장 28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행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잘하거나 못하거나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부모에게 여러 자녀들이 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잘한 놈만 자녀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다 자녀들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지옥에 가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임을 부인하고 각각 제 갈 길로 가는 사람들의 맨 마지막이 바로
지옥입니다.
어느 부모도 자기 자녀가 잘못된 길, 지옥으로 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차라리 내가 지옥으로 가면 갔지, 자녀들을 지옥으로 절대로 못 보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담시키셨도다.”(사 52:6)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아버지임을 잊는 것은, 여행을 보내놨더니 엉뚱한 것에 눈이
팔려 길을 잃고 나중에는 부모마저 잊어버리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태초부터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 남은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많은 교회들의 잘못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전도, 봉사, 헌금을 열심히 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새기고 새기십시오.
우리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고아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 바울의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라’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을 향한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자녀들 중에 누가 더 잘 되고 누가 덜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다 각자의 색깔로 잘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 부모도 그럴진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인 인간들 사이의 차이는 그토록 큰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누구에겐 복을 주고 누구에겐 저주를 내리셨을 리가 절대로 없습니다.
풀러 신학교 교수인 로버트 클린턴 박사의 말을 잘 들어보시면 왜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그의 책 “리더의 요건” (Making of a Leader)에서, 하나님께서 리더를 키우는
과정을 여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주권적 기초 단계’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출생 순서, 국적과 인종, 빈부 조건, 건강상태, 부모의 사랑과 관심 정도 등등.
이런 것들은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이지,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요인들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생은 이런 것들에 의해서 좌우됩니다.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나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야, 우리 부모는 별로 좋지 않았어,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머리가 좋지 않았어.
이런 한탄을 하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 두 번째 단계로 진입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내면생활 성장 단계’ 입니다.
영적 생활과 성품이 개발되는 시기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님을 진정한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시기입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시기입니다.
성령이 내게 임하면,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시작하고, 비로소 운명의 장난에 끌려다니는 것을 청산하게 됩니다.
교회와 목사의 할 일의 대부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 번째 단계로 진입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성령을 받는 것도 각자의 몫입니다.
성령 체험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있습니다.
성령 체험을 뜨겁고 화끈한 특별 신비 체험만을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수긍이 가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이 수긍이 가십니까?
그렇다면 이미 성령을 받으신 것입니다.
성령은, 가을비에 대지가 촉촉이 젖어들 듯, 조용히 오랜 시간을 가지고 내게 다가오십니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고 설교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성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남은 일,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세 번째 단계로 진입하시면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사역의 성숙 단계’ 입니다.
영적 리더십을 위하여 이런 저런 시도를 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사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에 의존하여 운영하는 방식을 청산하고, 예수님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사업에
적용해 봅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습니다. 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중입니다.
그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시행착오를 통하여 내 자신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아, 나는 이런 일에 재능이 있구나. 아, 내 단점은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자신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그저 돈만 쫓아다닙니다.
겉모습만 포장하기에 급급하다가 인생 끝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사역의 성공보다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가, 내 자신을 알게 되는 단계입니다.
네 번째 단계는 ‘삶의 성숙 단계’ 입니다.
자신의 장점에 주력하면서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역사하셨다면, 이제 ‘그 사람을 통하여’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차분한 사람은 차분한 대로, 적극적인 사람은 적극적인 대로 하나님께서 그 천성과 장점을
사용하시면서 일을 진행시켜 나갑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융합 단계’ 입니다.
하나님께서 키워주신 역량을 최고로, 제대로 발휘하는 단계입니다.
가장 활발하게 일하며, 인생이 꽃피는 시기입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리더들 중에는 인생 후반이 되어서야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노년에 비로소 영국 수상이 되었는데,
이것은 최고의 악한 히틀러에 맞설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을 갖추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입니다.
역사상 최고의 군인으로 존경받는 조지 마셜 장군은 59세에 비로소 장군으로 승진했으며,
전후 유럽을 부흥시키고, 그에게 노벨 평화상을 안겨준 마셜 플랜은 67세 때 내놓은 계획이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축하 단계’ 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또 자신을 통하여 이루신 일을 축하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는 인생의 마무리 시기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단계에 와 계십니까? 스스로 점검하셔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단계,
태어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과 사람들에게 휘둘리면서 끓탕하고 원망하거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것을 제 것인 양 뻐기며 누리며 탕진하다가 끝이 납니다.
또 하나는, 절대로 늦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모세는 80세에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냈습니다.
또한 이 여섯 단계를 잘 숙지하셔야, 나도 살고 다른 사람들을 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규웅 씨는 무기수입니다.
그는 군복무 중이던 1988년 1월 자신을 자제하지 못하고 그만 끔직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내무반에서 총을 쏴 3명의 동료의 목숨을 숨지게 하고 말았습니다.
사소한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교도소의 문제아였습니다.
살인자라는 자책감이 스스로를 자포자기 상태로 몰아갔고, 동료들과의 잦은 싸움으로
독방신세를 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8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규웅 씨의 뒤틀린 마음이 돌아선 것은 어머니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교회와 집을 오가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그는 교도소 내의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고, 그의 마음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면서 소망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공부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독학으로 영어영문학 학사 학위를 얻었고, 여러 개의 자격증도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범수에게 주어지는 1주일 동안의 휴가를 받게 되었고 13년 7개월 만에 세상에
나와, 건국대 응용생물학과 편입 시험을 쳤습니다.
그가 소망하는 것은 언젠가 의사가 되어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내 욕심과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모두 전도하고 선교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재능을 찾고 살려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성실히 열심히 정직하게, 예수님의 방법대로
행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할 때,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에서도, 하나님의 흠이 없는 자녀답게 됩니다.
그리고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빛을 발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자녀들이 세상에서 제 몫을 다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빛이 될 때 부모들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라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전제란,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의 피를 부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성도들이 제 몫을 다하며 행복하게 의미 있게 산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하나님의 가장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마음에 ‘쏘옥’ 드는 자랑스런 자녀로 살아 최고의 삶으로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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