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로마서1:16-25)

새벽지기1 2017. 6. 9. 07:06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오늘아침 이 말씀을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 시간은 다 같이 사도신경을 외면서,『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이렇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제一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더욱이 새로이 믿을 때에는 이따금 어떻게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알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생각이 혹 우리 마음 가운데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그 신앙의 기초가 어디 있는가? 그 점을 생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미 읽은 이 말씀 가운데서 우리가 들은 대로『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사람들이올시다) 사람들 속에 보여졌느니라. 하는 그 뜻인 줄 압니다.
그 다음에 계속해서 기록한『말씀이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그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느니라.』이와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가 있겠느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 속에 자기가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또는 친히 그 손으로 지으신 만물을 통해서 분명히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 주신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이 점을 생각할 때에 편의상 먼저 어떻게 만물이, 이 대 자연계가, 혹은 우리가 사는 이 우주가, 하나님의 존재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가? 이런 점을 먼저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작년에 서서의 제네바를 여행할 때에 아름다운 제네바 호수 가에 좋은 공원이 있는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 공원 길 옆에다 아름다운 꽃을 심어서 시계와 같이 둥근 테두리를 하여 놓고, 또한 그 테두리 속에는 숫자를 1, 2, 3, 4…로 전부 꽃으로 심어서 숫자가 분명하게 나타나게 말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가운데 큰 분침과 작은 시침을 만들어서 그 분침과 시침이 꽃으로 만든 시계 위를 돌아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꽃으로 그와 같이 잘 심어 만들어 놓고는 그 속에다 시계의 기계를 묻은 모양입니다. 그렇게 해서 시계가 꼭 맞아 돌아가게 만든 그런 것을 구경했습니다. 시계의 나라로 유명한 서서이니 만큼 이런 것도 있을 법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제네바에 가서 그 꽃으로 만든 꽃시계를 구경하고 와서 자기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아! 참 서서(瑞西)에 가보니까 어떻게 좋은 나라인지 알 수가 없다고, 알프스 산이 아름다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가보면 제네바 호수 근방에는 시계가 땅 속에서 저절로 솟아 나왔는데 저 혼자 시계 분침과 시침이 돌아가며 일초도 틀림없다고…자, 이렇게 자기 친구들에게 구경한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하면, 여러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할 것 같습니까?
아마 요새 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대로 그 사람이 좀 돌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아니 시계가 어떻게 저절로 솟아나오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우주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 우주는 저 제네바의 꽃시계와 같이 정밀하게 시간을 지키는 기계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꼭 二十四시간에 한 번씩 스스로 돕니다. 二十六시간 걸릴 대 있습디까? 틀리는 것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일년에 三六五일을 허비해서 제 바퀴에 태양을 한 바퀴 돌아옵니다. 四00일 걸릴 때 더러 있습디까?
저녁마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아름다운 달을 우리 지구를 에워싸고 약 三十일만에 이 지구를 꼭 한 번씩 돌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고 음력을 만든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일년 동안 네 계절이 있어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틀림없이 꼭 찾아옵니다. 지금은 여름이 되어서 덥고, 아마 오래지 아니해서 장마가 또 올 모양입니다. 틀림없이 춘하추동 四계절이 때마다 꼭 돌아갑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정밀하게 조직된 우주가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절로 되었다고 할 것이면, 그 사람의 머리는 좀 돈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날의 소위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오늘날의 소위 사상가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무신론을 주장하고 유물론을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이 우주가 우연히 되었다고 하는 말밖에 다른 말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보면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서『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이와 같이 기록한 것입니다.
만물이 하나님의 존재와 그 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줍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옛날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얼마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무한히 넓은 우주입니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마일로는 측정할 수 없고 광년, 빛과 같이 빨리 가는 속도로 일년을 갈 수 있는 거리를 일 광년이라고 하는데, 몇 백 광년, 몇 천 광년, 몇만 광년으로 거리를 측정하게 되는 무한히 큰 우주입니다.
또 이 우주 가운데는 항성이니 유성이니 하는 모든 별들이 사람의 머리로는 셀 수도 없으리만큼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한 두 가지 똑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저 여려 백 광년밖에 있는 별이지만 그 별을 구성한 물질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물질과 그 원소는 같습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가 멀리 바라만 보는 달로 말할지라도 그 달을 구성한 물질은 이 지구를 구성한 물질과 꼭 같습니다.
