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마음의 동산 (요한계시록 22:1-7)

새벽지기1 2017. 6. 13. 07:0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추심이라』(계22:5)

하나님께서 본래 인생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 동산이라는 아름다운 동산을 만드시고, 거기에 살게 하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와, 생명나무와, 또는 선악을 가릴 수 있는 나무도 있다고 기록된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또한 물 근원이 있어서 온 동산을 적시고, 그 근원이 강이 되어서 네 갈래로 나누어져서 사방으로 흘러갔다고 기록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첫 거주지가 아름다운 동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대로 인생들은 죄로 말미암아 이 동산에서 쫓겨나서, 밀론의 유명한 시로 묘사한 것과 같이, 낙원을 잃는 비극을 연출하게 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인생들은 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우리가 성경의 제일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제일 마지막 장인 22장 이하를 읽어 볼 때에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영원히 있을 하나님의 나라를 역시 아름다운 동산으로 묘사한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곳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또 저기 수정 같은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여기에 잃었던 낙원을 다시 찾는 복낙원(福樂園)의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으로 하여금 잃은 동산을 이윽고 다시 찾게 만드는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가 내세에 이 동산을 회복하기 전이라도,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도 영적 의미에서 이 도안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8장 11절을 읽으면『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대인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항상 인도하실 때에 우리로 하여금 물댄 동산같이 만들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같이 만드시겠다고 언약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아 31장 12절을 보면『그 심령은 물 대인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했습니다. 이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현재에도 영적 의미에서 우리 심령 속에 에덴 동산을 회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이 어떠합니까? 과연 우리의 심령이 물댄 동산과 같습니까? 여호와의 동산인 에덴과 같습니까? 혹은 우리의 심령이 황폐한 거친 들 같습니까?


