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의인을 대망 함 (창세기18:22-33)

새벽지기1 2017. 6. 19. 06:33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10인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10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18:32)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타나셔서 두 가지 비밀을 하나님의 친구라고 불리 우는 아브라함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는 아들 이삭을 장차 주시겠다고 하는 언약의 말씀이요, 또 하나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킬 수밖에 없다고 하는 말을 들은 아브라함이, 소돔 성을 향하여 가시는 여호와 옆에 서서, 간절히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한 말씀이 창세기 18장 하반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기사를 읽을 때에 아브라함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고, 겸손히 기도하였고, 계속적으로 기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도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사람인 것을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이와 같이 간절히 기도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 줄 생각합니다. 여기 기도에 그 말은 없지마는 제일 먼저 생각되는 것은 소돔 성에는 자기의 조카 롯이 당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거니와, 본래 벧엘 지방에 아브라함과 롯이 살았습니다. 점점 가산이 넉넉하여짐에 따라서 가축이 많아지고 또 목자들이 불화 하는 모양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높은 산에 올라서 사방을 바라보면서『이 지경이 넓지 아니하냐? 네가 동으로 가면 나는 서로 가겠고, 네가 서로 가면 나는 동으로 가겠으니, 우리가 피차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친족간이 불화 하는 것을 면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래서 롯은 그 때에 동편을 향해서 요단 들을 바라보니 풀이 푸르렀고 땅이 윤택함으로 그곳을 택하게 되었는데, 그 요단 들에는 소돔과 고모라 성과 그 밖에 세 성이 즐비하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소돔에는 자기의 조카 롯이 살게 되었습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이와 같이 간절히 기도한 그 배후에는 아브라함의 도덕적 의식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돔 성에도 상당한 의인의 수가 있을 터인데 이 의인들을 악인과 같이 멸망시키는 것이 어찌 공의의 주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인가? 의인들을 기억하고 간절히 기도한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만도 아닌 줄 압니다. 아브라함은 물론 죄를 미워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마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어서 아무리 죄를 지었지마는 그들이 멸망을 당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마음속에 일어나는 긍휼함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어떻게 구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 가운데서 간절히 기도한 줄 생각합니다.
기도의 내용은 여러분께서 이미 들으셨습니다.『의인과 악인을 같이 대우하고 균등히 하는 것이 어찌 합당하겠습니까? 아무리 소돔과 고모라 가 악하다고 하지마는 만일 그 가운데 의인 50명이 있다고 하면, 의인 50명을 악인과 같이 멸망하게 하시는 것이 어찌 여호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까? 만유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어찌 공의를 행하시지 아니하시겠습니까?』이와 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에 대답하는 말씀이『만일 소돔 성에 의인 50명이 있다고 하면, 그들로 말미암아 온 지경을 용서하여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용서할 뜻은 계시지만 그 성에 의인 50명이 없는 사실이 또한 분명히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좀 더 가까이 나아가며 다시 아뢰었습니다.
『저는 티 끝과 죄에 불과한 더러운 죄인이지마는 다시 한번 아룁니다. 만일 50명 가운데 5五인이 부족하다 할 것 같으면 다섯 사람이 부족한 것으로 말미암아 온 지경을 멸망시키겠습니까?』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대답하시는 말씀이『만일 소돔에 의인 40五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을 위하여 온 성을 용서하여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보니까 45인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시 송구한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아뢰었습니다.『만일 45五인 가운데 5인이 부족해서 40인만 있다고 하면, 45인 중에 5인이 부족하다고 해서 온 성을 멸망시키겠습니까?』다시 여호와 하나님이 대답하는 말씀이『40인만 있을지라도 내가 그 성을 용서하리라』하셨습니다.