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별도 그 별을 주장하는 자연의 법칙과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주장하는 자연의 법칙은 똑 같습니다. 같은 법칙 아래 운행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가 무한히 크고 거리가 무한히 멀지만 같은 원소로 구성되었고 같은 법칙 아래 운영되어서 질서가 있고 조직이 있고 일정한 법칙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이것으로 보아서 우주의 창조주는 무한하신 능력이 계시고 그 창조주도 한 분밖에 다른 분이 없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를 넓게 볼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화학이 발전되고 물리학이 발전되어서 물질을 분석할 줄 압니다. 분자로 분석하고 그것을 원자로 분석합니다.
요즈음 그 원자를 또 깨뜨려서 소위 핵을 분석합니다. 원자를 분석해보면 그 속에 핵이라고 하는 프로톤이 있습니다. 그 프로톤을 중심으로 하고 전자라고 하는 것이 우리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뱅뱅 돕니다. 이상합니다.
물질 속에도 태양계나 북극성 계와 같이 핵을 중심하고 도는 것이 있습니다. 전자 하나가 그 프로톤을 중심으로 하고 돌면 그게 수소가 된다고 합니다. 전자 둘이 돌게 되면 그게 헬리움 이라고 하는 떤 원소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물질을 지금까지 확실히 아는 것이 아흔 여덟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아흔 두 전자가 도는 질을 우리가 원자탄에 사용하는 우라늄이라고 하는 구 원소가 된다고 합니다.
지극히 적은 부분을 들여다볼지라도 이렇게 조직이 있고, 질서가 있고, 일정한 법칙에서 움직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춘하추동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지구상에 특별히 온대 지방이 사는 우리에게 이 제 계절이 있는 것은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때와 뜨거운 때와 서늘한 때와 추울 때 이렇게 네 계절이 바뀌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그 네 계절이 왜 바뀌는지 아시지요? 천문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면 다 압니다.
우리 지구가 태양을 싸고돌되 곳곳이 돌지 아니하고 二十三도 반인가 좀 기울어져서 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니까 어떤 때는 태양이 북반구에 가까워지고 어떤 때는 남반구에 갈 것 같으면 겨울이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기도 좋으려니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고 하니, 만일 지구가 二十三도 반만큼 기울어지지 않고 곳곳이 태양을 중심 해 돈다고 하면 태양 광선은 언제나 지구의 중심 되는 적도에만 비칠 것입니다. 언제나 적도 근방만 뜨거운 것입니다. 뜨거우면 물은 증발하니까, 이 적도 근방의 물은 전부 증발되어서 결국 사막만 남았을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고 적도에서 증발된 물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자연히 추운 곳으로 가게 되겠는데 남극과 북극이 될 것입니다. 거기 가면 추우니까 다시 얼어서 어름으로 되어서 여러 백만 년이 지나면 양극은 점점 커져가고 적도 근방은 적어질 겁니다. 마지막엔 지구가 장고처럼 될 것입니다.
지구가 우리 보기에는 돌이 있고 흙도 있어서 딴딴해 보이지만 지구의 표면에서 수 천 척만 내리 가면 물렁물렁한 용암이 지금도 있습니다. 이렇게 가운데가 점점 적어지면 둘로 끊어질 것입니다. 자, 그렇게 되면 윌 사람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이렇게 二十三도 반이 기울어져서 돌게 한 것도 하나님의 지혜요, 이렇게 해야 땅 위의 모든 생물이 편안히 살고 지구는 그대로 보존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서도 나타납니다.
지금도 달에 대해서 말했지만 달도 우리 지구와 큰 관계가 있습니다. 달로 말미암아 밀물과 썰물이 생깁니다. 이렇게 한 사리에는 보름달이 있고 물이 많이 들어옵니다. 밀물은 달을 따라다닙니다.
지금 달과 지구의 거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는데 언제 어느 나라에서 먼저 우주선을 만들어 가지고 달에 갈 수 있나를 경쟁하다시피 연구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거리는 우리 지구에서 二十四만 마일밖에 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그 거리는 인간적인 견지에서 보면 상당히 멉니다. 그러나 그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二十四만 마일밖에 있는 게 감사한 일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화성에도 달이 있는데 그 거리는 六천 마일밖에 안 됩니다. 만일 우리의 달도 지구와 가까이 六천마일 거리에서 돌아간다고 할 것이면 달의 인력이 너무 강해서 물을 너무 잡아 당겨서 달이 가까워지게 될 때에는 태평양 물이 몇천 척 올라갈 모양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고 할 것이면 하루에 두 번씩 이 지구는 분부 물에 잠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람이 지구에서 살 수 없겠습니다. 달과 이 지구의 거리도 꼭 알맞게 하나님께서 둔 것입니다.
