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네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 26:8-12)
고난주간 수요일에 예수께서는 별다른 활동 없이 베다니에 머무시며 휴식의 시간을 가지졌다. 전날 많은 사람들과 변론을 하셨고 제자들에게 긴 가르침을 주신 것이 피곤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런 피곤 때문에 쉬신 것이 아니다. 앞으로 닥쳐올 십자가의 고난을 미리 준비하시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갖는 거룩한 쉼이었다.
예수님께서 전도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40일 동안 유다광야에서 금식기도하시면서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인 교제를 가지셨다. 그것을 쉬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세속을 떠나 홀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시간을 가지셨다는 점에서 거룩한 쉼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예수님의 공적인 사역은 모두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곧 거룩한 쉼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하신 셈이다. 두 경우의 쉼 모두가 유다광야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초기의 40일 금식기도가 유다광야 끝에 위치한 여리고 근처였다면, 마지막 쉼은 유다광야가 시작되는 베다니에서 있었다. 여리고와 베다니는 유다광야 양 끝에 위치하면서 예루살렘을 오르내리는 길목이었다.
예수께서는 베다니에서 홀로 하루를 쉬시면서 동네 아래쪽으로 펼쳐져있는 유다광야를 내려다 보셨다. 그리고 3년 전 그 광야에서 기도하셨던 내용과 사탄의 시험을 되새겨 보셨을 것이다. 그때의 그 기도와 유혹이 이제는 십자가라는 고난의 형태로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께서 조용히 거룩한 쉼을 갖고 있는 동안, 감람산 반대편에 위치한 예루살렘에서는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가롯 유다까지 끌어들여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략을 꾸미고 있었다.
이날 베다니에서는 예수님을 위한 식사모임이 있었는데, 식사 도중 한 여자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일이 벌어졌다(마 26:6-13; 막 14:3-9; 요 12:1-8). 당시 나드는 인도에서 직접 수입한 매우 값지고 진귀한 향유였다. 성경에서도 그 가치가 300데나리온이 된다고 하였다. 그것은 노동자의 일 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큰 금액의 가치였다. 이 여인이 어떻게 그런 값진 향유를 소유할 수 있었으며 무엇을 위해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였을 것이고 자신의 결혼을 위하여 고이 간직한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 여자의 향유부음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데, 오히려 무의미하게 허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 여자의 향유부음은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행동으로 보셨다. 당시 장례 절차 중에는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제자였던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의 죽음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여자는 죽음의 의미를 미리 알고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이다.
사람은 모두가 살기 위하여 이 땅에 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러 오신 분이다. 그분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요 부활이시다. 그래서 온 천하에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도 함께 전해져 기념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 온 인류를 대속하실 예수님의 거룩한 죽음을 미리 준비하였던 이 여자의 향유부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룩한 소비였다. 그것은 다시 한 번 더 고난의 음산한 구름 속에서 따뜻함을 전해주는 한 줄기 환한 빛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얼마 후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멀리서 뒤따라갔던 베드로는 급기야 주님을 저주하며 부인하는 실패자가 되었다. 시신에 향품 바를 기회를 놓쳤던 세 여인도 부활의 아침 미리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다(막 16:1).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들의 향품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보내신 고난주간의 수요일은 거룩한 쉼과 거룩한 소비가 겹쳐진 날이었다. 지금 우리들은 그 의미를 깊이 묵상하며 자신들의 삶을 보살피며 다시금 가다듬을 때이다.
[출처] 고난주간 여정(4): 수요일--'거룩한 쉼과 거룩한 소비'|작성자 viva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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