오늘 우리 마음의 동산을 살피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동산을 생각하게 될 때에는 먼저 동산은 그를 두른 울타리가 있는 것이 기억됩니다. 동산은 그저 빈들이 아닙니다. 동산은 단지 꽃밭도 아닙니다. 동산은 일정한 목적 아래에서 다른 곳과 분리되는 경계가 있고, 울타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비원을 가보면 이 진리를 잘 알게 되실 것입니다. 이 울타리가 있어야, 이 경계가 있어야 동산을 바로 지킬 수가 있고, 소나 나귀나 또는 난잡한 사람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의 동산에도 울타리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분리하는 경계선이 필요합니다. 사상이라도 다 우리의 마음동산에 들어올 것이 못됩니다. 사상도 우리의 마음 동산에 들어올 것이 있고 못 들어올 것이 있는 것입니다. 애정의 꽃도 우리의 동산에 심을 것이 있고, 뽑을 수밖에 없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도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동산에도 이 성별의 울타리가 필요한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성별의 원리에 대해서 이와 같이 직접 교훈 하십니다. 너희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니,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했습니다. 마음동산에도 성별의 울타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동산을 생각할 때에 동산은 아름다운 곳이요, 조화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자연히 연상하게 됩니다. 풀도 아름다운 풀을 심습니다. 꽃도 아름다운 꽃을 심습니다. 돌이나 바위도 아름다운 돌과 바위를 갔다 놓습니다. 풀이나 나무나 꽃이나 돌이 다 조화가 되게 알맞게 적당하게 동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동산이 아름답지 못하면 동산이 아닙니다. 동산에 조화가 없으면 동산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의 동산도 아름다워야 되고, 마음의 동산에도 조화 곧 평화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는 배우라』고 하셨고, 또한『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온유한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강퍅한 마음은 추합니다. 맑은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흐린 마음은 더럽습니다. 정직한 심령은 아름답습니다. 거짓된 마음은 추한 것입니다. 충성된 심령은 아름답습니다. 간사한 혀는 가증한 것입니다. 인자한 마음은 아름답습니다. 잔인한 마음은 추한 것입니다.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은 꽃향기가 풍기는 것입니다. 미움으로 가득 찬 가슴은 추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동산이 아름답고 조화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흔히 말하는 가운데『비단결 같은 마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흑인이 거울을 앞에 놓고 자기의 얼굴을 보고 화장을 하다가 암만 화장을 해도 새까만 얼굴을 희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흑인이 결심하기를『나는 내 얼굴은 비록 검으나 내 마음은 희게 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외모로 단장을 중지하고 마음의 단장을 해서 마음을 아름답게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보면 외모를 아름답게 하는 미장원은 도처에 생깁니다. 그러나 신상 더 귀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고 추함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갖은 추한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회에 일어나는 현상은 먼저 마음의 더러운 가운데서 경험하고 계획되어서 추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마음이 아름다운 청년, 마음이 아름다운 여자, 마음이 고운 어린애들이 그립습니다. 동산은 아름다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와야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동산을 생각할 때에는 자연히 장성이 연상됩니다. 동산 속에는 모든 것이 자라납니다. 풀이 자라나고, 나무가 자라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동산을 만드는데 한 가지 즐거움은, 오늘 아침에 나가면 꽃이 둘, 셋, 넷 점점 많이 피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산에는 모든 것이 장성해서 매일 새로워지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동산에도 이렇게 장성이었어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동산에도 새로움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마음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동산에도 열매가 있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모든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에게 편지 할 때에,『너희들은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는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는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는 또한 인내를 더하고, 인내 위에 경건(敬虔)을 더하고, 경건 위에 형제우애를 더하고, 형제우애 위에 사랑을 더하라.』이와 같이 믿음으로 시작하여 점점 장성하라고 우리에게 교훈 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에『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이와 같이 권면 했습니다. 조금 내려가서 다시 계속하여 하시는 말씀이『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시니 곧 그리스도니라』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자라서 머리가 되는 그리스도에게 미치기까지 장성하라고 권면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넷째로 동산에 제일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여기에도『너의 심령이 물 대인 동산과 같겠다』고 말했습니다. 물이 없이는 동산이 되지를 못합니다. 지난번 성지를 순례할 때에 솔로몬의 동산이라는 곳을 가서 보니 거기는 좋은 샘이 있어서 큰 호수를 이루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렇게 매 마른 성지에서, 그 곳에는 아름다운 옛날 솔로몬의 동산이 건설되었던 것입니다. 로마 교외에 유명한 옛날에 건설된 동산이 있습니다. 그 곳에 가면 산비탈에 아름다운 나무와 꽃을 심고 층층이 내려오면서 동산을 건설했는데 그 동산의 특색은 분수인데, 이 물이 뽑는 분수가 열, 스물, 서른……셀 수 없으리만큼 사방에서 물을 공중에 솟습니다. 그리해서 햇빛이 그 분수를 비추어서 사방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생기는 참 세상,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동산을 구경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동산에는 물이 필요합니다. 물이 없이 풀이 자랄 수 없고 나무가 큰 수가 없고, 꽃이 필수가 없습니다. 물은 동산의 근원이라고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마음의 동산에도 이 물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물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토록 솟나나는 이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생생하도록 솟아나는 이 샘물이 있습니까? 그러면 그의 심령은 문자 그대로 물 대인 동산이올시다.
주님께서 주시는 성신의 생명수,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수, 주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 주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 주님께서 주시는 그 만족, 주님께서 주시는 그 화평이 우리 마음 가운데 언제나 충만합니까? 그러면 우리의 심령이야말로 물 대인 동산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하라 사막과 같이 쓸쓸한 심령이라도 매 마른 심령이라도 이 광야나 사막을 변해서 아름다운 동산, 물 대인 동산을 만들기 위해서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은혜를 받을 때에 이와 같은 마음의 동산을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한 가지 경계의 말씀을 더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산에 제일 경계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동산에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시거니와 에덴 동산이 그렇게 아름다웠지마는 뱀이 들어온 까닭에 그만 파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동산에도 경계할 것이 있습니다. 독사와 같은 악한 마귀의 유혹, 마귀의 시험이나, 또한 그와 같은 악한 마귀의 생각이 우리 마음의 동산에 깃 들지 못하도록 하여야 되겠고, 비록 들어왔다고 할지라도 내어쫓아서 깃 들지 못하도록 우리가 경계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마음의 동산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산에는 다 주인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의 동산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아가서 5장 1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내 동산에 오도다.』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동산이올시다. 우리 믿는 사람의 마음의 동산은 그리스도에게 속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보혈로 값 주시고 이 동산을 사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마음의 동산에는 언제든지 주님께서 계셔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보전해서 언제든지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동산에 머물도록 하여야 될 것입니다. 그 심령이 물 대인 동산 같고, 모든 근심이 없으리로다.
누구든지 주님 앞에 나와서 온 과거를 청산하고 온전히 죄를 뉘우쳐 고치고, 주님을 우리가운데 영접하면 사막 같은 우리의 마음, 쓸쓸한 광야와 같은 우리의 마음이 변해서 하나님의 동산, 물 대인 동산, 에덴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께서 이 예배당 문을 들어오실 때에는 어떠한 마음의 동산을 가지고 오셨던지 나가실 때에는 물 대인 동산과 같은, 하나님의 동산과 같은, 이와 같은 풍부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돌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958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