태양도 그렇습니다. 태양은 그 표면만 해도 화씨 二천 二백도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지구와의 거리는 九천 三백만 마일입니다. 그게 감사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지구가 태양과 좀더 가까우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이 다 타 죽을 것입니다. 또 지구가 태양과 너무 멀리 있으면 너무 추워서 얼어죽을 지경이 될 것입니다.
태양과의 거리관계도 꼭 알맞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과학이라고 하는 메스를 통해서 이 우주를 연구해 보면 연구해 볼수록 조물주의 지혜, 조물주의 능력, 주물주의 사랑이 나타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손으로 만든 만물이 그를 나타낸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는『그를 알만한 것이 저, 속에 보인다…』그랬습니다. 사람의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고 조용히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 내 하루의 생활을 반성해 보면 우리 마음 가운데 무슨 생각이 납니까? 내가 어떤 것은 잘못했다는 생각이 납니다. 어떤 것은 바르게 했다는 생각도 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루를 살고 내가 하루를 반성해 볼 때에 어떤 것은 바르게 했다. 어떤 것은 잘못했다고 시비를 분간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을 양심이라고 합니다.
이 양심은 본래 아담 적부터 있은 것이 분명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에 날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나타나게 되니까 아담과 하와가 슬그머니 수풀 속으로 숨었다고 했습니다. 왜 숨었습니까? 무엇이 숨게 했습니까? 양심의 가책이 그들을 숨게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팔아먹었습니다. 二十 년이나 지나는 동안에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에 곡식을 구하려 갔다가 애굽 총리대신을 만나서 모든 사정을 자세히 묻는 가운데 심지어 무엇까지 묻는고 하니『네 형제들이 본래 몇이 있었느냐?』고까지 묻습니다.『그 가운데 몇 째 동생이 어떻게 되었느냐?』자세히 추궁할 때에, 그 사람들의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마음이 떨렸습니다. 왜 떨렸습니까? 양심의 가책을 듣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예수 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어떤 사람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데리고 와서,『이런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예수께서 얼른 대답하지 아니하시고 가만히 머리를 숙여서 생각하시다가 조용히 머리를 들고 하시는 말씀이『너희들 가운데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은 먼저 돌을 들어서 이 여자를 치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보니까 한 사람도 없이 슬며시 다 달아났다고 했습니다.
여자 하나만 남았습니다. 무엇이 그 사람들을 다 쫓아 보냈습니까? 양심의 가책이 쫓아 보냈습니다.
사람의 소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고 사람의 마음속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이 어디서 왔습니까?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 마음에 새긴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양심을 통해서 자기를 계시하시되 그 하나님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시는 양심의 하나님이시오 도덕적 주재자인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분입니다.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을 알만 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여기에는 없지만 한마디 더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이 창조자로 자기 자신을 계시하시고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 도덕적 주재자인 것을 계시하신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류를 죄악 가운데서 구속하시기 위하여 특별한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시편 一0三편 七절에는 하나님께서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택해서 그 사람들 가운데 선지자를 택하여 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특별히 하나님도 어떠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히브리 一장 一절과 二절에 기록한 대로『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그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해서 자기 자신을 계시했습니다.
그런고로 요한 복음 一장 十八절에 기록하기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며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獨生)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했습니다.
본래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품속에 계시던 독생자 되시는 예수께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님의 얼굴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님의 성품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의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활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죄인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통해서 구속 자이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연을 통해서 능력의 창조주인 것을 계시해 주셨고 인간을 통해서 도덕적 대 주재자이신 것을 계시해 주셨고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통해서 죄인도 사랑하셔서 죄인의 죄를 대신 져주시는 구속자인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준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가 계신 것을 분명히 계시했습니다. 알 수 있으리만큼 계시했습니다.
그런고로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핑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서 죄악이 자기의 눈을 가리운 것 뿐이요. 우리가 옳은 눈을 가지고 우주를 살펴보고 인간의 양심을 살펴보고 성경을 읽는다고 하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핑계 할 수 없습니다.
그런고로 누구나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여러 가지 죄가 많이 있지만 믿지 아니하는 죄가 제일 큰 것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다른 죄는 어떤 죄를 지었던지 회개하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지만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아무리 적은 죄를 지어도 그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천지를 주장하사 우리 인류를 다 통치하시는 대 주재자 하나님께서 우주에 계시고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 시요, 이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가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들을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一九五八년 六월 二十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