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권혁승교수

고난주간 여정(6): 성금요일--‘십자가의 마지막 길, 그리고 마지막 말씀’ (마 27:45-46)

새벽지기1 2017. 6. 7. 07:21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5-46)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까지 걸으신 거리는 600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길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 극심한 고통 속에서 걸으신 마지막 길이다. 그래서 그 길은 ‘비아 돌로로사’ 곧 ‘슬픔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그 길에는 십자가와 관련된 14개 지점이 있는데, 이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빌라도 법정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요새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재판받은 곳(제1지점)과 십자가를 지신 곳(제2지점)이다.

 

   두 번째 부분은, 성묘교회 안 있는 5개 지점이다. 옷을 벗긴 곳(제10지점), 못 박히신 곳(제11지점), 운명하신 곳(제12지점), 시신이 내려진 곳(제13지점), 묻히신 곳(제14지점) 등이다.

 

   세 번째 부분은, 실제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도로 위의 7개 지점들이다. 첫 번째 쓰러지신 곳(제3지점),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신 곳(제4지점),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진 곳(제5지점),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제6지점), 두 번째 쓰러지신 곳(제7지점),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신 곳(제8지점), 세 번째 쓰러지신 곳(제9지점) 등이다.

 

십자가를 지시고 첫 번째 쓰러지신 후 로마 군인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두 번이나 더 쓰러지셨다. 그만큼 모든 기력이 소진되었던 셈이다. 십자가에 달리신지 불과 6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도 그 때문이다. 70kg이나 되는 감람나무 십자가를 지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전날 밤 겟세마네에서 핏방울 같은 땀을 쏟으셨고, 그 후로 잠을 전혀 주무시지 못하신 것, 그리고 가야바의 집, 산헤드린 공회, 빌라도의 법정과 헤롯 궁으로 끌려 다니면서 모진 매와 채찍질을 당하신 것이 급격한 체력소모를 가져왔다. 그런 탓에 예수께서는 불과 몇 십 미터도 못 걸어가 쓰러지셨다.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골고다에 이르기 전에 이미 그 몸에서 모든 기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가상칠언’(架上七言)의 일곱 말씀을 남기셨다. 모두 짤막한 내용이지만, 소중한 마지막 말씀들이다. 이 말씀 중에서 네 번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가 핵심적이다. 앞의 첫 세 말씀은 모두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용서와 배려들이다. 곧 십자가에 못 박는 유대인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눅 23:34), 강도에게 하신 낙원의 약속(눅 23:43),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긴다는 부탁(요 19:26, 27) 등이다. 반면에 뒤에 나오는 세 말씀은 모두 예수님 자신과 관련된 내용이다. 목마르다는 육체적 고통의 호소(요 19:28), 다 이루셨다는 선언(요 19:30), 영혼을 하나님 손에 맡기는 마지막 부탁(눅 23:46) 등이 그것이다.

 

이 두 종류의 말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네 번째 말씀은 앞뒤의 내용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속죄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모든 것을 이루셨다. 그것으로 인하여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 박는 유대인들이나 아무런 공적이 없는 강도마저도 믿음으로 낙원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 갈보리 십자가는 예수님께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외면이었다. ‘사박다니’(나를 버리셨나이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등 돌림을 당한 영적 소외감에서 나온 절규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외면은 죄악에 빠진 온 인류에게로 그 얼굴을 돌리시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그런 점에서 ‘라마’(어찌하여)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나 불만의 토로가 아니라, 그렇게까지도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동감과 찬양이며, 그런 구원을 받은 우리들이 누릴 행복에 대한 예찬이다.

 

죄 값을 지불하시기 위하여 숨 쉬실 기력마저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주셨고 하나님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하셨던 십자가상의 예수님, 그분은 우리의 100%를 위하여 자신의 100%를 내어주신 분이시다. 그 결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고난주간의 금요일은 우리에게 ‘거룩한 금요일’(Holy Friday)이며 ‘행복한 금요일’(Good Friday)이 되었다.