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 (마태복음12:1-8)

새벽지기1 2017. 7. 11. 07:3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12:6)

당시 유대 사람들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크게 생각한 것이 셋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전, 또 하나는 안식일, 그리고 율법, 사실 이 세 가지는 다 위대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올시다. 여기에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단이 있고, 성소가 있고, 지성소가 있고, 본래 하나님의 법 궤까지 하나님의 성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 이후로부터 여러 백년 동안 성전이야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어 내려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들이 멀리 바벨론에 포로로 갔다 돌아온 후에도 제일 먼저 재건한 것이 성전이요, 애 헤롯이 정권을 얻은 이수에 유대 사람들의 인심을 사기 위해서 제일 먼저 착수한 사업이 이 성전을 신축한 일입니다. 성전은 사실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보다 더 크시다 는 것입니다. 성전은 한 상징이올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실체입니다. 선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어서 하나님께 속하는 점이올시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계셔서 삼위일체의 한 분이요, 하나님의 거룩하신 아들입니다. 성전도 크지마는 그리스도는 더 큽니다.
안식일도 역시 그렇습니다. 안식일은 심히 중한 규례(規例) 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축복을 받고,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신앙 생활이 유지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역시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일보다 더 크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안식일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뜻대로 지켜야 하고 단순히 노는 것으로만 지키지 말고 하나님과 인류를 봉사하는 것으로 지켜야 될 것입니다.


율법은 더욱 그렇습니다. 율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주셨고 이 율법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천여 년 동안을 살아왔고 이 율법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고 믿는 사람들의 생활 규범이 그 속에 또한 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그리스도는 율법보다 더 크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율법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내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은 지상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장 40-42절에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요나 보다 더 크신 이가 여기 있느니라.』요나 나 어떤 선지자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는 크십니다. 세례 요한도 그의 신 들매 풀기를 감당하지 못할 것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이가 여기 계십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큰 영광으로 갖은 영화를 다 누렸다고 하지마는 솔로몬보다 그리스도는 더 크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지상의 주이십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이 큰 것들과 지극히 큰이를 분별할 줄 아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입니다. 그 때에 바리새인들은 이 점을 분별할 줄을 몰랐습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것을 분명히 분별할 줄을 알아야 우리의 신앙 생활을 바로 하여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오늘날 생각해 보면 여러 교파로 갈려 있습니다. 이 교파들이 다 중요합니다.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성결교회나, 루터교회나, 침례교회나, 이 교파들이 다 중요하고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그리스도가 큰 이 모든 교파보다 더 크신 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교파를 위하여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교파는 다 각각 신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웨스트민스터 신조, 감리교는 알메니안 신조, 그 밖에 다른 교파는 또 그들의 여러 가지 조금씩 다른 신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신조를 다 귀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이 모든 신조보다도 더 크십니다. 이 모든 신조는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결정밖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교파에 여러 가지 전통이 있습니다. 장로교는 장로교의 전통, 루터 교는 루터 교의 전통 등, 이 모든 전통을 다 귀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또한 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그리스도는 이 모든 전통보다 더 크십니다.
여러 가지 신학 사조가 있습니다. 칼빈 신학, 루터 신학, 자유 신학, 보수 신학, 요사이 신정통 신학 등, 이 모든 신학은 다 중합니다. 우리 교회에 신학이 부흥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이 어떤 신학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더 크시다 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가 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야말로 얼마나 위대한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 성경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귀하고 큰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성경보다도 더 크십니다. 성경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기록된 데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신앙의 중심은 언제든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석가의 교훈을 믿고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회회교는 마호멧의 교훈을 믿고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유교는 공자나 맹자의 교훈을 믿고, 그대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교훈을 믿지마는, 그리스도의 교훈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자신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신조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신학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럼으로써 이 모든 것들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인도하는데 한 방편이 되는 것이고 우리 신앙의 절대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 이 요한 복음을 다 쓴 후에 20장 마지막 절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이렇게 요한 복음을 기록한 것은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이 책을 통해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또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이 처음 전파될 때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도신경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경도 없었습니다. 다만『주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이렇게 전도한 것뿐입니다.