40인도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35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만일 20명만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인도 되지 못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한번 더 구했습니다.『만일 소돔 성에 의인 열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성을 어떻게 하오리까?』여호와께서 말하셨습니다.『만일 네 말대로 의인 열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 열 사람으로 인해서 그 온 성을 용서하여 주리라.』


그 후에는 아브라함이 감히 입을 더 열 수가 없어서 자기의 장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여호와 하나님은 소돔 성을 향해서 나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아브라함은 높은 산에 올라서서 소돔과 고모라 성이 있는 동방의 들을 향해서 보매 온 성에서 연기가 옹기점 같이 올라왔습니다. 결국 소동 성은 의인 열 사람이 부족해서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제가 몇 달 전에 이탈리아 나폴리에 갔다가 거기서 가까운 폼페이 성의 폐허를 가서 구경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 폼페이 성은 일찍이 주전 3, 2, 1세기, 주후 1세기까지 번영하던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세기 말엽에 갑자기 그 옆에 있던 비스비어스 화산이 폭발되면서 말할 수 없이 많은 화산 용암과 재가 하루아침에 20자 이상 덮임으로 몇 사람 도망해 나온 이외에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할 것 없이 전부 재로 변해 버린 비참한 도시입니다. 너무 깊이 묻혀 있었기 때문에 발굴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마는 몇십 년 전에 비로소 그곳을 발굴했습니다. 지금은 근 2천년 동안이나 땅 속에 있던 그 폐허가 다시 나타나서 누구나 옛날 폼페이의 시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가는 비록 좁지마는 돌로 깔았고 물론 위에 있던 것도 다 없어졌지마는 돌로 쌓았던 담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때에 사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 당시 얼마나 술을 많이 먹었다고 하는 것도 술집이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고 하는 것도 아직 남아 있는 벽화와 그림들을 보고 그 사람들이 남겨준 조각을 보아서 능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주피터의 부러진 목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피터의 신당에 올라가는 돌로 쌓은 계단이 반반하게 닳은 것을 보아서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당대에는 호화스러웠지만 지금은 황폐된 그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마음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 성에도 결국은 의인 열 사람이 없었던가, 그런 생각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국가나 어떤 민족이나 혹은 어떤 문화의 강약 혹은 우열 혹은 흥망성쇠를 물리적 조건에 의지해서 수나 양의 세계에서 판단하기 쉽습니다. 어떠한 나라가 강한 나라이냐? 면적이 얼마나 넓으냐? 인구가 얼마나 많으냐? 그 나라에 공장이 얼마나 많으냐? 그 나라에 비행기가 얼마나 많으냐? 군함이 얼마나 많으냐? 오늘날로 말하면 원자탄이나 유도탄이 얼마나 많으냐? 흔히 이런 것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아니해야 될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민족이나 국가나 문화의 흥망성쇠의 요소가 되는 것은 정신적 요소란 것입니다. 그 나라, 그 민족의 민족적 정기가 어떠하냐? 민족적 사기가 어떠하냐? 그 민족의 도덕적 분위기와 수준이 어떠하냐? 그 민족이 얼마나 깨끗이 살며, 얼마나 옳게 살며, 그 나라와 그 민족에게 얼마나 공의가 행하여지느냐? 다시 말해서 성경의 말씀대로 말하면,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힘이 그 민족과 그 국가 안에 의인이 얼마나 잇느냐? 요컨대 그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의 흥망성쇠를 마지막으로 결론지어 버린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의인 50이 있을지라도 의인 50을 위해서 온 지경을 용서하여 주리라.』
유명한 선지자 엘리사가 나이 많아서 임종할 때에,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요아스 왕이 병석에 누운 엘리사 옆에 꿇어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외쳤습니다.『아버지시여, 아버지시여, 당신은 우리 나라의 마병(馬兵)과 병거(兵車)가 되시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께서 가시면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눈물과 같이 탄식했습니다. 말 타고 전장에 나아가거나 병거를 타고 전장에 나간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에 있어서 엘리사라고 하는 의인의 존재는 그만큼 그 나라를 힘있게 만든 것입니다. 감히 원수들이 경히 볼 수 없으리 만큼 힘을 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 말씀에『의인은 사자보다 강하니라』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의인은 사자보다 강합니다. 무엇보다 강합니다. 의인이 있어야 나라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이유가 있습니다. 의인이 있으면 반드시 그 감화력이 사회에 미치는 것입니다. 의인에게는 의인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향기가 사회에 퍼지게 됩니다. 이 사회를 망하게 하는 것은 결국 부패하게 하는 세력입니다. 그 부패하게 하는 세력과 싸워서 새롭게 하는 힘은 의인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프랑스 나라에서는 과격한 정치 파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신문을 통해서 압니다. 18세기에는 프랑스 대 혁명이라는 큰 혁명이 일어나서, 왕을 잡아 단두대의 이슬로 만들고, 귀족들을 잡아죽이고, 서로 민족끼리 싸워서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고, 그 후에야 프랑스 민족이 자유의 정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18세기에 영국에서는 피 흘림이 없이, 비극이 없이, 재산의 희생이 없이 옛 체제에서 변해서 좀 더 새로운 자유와 평화가 있는 나라로 변천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역사가들이 하는 말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할 수 있지마는, 무엇보다도 더 큰 힘은 영국에는 요한 웨슬레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에도 당시에 부패한 것이 많았습니다. 옛날로부터 내려오는 것 중 숙청할 것이 많았습니다. 평민 가운데 불평이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고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한 웨슬레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사방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평민이 회개하고, 귀족이 회개하고, 국회의원도 회개하고, 공장의 직공도 회개하고, 각계 각층 사람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피 흘리는 혁명의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자연히 국회가 아름다워졌습니다. 정부가 좀 더 깨끗해졌습니다. 공장도 더 일할만하게 되었습니다. 사회 정의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각 방면으로 사회의 모든 형편이 아름다워지고, 자연히 그리스도의 이상과 사랑에 의지해서 변천된 새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19세기에 와서 전 세계의 최강의 나라로 발전되었습니다.