주님 자신이 이 진리를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아니하면 아버지에게로 올 사람이 없으리라.』그리스도 자신이 길입니다. 하늘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진리입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입니다.『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자기 자신이 곧 생명의 양식이며 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 사람이라야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주님 자신이 생명수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내가 세상의 빛이로다.』그리스도 자신이 빛입니다.
교훈만이 빛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빛입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온 것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니라.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그리스도 자신이 포도나무입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으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 있을 곳을 가서 예배하리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영접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분부하여 명한 것을 그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그리스도 자신이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신앙의 대상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꼭 그리스도만을 중심 하여야만 됩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 여러 사도들이 어떻게 신앙으로 응답하였는가 들어보세요. 베드로가 하는 말이『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주의 영생의 말씀이 주께 계시매 우리가 뉘께로 가리이까』도마가 대답하여 말하기를『나의 주시면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도마가 친히 손으로 주님의 옆구리를 만져보고 예수의 상한 손을 만져 본 후에 예수의 부활하신 것을 확실히 믿게 될 때에 이와 같이 고백했습니다.『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사도 바울은 그의 여러 편지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자기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혓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나니라.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능력 주시는 자는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나의 의뢰하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것을 확신하노라.』사도 요한 이 하는 말이『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나니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나니라.』


우리의 신앙이 어떠합니까? 우리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그리스도를 믿고, 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이 그리스도를 순종하고, 이 그리스도와 같이 살며, 이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이 그리스도 교 신앙 생활입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이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자연히 곁길에 나갈 염려가 없습니다. 무슨 이상한 것이 있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주의나 사상이 나타난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무슨 이상한 이야기를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이상한 의복을 입고 다닌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꼭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에게는 곁길로 갈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 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 문명하다는 미국 같은 나라에도 어떤 사람이 예수님 입던 그 의복 비슷이 만들어 입고 다녔습니다. 수염을 깎더라도 그림에 나타난 예수님 수염 모양으로 깎고 머리도 그 비슷한 모양으로 깎고 돌아다니며 자기가 메시야 라고 선전을 하며 다니니까 참 메시야가 왔다고 여자와 남자들 가운데서도 따라 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제자들이라 하는 몇 사람을 정해서 제자들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는 지혜와 지식과 진리와 생명의 근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말은 대단히 좋습니다. 얼마쯤 따라다니다 보니까 이 사람이 공수표도 더러 써냈습니다. 더욱이 남녀 관계가 깨끗하지 못한 것이 사실로 나중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제자 가운데 두 사람이 분해서 이렇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놈은 처벌해 달라고 검사국에 고소를 했지마는 검사국에서 미처 처리를 하지 아니하니까 이 사람들이 참지 못해서 마지막에 다이너마이트를 48개나 가지고 가서 그 사람이 있는 데를 폭발시켜서 메시야라 하는 사람과 따라다닌 사람 할 것 없이 모조리 폭사해 죽였다는 잡지의 기사였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우리가 중심해서 살면 곁길로 나갈 염려가 없습니다. 또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면 믿는 사람들끼리 더욱 가까워 질 것이요 더욱 화평하게 지낼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오면 올수록 믿는 사람들끼리 화평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신앙 생활 뿐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중심을 잃지 아니하여야 됩니다. 공부하는 데도 중심을 잃지 아니하여야 됩니다. 오래지 않아서 입학 기가 오겠지만 해마다 입학 기에 신문지상에 나는 것은 어떤 학생은 시험을 치다 낙제를 해서 음독을 했다. 어떤 학생은 시험에 합격했는데 등록할 돈이 없어서 등록금을 내려고 강도질을 했다고 합니다. 살려고 공부합니까, 공부하려고 삽니까? 무엇 하려고 공부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중심이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 염려하는 경제를 가만히 볼지라도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중심을 잃지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당이 큽니까, 나라가 큽니까? 정당이 국가를 위해서 있습니까. 국가가 정당을 위해서 있습니까? 중심을 바로 찾고 정치를 해야 나라가 바로 잡힐 겁니다. 속담에 쥐잡으려 하다가 독 깨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아가다가는 우리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는지 염려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범사에 중심을 잃지 아니하여야만 됩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있어서 더욱이 중심 되는 그리스도를 언제든지 바라보고 언제든지 그리스도만을 향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제가 들으니 저 알프스 산 올라가는 어떤 길에는 조금 올라가면 어떤 선지자의 석상이 있다고 합니다. 혹 아모스, 혹 이사야, 혹은 예레미야 그런데 석상마다 어디를 가리키는고 하니 위에를 가리킵니다. 조금 올라가면 또한 다른 선지자의 석상이 있는데 그 선지자도 역시 위를 가리킵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올라가면 또 다른 선지자의 석상이 있는데 그 선지자도 역시 손가락을 위로 가리킵니다. 그래서 여러 선지자의 지도하는 그 길대로 끝까지 올라가면, 마지막에, 하나 높은 봉우리가 하나 있는데 그 높은 봉우리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석상이 있다고 합니다.


과거의 모든 선지자의 손가락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모든 천군 천사가 어린양을 향해서 숭배하고 찬송을 드리는 것이올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신앙의 목표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서 금년에 신앙 생활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큰 축복을 받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1959년 1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