국가의 흥망과 성쇠도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우리 인간이 죽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병이 나서 죽습니다. 병은 왜 납니까? 흔히 하는 대로 말하면 우리 육체 속에 악한 균이 들어옵니다. 균이 들어와서 우리의 육체를 썩힙니다. 그러면 우리 육체 속에 있는 백혈구가 총 동원이 됩니다. 그래서 열이 오릅니다. 우리 원수인 썩히는 세력이 들어와서 우리의 피와 살을 썩힙니다. 이 균들을 잡아죽이려는 백혈구와 여러 균 사이에 전쟁이 몸 속에 일어납니다.
한편에서는 육신을 자꾸 썩히려고 합니다. 다른 한 편에 있는 백혈구는 자꾸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이 둘이 싸우다가 마지막에 어느 편이 이기느냐? 균이 이기면 마지막에는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기에 거의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 옆에 가 앉으면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 편이 이기면 죽습니다. 새롭게 하는 백혈구의 편이 이기면 죽지 않고 삽니다.


우리 사회도 민족도 그와 비슷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우리 민족 사이에도 이 두 가지 세력이 싸웁니다. 하나는 썩히려고 하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하나는 새롭게 하려고 하는 세력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는 말씀이「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입니다. 소금은 무엇 하는데 씁니까? 썩는 것을 방지하고 새롭게 하는데 씁니다.
여기 생선이 있는데 생선을 그냥 두면 썩히는 미균(黴菌) 때문에 못 견디어 썩어집니다. 그러나 소금을 많이 처서 소금의 세력이 강하면 균을 죽여서 썩지 않게 방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이 썩히는 세력이 있는 우리 사회에 둔 것은 썩어져 가는 세력을 막기 위해서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해방 이후에 더욱이 6·25이후에 우방 나라에서 우리 한국의 재건을 위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도와줍니다.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각 방면으로 도와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든지 기억하여야 될 것은 외국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지마는 우리가 이 내부에서 썩어지는 세력을 우리 자신이 막지 못하면, 외국의 도움만 가지고는 한국이 재건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썩어지는 것을 막는 세력이 되는 의인들이 많이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국회에도 좀 더 올바른 사람, 관청에도 좀 더 올바른 사람, 각 방면에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 나라를 재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의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잇느냐? 의인에 대한 성서적 관념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서적 견지에서, 의인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올시다. 둘째로,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도덕적으로 양심대로 하는 사람이올시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셋째로, 하나님 앞에서까지 옳은 사람입니다. 이런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이 견지에서 볼 때에 사실 이 세상에는 의인이 없나니, 곧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절대의 견지에서 보면 의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의인이 없는 세상에 의인을 만들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을 읽습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잇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예수를 믿고 십자가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과거에 그릇된 길을 걸었지마는 옳은 길로 돌려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의인을 만들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써 의인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시편 제 1편을 보십시오. 복 있는 자의 가는 길과 악한 자의 가는 길, 두 길이 있습니다. 의의 길과 불의의 길, 두 길이 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길을 확실히 택하였는가? 어떤 이들은 오래 예배당에 다니지마는 학습도 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례도 못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의인의 길을 가기는 원하지마는 확실히 작정이 없는 사람들이올시다.
어떻게 생각하면 온 세계가 소돔과 고모라의 전날 밤이 아닌가. 폼페이의 전날 잠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이 세계를 구원할 요소는 오직 죄를 회개하고 의로운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지는 그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의인을 대망하고, 우리 사회가 의인을 대망하고, 우리 민족과 국가가 의인을 대망하고, 온 세계가 의인을 대망 합니다.
(1958년 10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